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동 박사]저성장 시대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어떤 모습을 할까?
[김근동 박사]저성장 시대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어떤 모습을 할까?
  • 김연균
  • 승인 2017.02.2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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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소싱타임스]이제 자동차는 누구나 이용하는 생필품이 되었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도 치열해 졌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미국의 대형 자동차 회사인 GM이 대규모 부채상환 불능 때문에 파산 상태에 처했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 GM회장은 국회에 출석했다.

파산의 이유와 상환계획을 설명했다. 미국 의회는 공적 자금 투입을 정식 결정했다. 당시 GM 회장이 와싱톤에 있는 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와 구설수에 올랐다.

혈세 지원을 요청하는 사기업의 경영자가 국민들의 반발을 초래할 행동을 했다면서 비판을 받았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으로 GM은 공적자금의 수혈을 받아 파산위기에서 벗어났다.

2010년대에 들어와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브레이커 등의 결함을 속인 것이 발각되어 대규모 리콜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도요타 회장은 미국 의회에 참석해 사과했고 대규모 보상을 약속했다. 당시 도요타 회장이 일본 국회에도 참석해 사과했다.

이때 귀를 의심할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일본정부는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만 도요타가 엄청난 순이익을 달성하고 있는데도 법인세 납부실적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아니 설마 도요타가...라고 의심했지만 사실이었다. 도요타는 일본을 상징하는 자동차회사이지만 일본에서의 경영실적이 적자 연속이었다.

다만 고용유지를 위해 생산기지를 일본내에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익은 해외에서 나왔다. 완성차 제조 메이커는 수만개의 부품 제조 메이커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완성차 공장이 있는 곳에는 괜찮게 많은 직업과 고용이 창출된다.

최근 폭스바겐이라는 초우량 독일의 자동차 회사가 배기가스 위조 문제로 대규모 리콜 및 보상을 실시했다. 독일차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하락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독일의 품질 좋은 철강 및 기계를 기반으로 명품 자동차를 만들어 왔던 자동차 회사로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수모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고서 제기하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와 더불어 한국 자동차 제조 메이커들도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당시 한국인들의 격렬한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삼성이 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막 신차를 출시할 시점에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새로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 주범의 하나가 한국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이라면서 정리에 나섰다. 김대중 정권은 국가정책으로 '업종전문화 실현'과 '부채비율 감축'에 두고서 기업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삼성그룹에게 자동차 사업의 포기를 강요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삼성은 자동차 사업 철수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작 삼성을 뒤흔든 사건은 그 이후 발생했다. 당시 삼성이 신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하면서 초기 투자 규모를 10조원 정도로 잡았다. 그런데 자동차 사업의 철수에 따라 회수 가능한 매각 금액은 7~8천억원에 불과했다.

엄청난 투자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삼성 관계회사들이 투자비를 대부분 부담했지만 대주주도 보증을 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권은 거액의 담보 해소를 요구했다. 삼성은 긴급 자금 점검에 들어갔지만 역부족이었다.

김대중 정권은 부채가 많은 회사를 선택해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하여 진로와 쌍용그룹을 몰락시켰다. 김대중 정권의 심기를 건드린 거액의 부채를 보유한 대우그룹을 해체했다. 삼성그룹도 바람 앞에 등불이 되었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의 포기에 따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눈물겨운 대장정에 나선다. 이때 삼성은 ‘꾸물거림 전략’ ‘읍소와 감동 전략’ ‘선상투하 전략’ 등을 실행하면서 해체위기에서 벗어난다.

첫째 ‘꾸물거림 전략’이다. 외적으로 정부나 여론에 적극 따르겠다고, 대우전자와 빅딜 협상에 나서겠다고, 꾸물거리면서 내적으로 최대한 시간을 벌어 신속한 정리를 통해 반격에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불쑥 튀어나온 삼성의 부채를 연장해 줄 사람이 없었다.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전하 아니 되옵니다’ 라고 외치는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뭉친 금융기관의 엘리트를 설득해 담보 해소를 연기받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이에 삼성은 꾸물거리면서 확보한 시간을 이용해 합리적인 논리를 만들어 대응했다.

둘째 ‘읍소와 감동의 전략’이다. 삼성은 김대중 정권에게 문어발식 사업확장의 잘못을 크게 반성한다면서 호소했다. 이렇게 되자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이 반삼성 정서를 삭이게 된다. 반성하는 삼성을 잘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정권유지에 좋다고 까지 했다. 삼성으로서는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견뎌온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도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지금 삼성이 반성한다면서 죽는 시늉을 해도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다. 언제라도 삼성을 국영화시킬 공적자금을 준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셋째 ‘선상투하의 전략’ 이다. 선박이 대해 항로시 강풍으로 거친 파도가 일면서 파도와 파도가 겹쳐 만들어진 삼각파도를 만날 수 있다. 배가 전복될 위기에 처할 경우 선장은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조될 까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생필품을 제외하고서는 모두 바다에 던지도록 명령해야 한다. 그래도 배가 전복될 우려가 있게 되면 선원들을 경중에 따라 순서를 매겨 살아있는 상태로 바다에 던지도록 명령을 내려야 한다.

삼성호의 소멸 위기를 맞아 선장인 이건희 회장은 측근을 통해 고독한 명령으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사내분사를 활용했는데 이들 분사회사가 벤처기업으로 성공해 갑부가 되었다.

위와 같이 삼성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전자 및 전자부품 사업에 집중해 오늘의 최첨단 디지털 기기 제조 메이커로 부상한다. 삼성 내에서는 자동차의 '자'도 꺼내지 못하게 할 정도의 금기 사항이 되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번민과 스트레스로 담배를 하루에 2~3갑이나 피웠는데 이것이 원인이 되어 사활을 건 폐암 수술을 하게 된다.

당시 현대그룹도 대규모 사업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주력사업인 자동차 사업을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어 기아자동차를 인수한다.

대우자동차는 GM에게 매각되었고 삼성자동차는 우여곡절 끝에 르노그룹에게 매각된다. 쌍용자동차는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지금에 이르렀다. 2000년대에 들어와 세계경기 호조에 따른 자동차 수요의 증가로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회사로 부상했다.

그러면 향후 저성장 시대를 맞아 한국의 자동차 회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아마 지금과 같이 현대차그룹이 한국정부 및 국민들의 관심 하에 자동차회사의 중심이 되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비록 전기차 시대가 온다고 해도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벤처기업을 인수해 발빠르게 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자금력과 전자기술력을 가진 삼성그룹이 독일 벤츠-크라이슬러 그룹을 전격적으로 인수해 자동차 사업에 재차 도전하는 등의 획기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는 한 현대차 독주 시대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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