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아웃소싱 현장에서는 / 텔레마케터는 슬프다
[기획]아웃소싱 현장에서는 / 텔레마케터는 슬프다
  • 편슬기
  • 승인 2015.06.02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도 같은 사람입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는 상담원들

“우리도 같은 사람입니다, 고객님들께서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거쳐 간 텔레마케터마다 빼놓지 않고 언급한 말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호소하게 만들었을까.

하루 근무시간 평균 8시간, 주어지는 콜 할당량은 120콜 가량, 몇 초 간격으로 밀려드는 전화에 정신이 없다. 콜 수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관리자들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텔레마케터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점심시간을 줄이고 화장실 가는 횟수를 줄인다. 할당량을 채우기엔 하루 8시간도 빠듯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일하다 갑자기 누군가 울음을 터트렸다. 얼마 전 교육을 마친 새내기 아르바이트생이다. 잠깐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만 그것도 잠시, 고객의 심한 욕설에 눈물을 보이는 일은 비일비재하기에 다수의 텔레마케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일에 집중한다. 과거에 비해 근무환경과 복리후생(출산ㆍ육아휴직 지원 등)이 많이 좋아졌지만 일부 텔레마케터는 두꺼운 가면을 쓰고 눈물 흘리는 ‘을’ 중의 ‘을’인 점에 변함이 없다.

대부분의 콜센터(인바운드)는 고객들의 민원을 받고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기에 전화하는 고객들은 자신이 겪은 불편사항에 이미 화가 나있는 상태다. 그것은 전적으로 회사를 향한 분노지만 화살은 업무 최전선에 근무하는 텔레마케터들에게로 날아가 꽂힌다.
전화를 받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하지 않은 잘못에 대해 거듭 죄송하다는 사과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화 한통을 끝내고 나면 억울함과 화가 밀려오지만 그것을 해소할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전화를 받아야 한다.

임금과 상담원 보호 개선 시급

이럴 땐 삼진아웃(three out)제도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세 번의 경고 후에도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 유일하게 텔레마케터가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진상고객들에 대한 고발조치가 이뤄지고 있어 상담원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그러나 텔레마케터들은 “보호제도가 있어도 텔레마케터들은 여전히 진상고객들에게 시달리며 이런 높은 감정노동 강도에 비해 주어지는 급여가 너무 낮은 편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텔레마케터 A씨의 한 달 월급을 살펴보면 약 120만 원 정도이다. 1인 가구의 한 달 생활비 평균이 135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 달 살기에도 빠듯하다. 거기에 다달이 빠져나가는 학자금 대출과 월세로 인해 월급은 그저 통장을 스쳐지나갈 뿐이다.

더불어 텔레마케터 B씨는 “텔레마케터들의 이직률이 높은 것도 문제”라 지적하며 “인원이 부족하다고 신입을 계속 들여올게 아니라 시스템 개선을 통해 신입 입사자가 자연적으로 오래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객들의 부족한 배려와 인식 여전히 문제

하지만 누가 뭐래도 상담원들의 가장 큰 고충, ‘감정노동’의 유발자는 블랙컨슈머와 진상고객들이다.

블랙컨슈머는 기업 등을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자 제품을 구매한 후 고의적으로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자로 콜센터 운영 시스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주를 이룬다.

보통 이들은 카페나 메신저를 통해 기업에게서 어떻게 하면 보상을 받는지에 대해 흔히 ‘비법’을 공유하기에 한번 전화가 걸려오면 텔레마케터들은 진땀을 빼기 일쑤다.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는 규칙 때문에 텔레마케터 C씨는 무려 6시간이나 통화를 계속했다고 한다. 물론 전화가 끊긴 후에는 돌아서서 엉엉 울었다는 후문. 게다가 하루걸러 하루 걸려오는 성희롱 발언을 일삼고 다짜고짜 인신공격을 퍼붓는 진상고객의 전화는 상담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미흡한 산재처리·의료비는 근무자 몫?

