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도덕적 해이
노동계 도덕적 해이
  • 승인 2005.10.1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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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노총 정부 지원금 500억원
애초부터 논란거리 잉태

거시적 차원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 마련할 때

민주노총 집행부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비리사건과 관련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내년 1월 총사퇴키로 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내년 초에 보궐선거가 아닌 3년 임기의 조기선거를 실시해 새 집행부를 구성, 그동안 잠복해 있던 계파 간 대립이 수면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정감사 기간에 벌어진 초유의 사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 비정규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 로드맵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해서는 이제 '물 건너 갔다'라는 이야기 마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올 초부터 발생한 노동계의 비리 문제는 결국 올 연말까지 끊이지 않는 잡음 속에서 ‘종양’을 더 키워 온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늘 견제를 받아 오면 대정부 투쟁을 통해 난국을 돌파했으나 이번은 상당히 힘들 것”이라며, “투쟁보다는 협상과 반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

뒷돈 챙기며 비정규직 권익 운운

올 초부터 신문지상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있었다. 바로 노조 간부에 의한 '취업 비리'사건이다.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어 다시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사건이다. ‘지주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는 교훈을 몸소 실천한 당시 기아·현대차 노조와 항만노조의 비리 사건은 시작에 불과 했다.

이후 한국노총의 복지회관 건립 비리 문제 또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 왔다. 그래서 인지 그 비싸다는 여의도 한 가운데 최신 건물인 노총 복지회관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공실률을 자랑(?)하면서 휑한 골조 사이로 가끔 사람들이 보일 정도다.

어디 이뿐인가? 최근에는 한국노총 서울지역 본부가 2002년 대선직전 서울시 의회 비례대표 몫을 요구하며 정치권과 거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후 지속적인 비리와 횡령, 금품 수수 등 노동계가 경멸하는 정치인들 못지 않은 내공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한국노총 직원들 임금 체불 문제가 거론되면서 노총의 누적적자가 200억원이 넘는다는 사실에 아연실색케 했다.

이는 노조간부 자리를 치부 수단이나 출세를 위한 발판으로 여기는, 관료화·권력화한 노조의 추악한 단면이다.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양 노총은 거듭나겠다며 자정(自淨) 의지를 밝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보다는 사안에 대한 대응적 요법에 익숙한 것이 지금 노동계의 현실이다.

이번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금품비리사건과 관련해 이수호 집행부는 당초 ‘즉시 퇴진'이 거론되었지만 결국 ‘내년 1월 총 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미봉책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내부 갈등과 조직내 당파간의 견제로 조만간 재 논의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 노동계 내부의 목소리다.
이러한 노동계가 행하는 모습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이제 어떻게 다가가야 되는 지는 노동계가 안은 숙제라 할 수 있다.

5년간 양대노총에 503억원 국고지원

양대노총에 지난 5년 간 지원된 국고보조금이 5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한국노총에는 약 473억원이 지원된 반면 민주노총에는 약 30억원이 지원돼 양 노총간 편차가 지나치게 큰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가 지난달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형주 의원(열린우리당)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한국노총에 2001년 28억2800만원, 2002년 87억7800만원, 2003년 80억3900만원, 2004년 144억3000만원, 올해 132억200만원을 지원했다.

국고보조금은 한국노총의 노조간부 교육, 지역 근로자 연수·상담, 정책개발, 국제교류 활동, 중앙교육원 리모델링 공사, 중앙근로자복지센터 건립 등의 명목으로 제공됐다. 이 가운데 복지센터 건립비가 334억




으로 가장 많았다. 올해에는 노조간부 교육 7억 4100만원, 지역근로자 연수·상담 7억 8200만원, 정책개발 7억 9500만원, 국제교류 1억 8400만원, 중앙교육원 리모델링 30억원, 복지센터 건립 77억원이 지원됐다. 노동부 산하기관인 산업안전공단도 한국노총에 산재예방 활동비용으로 해마다 6억57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감장에서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의 “양대 노총의 정부 지원금 500억원에 대한 회계 투명성에 대해 어떤 노력을 했나"라는 물음에 이수호 위원장은 “노동조합은 자주성, 자율성이 원칙이다. 외부에서 그런 법을 만드는 것은 민주노조에 의미가 없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의원들은 “노동계의 지원되는 국고지원금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바로 복지센터 건립비로 결국 비리로 드러난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 지적했다.

노동계의 투명성은 곧 생명이다. 수백만 근로자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투명한 경영이 없다면 조직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결국 어렵게 쌓아온 노동계의 공든 탑은 한번에 무너질 것이다.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일부 노동계 인사들로 인해 대다수 간부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폭력으로 얼룩진 투쟁, 현안은 뒷전

이수호 위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사퇴는 쉽지만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 남은 하반기에 총력 투쟁을 마무리하고 퇴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미 노동계에서의 올해 투쟁은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에 구속된 강승규 부위원장은 지난 1월 결성된 기아자동차 노조비리 진상조사단장이었으며, 3월 이후에는 조직혁신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이러한 치명적인 결점과 더불어 지난 2월 사회적 교섭 참여 여부를 놓고 벌어진 폭력사태에 이은 임시대의원대회 마저도 폭력 사태로 물든 경험이 있고 간신히 사건을 봉합하고 조직혁신 작업을 추진한 현 집행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에 따른 조직 내 반발이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년 1월 선거를 예고함과 동시에 이수호 위원장의 불출마 선언은 차기 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조직 내 폭력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 또한 나오고 있다.

노동계의 흔들기로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는 비정규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이수호 위원장은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권익을 강화할 수 있도록 남은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현재의 투쟁 동력으로서는 약하다는 평가다.

정부안에 대해서도 수십 차례에 이르는 협의를 거쳤지만 결국 정부안에 대해서는 거부하면서 장관퇴진까지 주장하는 현 노동계의 현실을 볼 때 법안 처리보다는 정치적인 역할에만 치중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국에는 비정규직 자체가 기존 정규직의 방패막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마지막 기회에 노동계는 대승적 차원으로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성균관대 조준모 교수는 “노동계의 모습과 정부의 모습을 보면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치중한다"면서 “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 무엇이 더욱 이로우며, 대승적 차원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주장도 포기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아울러 최영우 노동연구원 교수도 “노조가입률을 올리기 위한 정략적인 공세는 이제 중지하고 시장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것이 결국 모두가 사는 길”임을 주장했다.

결국, 노동계의 구조적 위기에 따른 정책의 혼선은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현재 산업전반에서 기대하고 있는 관련 법안의 문제는 향후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예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무엇이 가장 현명한 해결책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이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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