[황규만의 컨택센터 칼럼] 안 되는 게 없으니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황규만의 컨택센터 칼럼] 안 되는 게 없으니 도전에는 한계가 없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24.09.27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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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황규만 부회장
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황규만 부회장

7월26일부터 8월11일까지 개최되었던 파리올림픽이 폐막된 후 17일간 올림픽 경기의 열기로 뜨거웠던 파리의 같은 경기장에서 17일 후 파리패럴림픽이 열렸다. 

한국 대표님은 금메달 6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4개를 따내 총30개의 메달을 획득해 종합순위 2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대에서는 금메달의 갯수도, 색깔도 중요하지 않다.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예기치 못한 사고, 그 시련 속에서 극복을 향해 나아간 그들의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메달의 갯수는 유한하지만, 극복과 눈물의 스토리가 남긴 감동은 무한대였다. 

특히 패럴림픽에 나라를 대표해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은 그 어떤 메달보다는 더 가치가 있기에 그들 모두에게 그들이 흘린 땀방울을 담은 유리병 목걸이를 증정하고 싶다. 

패럴림픽이라는 말이 생소하신 분들도 계실거예요. 패럴림픽은 지금으로부터 76년 전, 비장애인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스포츠를 ‘치료’의 영역으로 끌고 와 장애인들의 육체적ㆍ정신적 재활에 접목시킨 루드비히 구트만 박사에 의해 1948년 영국의 변두리 시골병원에서 16명의 부상 군인들을 모아 열었던 작은 ‘운동회’가 시작이었습니다. 

전쟁 중 장애를 얻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삶을 되찾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1952년 네덜란드의 참전용사들이 참가하면서 국제대회가 되었고, 1960년에는 올림픽 개최지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1회 패럴림픽이 열리게 됩니다.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Paraplegic’과 ‘Olympic’이 결합된 ‘Paralympic(패럴림픽)’에는 1972년까지만 해도 하반신 마비 선수들만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후 시각장애인, 절단 장애인까지 참가 범위가 확장되면서 비로소 종합대회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때문에 오늘날의 ‘Paralympic’의 ‘Para’는 ‘나란히’라는 뜻의 전치사로 해석돼 ‘장애에 상관없이 누구든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는 의미로 발전했습니다. 

구트만 박사의 염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됩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처음으로 같은 도시, 같은 경기장에서 2~3주의 시차를 두고 열린 것입니다. 

‘패럴림픽’이라는 대회명도 1988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확정되었고, 서울패럴림픽을 기점으로 장애인 올림픽은 하계와 동계 올림픽 때마다 개최지에서 나란히 열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1987년 7월 패럴림픽이 태동되었던 영국의 작은 마을 스토크맨더빌에서 열렸던 척추장애자대회에 1988년 서울에서 열릴 제8회 패럴림픽을 홍보하기 위해 방문하게 됩니다. 지금은 영국의 왕이 되신 찰스3세가 황태자로 매년 후원하고 계셨죠. 

88 패럴림픽의 마스코트는 곰 두 마리가 다리를 묶고 2인 3각 경기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태극기, 곰두리 마스코트 깃발을 단 자전거를 타고 이때부터 6개월간 유럽 전역 28000km를 돌며 88서울패럼림픽을 홍보했던 그 때를 잊을 수가 없네요. 

불굴의 의지로 써내려 간 국가대표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고 싶어 TV를 켰지만 볼 수가 없어 선수 가족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웠을 거예요. 그 이유는 지상파 3사가 패럴림픽을 중계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월드컵 등의 국제대회는 방송법에 따라 ‘국민적 관심대회’로 지정돼 방송사업자가 중계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패럴림픽 등 장애인 국제대회는 국민적 관심 대회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패럴림픽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감동적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질 때 패럴림픽 경기도 올림픽 경기처럼 밤새면서 시청할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영웅, 한계를 넘어 승리로’라는 주제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개최된 만찬에는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고 매 경기 명승부를 펼치며 국민에게 큰 희망과 용기를 선사한 선수단이 함께 했습니다. 

대통령은 격려사에서 이번 패럴림픽에서 메달이나 순위를 떠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선수들의 경기 자체가 감동이고,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이 바로 금메달이라고 말했습니다. 

꿈꾸던 메달을 얻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은 진한 감동으로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줬습니다. 특히 2000년 전선 가설작업 중 양팔을 잃은 김황태선수는 수영 750m, 사이클 20㎞, 육상 5㎞를 달리는 남자 트라이애슬론(스포츠등급 PTS3)에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출전해 완주했다. 

센강의 물살을 배영으로 이겨낸 김황태는 의수를 끼고 남은 경기를 마친 뒤 아내이자 핸들러(경기 보조인) 김진희씨에게 “사랑한다.”고 소감을 밝혀 주변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황규만
(사)한국컨택센터산업협회 부회장
(사)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회장
(사)푸른아시아(기후위기 대응 NGO 환경단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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