쉴 틈 없는 근무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결국 골병이 드는 건 텔레마케터 본인일 수밖에 없다.
아픈 것은 마음뿐만이 아니다. 몸도 고통을 호소한다. 장시간 응대로 인한 성대결절, 각종 근ㆍ골격계 질환을 포함한 서비스업 6대 질환은 텔레마케터라면 누구나 하나 이상은 앓고 있다.
아픔을 참지 못해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는다는 텔레마케터 A씨는 한 달에만 10만원 가까운 돈이 병원비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돈인데....” 그녀는 이 같이 말하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인과 관계 규명을 통해 충분히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비로 병원비를 댄다. 물론 이유는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사내에서 헬스 키퍼(health keeper)가 지원된다는 것이다. 헬스키퍼란 기업 등에 설치된 안마시설에서 직원의 건강관리 등을 담당하는 국가자격 안마사로 우리나라엔 1997년에 처음 도입됐다.

어깨 결림, 허리통증 등 근ㆍ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텔레마케터들을 위한 좋은 복지제도이나 이마저도 자유롭게 받을 수 없다. 많은 상담원 수에 비해 헬스 키퍼의 수는 한정돼 있기 때문에 헬스키퍼 이용은 한 달에 한 번 가능하다고 한다.

‘콜센터 직원의 마음을 잡아라!’?
콜센터 마케팅 경쟁이 격화되면서 텔레마케터 등 직원들을 달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주목받고 있다.

우리은행은 콜센터에서 주말에도 평일처럼 고객을 상대로 예금 및 대출 관련 상담을 해주고 있다. 지금까지 주말엔 인터넷 뱅킹 관련 상담이나 사건ㆍ사고만 접수했다.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콜센터 서비스를 강화하는 이유는 당장 수익을 더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주거래 고객에 대한 서비스 품질을 높여 다른 은행에 고객을 뺏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올해 9월부터 시행될 계좌이동제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집토끼 지키기’ 전략인 셈이다. 계좌이동제란 급여통장에 연결된 각종 이체거래를 한번에 간편하게 다른 은행 계좌로 옮길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계좌이동제가 시행되면 주거래은행을 바꾸는 게 한결 쉬워진다.

그러나 콜센터의 서비스 강화는 텔레마케터들의 업무 강도를 높여 더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텔레마케터들은 고객의 욕설이나 성희롱 등에 노출되어 있는 대표적인 ‘감정 노동자’들이다. 이 때문에 시중 은행들은 텔레마케터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우리은행 콜센터 10층 식당 입구엔 ‘두더지 잡기’ 게임기 2대가 설치돼 있다. 고객을 응대하다가 스트레스받는 직원들은 언제든지 와서 뿅망치로 두더지를 맘껏 두드린다. 우리은행 콜센터 한 직원은 “두더지를 사정없이 때리다 보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풀린다”고 말했다. 또 7층엔 전신 안마기 6대가 놓여 있다.

최근엔 ‘플라워 카페’를 만들어 직원들이 창가에 놓인 꽃을 보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고, 수면실도 만들어 잠시 눈도 붙일 수 있게 했다.

서울과 대전 두 곳에 콜센터가 있는 국민은행은 매주 화요일 텔레마케터를 상대로 심리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전문 심리상담치료사가 콜센터 건물에 있는 ‘힐링카페’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상주해 심리치료를 해준다. 서울 센터의 경우 연간 많게는 700명, 대전 지역의 경우 연간 400여명이 심리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심리상담을 받은 텔레마케터들은 한층 얼굴이 밝아지고 고객 응대에 있어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이는 등 효과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 콜센터가 있는 신한은행은 5개 층마다 온돌로 된 수면실을 만들고 전신 안마기를 설치해 두었고, 하나은행도 수면실과 전용 카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은행 콜센터에 빠짐없이 있는 시설이 있다. 바로 ‘흡연 공간’이다. 텔레마케터 대부분은 여성이지만,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다 보니 흡연율이 높기 때문이다. 실내는 아니고 건물 옥상 등에 따로 흡연 구역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