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여, 감세를 위해 울지 마오!”
“포퓰리즘이여, 감세를 위해 울지 마오!”
  • 승인 2005.10.1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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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정책의 최대수혜자…삼성,강남,억대연봉

이백만(국정홍보처 차장)

포퓰리즘(populism)!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회자된 정치용어입니다. 참여정부의 정책을 못마땅해 하는 분들이 참여정부의 정책을 밑도 끝도 없이 포퓰리즘으로 몰아친 것이지요.

이 용어는 ‘대중영합주의 정치’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국가의 장래나 나라의 살림살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중적 인기를 위해 국가 에너지를 무작정 퍼붓는 정치행태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면 이념적 지향점이라도 있지만, 포퓰리즘은 그것도 없습니다. 국가운영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이지요.

포퓰리즘의 원조는 누가 뭐라 해도 1950년대의 아르헨티나 대통령 페론과 그의 부인 에비타(에바)입니다. 페로니즘과 포퓰리즘이 동의어로 쓰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페론과 에비타는 대중적 인기는 얻었지만, 나라 살림은 멍이 들고 말았습니다.

포퓰리즘의 화신 에비타, 빈민들에게 50페소 돈봉투 돌렸다

에비타는 봉투에 돈을 두둑이 넣고 다녔다. 봉투에는 그녀도 알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거액의 돈이 들어 있었는데 빈민들을 만나면 봉투에서 50페소 단위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나눠주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나는 이제 한 푼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기 저 사람들에게서 돈을 좀 끄집어내도록 하겠습니다. 보입니까? 저기 넥타이를 매고 있는 저 사람들 말입니다.”
에비타가 지목한 사람은 그녀를 수행하는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이었다. 에비타는 그를 불러 이렇게 명령했다.

“당신 지갑을 여시오.”
에비타가 그러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신사는 미리 두 개의 지갑을 가지고 다녔다. 자기 차례가 오면, 그들이 열어 보이는 지갑은 당연히 텅 빈 지갑이었다.
“죄송합니다. 저 역시 한 푼도 없는데요.”
그러면 에비타는 빙긋이 웃으며 다시 말을 했다.
“그럼 나에게 다른 지갑을 주세요.”

포퓰리즘의 극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비타 페론 -부유한 자들의 창녀, 가난한 자들의 성녀’(알리시아 두호브네 오르띠스 지음, 박지연 번역)에서 옮겨 왔습니다.
에비타는 암으로 죽기 직전, 대통령궁 광장에 나와 고별 연설을 하면서 울부짖는 군중들에게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라고 절규합니다.

감세 논쟁의 핵심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2006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감세(減稅)논쟁이 한창입니다.
한나라당은 9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공식제기하면서, 소득세와 법인세의 대폭 감면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9조원의 감세가 이루어질 경우 정부는 예산지출을 9조원 삭감하여 주요 재정사업을 줄이든지, 아니면 국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충당해야 합니다.

감세논쟁의 핵심은 3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누구를 위한 감세인가?
둘째, 감세정책의 경기회복 효과는 있는가?
셋째, 감세를 할 경우 과연 어느 사업을 줄일 것인가?

9조원의 감세, 1인당 18만원 세금경감?… “전혀 아니다”

소득세를 내지않는 49%의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들은 감세혜택의 폭이 아무리 커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사진은 영세 상점들이 몰려 있는 재래시장.
한나라당의 감세정책안은 소득세와 법인세를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9조원의 세금이 감축될 경우 국민들은 한 사람당 약 18만원의 세금을 되돌려 받거나, 덜 내게 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감세정책의 기조는 현재 소득세를 내는 개인과 법인세를 내는 기업의 세금을 줄여 주어야 경제회복이 빨라질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소득세를 내지 않는 개인과 법인세를 내지 않는 기업은 감세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근로소득자와 자영사업자의 49%가 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전체 기업체의 34%가 법인세를 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감세혜택의 폭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냥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수혜자는 삼성 등 재벌그룹과 그 임직원, 서울 강남 거주자

감세는 누구를 위한 정책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 ‘부자들’만 혜택을 보게 됩니다. 고소득근로자와 대기업들이 그동안 내왔던 세금을 덜 내게 되는 것이지요.

