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 CEO칼럼] Nike & KFC
[전대길 CEO칼럼] Nike & KFC
  • 김민수
  • 승인 2017.05.10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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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Nike)’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 아테나, 헤라클레스 신(神)과 함께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승리(勝利)의 여신(女神)이다. 니케를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바로 ‘나이키’다.

미국의 유명한 스포츠용품 회사 나이키(Nike)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에게서 그 이름을 따 왔다. 부메랑(Boomerang) 모양의 나이키 로고는 니케 여신의 날개를 뜻한다.

1957년도에 육상선수, 필 나이트(Phil-Knight)와 육상코치인 빌 바우어만(Bill-Bowerman)은 오리건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났다. 1963년, 이들은 수입한 타이거 슈즈 200켤레를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팔았는데 $500씩 출자해서 타이거 슈즈 1,300켤레를 수입해서 팔았다. 그 때의 매출액은 $8,000, 이익금은 $250였다.

그러던 중에 바우어만은 아내가 주방에서 와플 굽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와플제조기에 액체고무를 부어서 스파이크를 만드면 어떨까?‘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를 연구개발하여 신기술을 개발한 신발 밑창은 운동화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또한 나이트의 학창시절 친구였던, 제프 존슨은 1971년 어느 날, ‘니케’에 관한 꿈을 꾸고 ‘나이키’란 회사이름을 작명한다.

부메랑이 날아가는 듯 날렵한 나이키의 심벌마크 ‘스워시(Swoosh)’는 포틀랜드 주립대학의 디자인학과 여학생에게 $35을 주고 부탁해서 탄생한 것이다.

‘니케’의 날개이자 승리의 상징인 ‘V’를 부드럽게 휘어 놓은 적색(赤色)의 심벌은 열정적인 스포츠 정신과 승리의 의지를 뜻한다. 그로부터 46년이 지난 오늘, 나이키는 세계적인 스포츠산업으로 성장, 발전했으며 ‘그 이름이 왜 나이키일까?’, ‘왜 그 상표가 부메랑 같을까?’라는 의문이 풀릴 것이다.

또 다른 세계적인 기업의 뒷이야기이다.

홀어머니를 도와 집안일을 챙기던 한 소년이 가난과 의붓아버지의 폭행에 못 이겨서 12살 때 가출(家出)하여 갖은 고생을 하다 직접 조리하는 닭고기(Chicken)요리 식당을 운영한다. 그의 나이 65세 때 어려움으로 식당 문을 닫는다. 그는 나라에서 준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들고 ‘닭요리만큼은 내가 최고다!’란 자긍심만으로 재활(再活)의 길을 떠난다.

그는 중고 승용차에 요리 기구를 싣고 미국 전역을 떠돌며 닭고기 조리법(Fried Chicken Recipe)을 팔러 다녔다. 3년 동안 1,008곳의 식당을 찾았으나 모두 거절당하고 1,009번째로 찾은 식당에서 ‘치킨 한 조각에 4센트의 로얄티’를 받는 조건으로 판매계약에 성공한다.

‘멋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는 실패를 통해 경험을 얻었으며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힘썼다’는 그의 KFC 치킨사업은 대성공을 거둔다.

KFC 매장 입구마다 흰 양복에 지팡이를 팔목에 걸치고 서 있는 안경 낀 노신사는 바로 그 주인공인 ‘커넬 샌더스’(Colonel Harland David Sanders...1890년~1980년)이다.

원래 프라이드 치킨(Fried Chicken)은 미국 남부 농장지대에서 일하던 흑인 노예의 애환이 담긴 ‘소울 푸드(soul food)’이다.

미국 남부식의 정통 닭요리 법은 닭을 오븐에 굽는 ‘로스트 치킨’이다. 백인 농장주들은 오븐(Oven)에 닭을 굽기 전에 살이 많은 닭의 몸통과 다리를 제외한 날개나 발, 목은 그냥 버렸다.
살코기도 별로 없고 발라 먹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들은 백인 농장주들이 버린 닭의 발이나 목을 주어서 숙소로 가져왔지만, 오븐이 없어서 로스트 치킨을 만들 수가 없었다. 오븐이 있다고 해도 굽는 조리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다 이들 부위를 굽고 나면 육즙이 빠져나가 별로 먹을 게 없어 흑인들은 기름에 튀기는 닭요리 법을 새롭게 개발해 낸 것이다.

날개나 목 같은 값싼 부위를 기름에 튀겨 내면 잡냄새가 없어지고 연한 뼈째로 맛있게 먹을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튀김 닭은 고열량 음식이라 하루 종일 고된 육체노동을 하던 흑인 노예들에게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되었다.

미국 남부 켄터키 주에서 닭튀김을 팔던 커널 샌더스는 1952년에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로 건너가 'KFC(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점포를 냈다. 그 후, 세계 118개 국가에 19,000개(미국 4,500개, 중국 4,600개, 기타 10,000개)의 KFC 프랜차이즈 점포를 열었다. 2013년 매출이 230억$에 이르렀다. 흑인 노예들의 ‘솔 푸드’가 세계인의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끝으로 우리 대한민국의 한식 중에서도 세계인의 사랑받는 음식이 태어날 것이다. 아프리카에 가서 매운탕을 끓여 파는 식당,중국 북경에서 한국의 전통 순두부를 만들어 파는 한국인들이 있다.

C식품회사에서 만든 햇반이나 비빔밥, 비비고 등이 세계인의 이목과 관심을 끌고 있는데 우리 청소년들도 이런 독특한 사업에 과감히 도전하기 바란다. 예전에 잠시 나왔다가 이름 없이 사라진 ‘두발로(Dubalo)'란 한국적 구두상표가 문득 생각이 난다.

전 대 길
(주)동양EMS사장,
국제PEN클럽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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