감세정책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그룹과 삼성그룹 임직원일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경우 우리나라 법인세의 약20%를 내고 있습니다. 간부직원과 임원들은 억대연봉의 고소득자들입니다. 삼성뿐만이 아닙니다. LG · SK · 현대자동차 등 여타 굴지의 그룹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은행 · 보험 · 증권 등 금융기관도 최대의 수혜자그룹에 속합니다.
지역적으로는 서울의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최대의 혜택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부자들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시기질투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감세논쟁은 국가경제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현안입니다. 소위 최고의 ‘민생 현안’이지요. 이런 문제일수록 톡 까놓고 얘기하자는 취지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변양균 장관, “소득세 2%포인트 내리면, 고소득자 302만원 세금 혜택”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도 ‘감세혜택 고소득층에…미래투자 서둘러야’라는 제목의 국정브리핑 특별기고(10월9일)에서“소득세율을 2%포인트 인하할 경우 연간 1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는 4만3000원의 감세혜택을 보는 반면, 연간 8000만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는 302만원의 감세혜택을 보게 된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볼 때에도 근로자의 면세점은 160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저소득자의 감세혜택은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경기회복 효과?… “검증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논란

감세정책의 경기회복 효과는 검증된 게 아직 없습니다. 경제학계에서 논란만 벌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경우 경기진작을 위해 감세정책을 동원하고 있지만, 엄청난 재정적자 확대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감세한다면 어느 예산을 줄이나?…“답이 없다”

9조원의 감세는 9조원의 세출예산삭감으로 이어집니다. 국가가 빚을 내지 않는 한, 이 정도의 정부 사업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9조원의 예산을 어디서 얼마만큼 줄일지, 즉, 어느 사업을 어떻게 줄일지, 누구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세 주장은 ‘총론적 공세’일 뿐, ‘각론적 대안’은 아직 없습니다. 국방예산을 줄일지, 복지예산을 줄일지, 사회간접자본(SOC)건설예산을 줄일지, 농업예산을 줄일지, 공무원 봉급을 줄일지, 어떤 대안도 없습니다.

감세정책은 양극화 부채질…서민 복지 줄어든다

감세정책의 지역적인 최대 수혜자는 서울의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가 될 것이다. 고소득층이 많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양극화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조세정책입니다. 소위 ‘부(富)의 재분배’ 정책입니다. 이것은 경제학의 정설입니다. 부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감세정책은 양극화현상을 더욱 심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부자를 위한 감세는 ‘역 포퓰리즘’이다”

감세정책이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의견이 언론계와 학계에서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에비타는 서민들에게 돈푼이라도 쥐어 주면서 포퓰리즘을 구가했습니다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감세정책은 ‘공허한 포퓰리즘’일 뿐입니다. 감세정책이 솔깃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뜯어놓고 보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하는 ‘값싼 동정’이라는 얘기입니다.

겉으로는 국민들에게 세금부담을 크게 줄여 주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부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서민들의 복지혜택을 줄이는 '역(逆) 포퓰리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포퓰리즘이여, 감세를 위해 울지 마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포퓰리즘의 화신인 에비타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라고 절규했듯이….

- 강남구의회 재산세 50% 인하안 통과 -
(연합뉴스 10월 4일 정성호기자)
서울 강남구 의회가 재산세를 50% 내려 주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켜 `재산세 인하 불가' 입장을 취해온 강남구와 마찰이 예상된다.
강남구의회는 4일 임시회를 열어 탄력세율 50%를 적용해 재산세를 인하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탄력세율 50%가 적용되면 재산세율(토지의 경우 공시지가 대비 0.15∼0.5%)이 절반으로 떨어져 결과적으로 부과세액도 그 만큼 줄어들게 된다. 표결에는 재적의원 26명 중 25명이 참가, 찬성 18표에 반대 7표가 나왔다.
강남구는 "재산세를 인하해도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일부 대형 아파트 주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고 세수 부족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강남구는 의회 재의 요청 등 다각적인 대처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남구의 재산세 감세논쟁…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국의 부자동네’라고 불리는 서울 강남구의 재산세 탄력세율 적용 논란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감세정책의 수혜자가 누구이고, 그 궁극적 피해자는 누구인지 실증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강남구와 강남구의회의 논쟁이 어떻게 결론 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어떤 결론이 나던지 간에, 감세정책의 효과와 시스템을 이해하는데 아주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습니다.

◎ 이백만 국정홍보처 차장 ▲ 1956년 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서울경제 정경부장 ▲한국일보 경제부장·논설위원 ▲머니투데이 편집국장 ▲한국경제TV(WOW)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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