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안내]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신간 안내]놀이하는 인간의 철학
  • 김연균
  • 승인 2017.06.07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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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놀이를 탐구한 최초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서

현대의 최첨단 디지털 예술까지

놀이와 함께 상상하고 창조하는 인간을 발견하다


“놀이가 없는 사회나 인간은 좀비 상태로 침몰한다.” (마셜 매클루언)
“나는 위대한 과제를 대하는 방법으로 놀이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함의 징표이자, 본질적인 전제조건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놀이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중적이다. 그 어느 때보다 놀이의 가치가 주목받고 놀이의 속성인 우연, 순간, 자유, 상상력, 창조 등이 각광받는 시대지만, 여전히 놀이는 중요하지 않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무엇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성 중심․노동 중심적 가치관에 대한 회의가 그것을 넘어설 단초로 놀이를 새롭게 발견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놀이하는 인간보다는 생각하는 인간, 노동하는 인간이 더 익숙하다. 그러나 모든 언어․문명권에 놀이와 관련된 고대어가 있으며 오래전 인간이 자신의 존재와 세계를 통찰한 고대의 기록에서 놀이하는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데서 보듯, 놀이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인간은 생각하고 노동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놀이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 책은 인간 삶의 근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철학의 영역에서 배제되어온 ‘놀이’를 철학적으로 탐구한다. 진지한 연구 주제로 새롭게 조명받은 근대에만 해도 비생산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던 놀이는, 노동의 효율성을 맹신한 근대의 파국을 돌파할 탈출구를 찾던 지적 노력이 놀이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현대철학에서는 인간과 세계 이해를 위한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책은 놀이를 둘러싼 이러한 철학사적 의미 변화를 고대/근대/현대적 사유 유형으로 나누어 탐색하고, ‘놀이와 우리 시대’라는 주제 아래 디지털 예술처럼 놀이의 가치를 환기시키는 다양한 현대 예술의 양상을 조명하고 있다. 존재와 생성에 관한 전통 형이상학의 좌표를 전도시키고, 상상력과 창조의 뿌리가 되는 등 철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평에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놀이’와 함께 철학하는 책이다.

생각하고 노동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흔히 심심풀이 또는 노동의 고통에 대한 보상물 정도로 여겨지곤 하는 놀이는 철학의 주제로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고대의 언어와 기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에게 놀이는 삶의 근본 조건이며 오래전부터 놀이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존재해왔다. 놀이를 진정한 앎이나 참된 견해와 거리가 멀다고 보았던 플라톤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비본질적․비도덕적․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놀이는 근대에 들어와 새롭게 조명받는다.

르네상스로 촉발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뿌리에는 예술적 본능과 놀이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고, 따라서 근대의 놀이에 대한 철학적 반성은 미학의 성립과 관련되었다. 이처럼 근대는 과학적․종교적․도덕적 인간 외에 ‘놀이하는 인간’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놀이가 내포하는 우연․상상․자유 등의 가치가 인간성의 요소로 수용되었지만, 근대의 놀이 이해는 여전히 ‘인간의 본질을 실현하는 노동과 대립하는 것, 비생산적이고 현실 도피적인 것’이라는 평가에 머물렀다.

현대에 들어와 비로소 놀이는 전면적으로 재평가받게 된다. 인간성 타락과 문명의 야만성이라는 현실에 직면한 근대의 후예들은 야만의 근원이 노동에 있음을 발견했고, 근대의 파국을 돌파할 탈출구로 ‘놀이’를 새롭게 발견한다. 주체․이성․보편적 진리 같은 근대적 가치가 개인의 자유와 개성으로 옮겨 가면서, 현대철학에서 놀이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심 개념이자 근대성 극복의 키워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모든 철학적 주장을 놀이로써 설명”한 니체는 “현대의 놀이에 대한 철학적 이해는 니체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놀이, 근대의 야만을 극복할 탈출구가 되다

그렇다면 철학자들은 놀이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했으며, 그것이 왜 근대성 극복과 관계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주체나 중심이 아니라 놀이하는 과정 자체이며, 놀이의 의미는 놀이하는 자의 의도가 아니라 놀이활동의 산물이다. 놀이와 놀이자의 관계에서 주체와 객체가 완전히 전도되면서, 놀이는 근대의 주체철학을 극복할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놀이는 존재와 생성에 관한 전통 형이상학의 좌표를 전도한다. 완전하고 불변하는 존재에 기초한 전통 형이상학으로는 현대의 복잡다기한 환경을 담아내기 어렵다. 우연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불완전한 놀이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설명하는 데 훨씬 유효하다. 또 놀이에 담긴 생성과 우연, 순간의 속성은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의 뿌리가 된다. 전통 형이상학에서는 놀이의 이러한 속성이 진리 인식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러한 권위가 무너지고 인간 개별자의 개성이 강조되면서 놀이가 지닌 속성은 개별자의 인식과 가치 실현에 본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니체, 가다머,아도르노,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 로티를 비롯한 신실용주의자들의 철학에서 우연과 순간은 중요한 철학적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놀이의 모호한 지위도 주체와 객체, 선과 악, 본질과 현상 등의 이분법에 기초한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비-주관성, 비-목적성 또는 무-목적성, 무-의미성이라는 놀이의 속성이야말로 세계의 고유한 존재방식과 닮아 있다. 세계, 또는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인간 또는 주체로 인식될 수 없는 존재자들을 개방하는 지평과 같다. 그래서 하이데거, 가다머, 핑크는 놀이의 존재론을 통해 놀이에 담긴 무無의 속성에 주목하고 주체 중심의 전통 형이상학을 극복하려고 했다.

놀이의 고대․근대․현대적 사유 유형을 추적하다

1부에서는 놀이에 대한 고대의 사유 유형을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을 통해 살펴본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놀이를 본격적으로 철학의 주제로 삼은 최초의 철학자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놀이하는 아이aion’를 통해 삶과 세계의 본질을 파악한 것과 달리 플라톤은 놀이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플라톤은 놀이를 미메시스(모방), 즉 원본(실재)에 대한 모사로 취급함으로써 실재와 거리가 먼 허상 또는 쓸데없는 짓으로 평가한다. 플라톤은 특히 예술가의 창작행위를 전형적인 놀이로 보고, 예술에 대한 평가절하의 근거로 삼는다. 놀이에 대한 플라톤의 이해는 그 후 오랫동안 놀이를 진지하지 못한 것, 진리와 거리가 먼 거짓과 관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선입견의 출발점이 되었다.

2부에서는 놀이의 근대적 사유 유형을 칸트와 실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근대에 들어 놀이는 새롭게 조명받는데 그것은 근대가 인간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심미적 존재라는 사실을 간파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칸트에게 놀이는 독립적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필연과 자유의 세계를 연결하는 끈이라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칸트가 놀이에 관심을 둔 이유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사이에 놓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실러는 칸트의 미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실러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이성에 기초한 형식충동과 그것에 대립하는 감성충동이 모두 필요하며, 건강한 문화는 두 충동의 조화에서 가능하다. 두 충동이 조화를 이룰 때 제3의 충동이 발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놀이충동이며, 예술은 바로 이 놀이충동에서 비롯된다. 예술을 하는 동안, 즉 놀이를 할 때 인간은 비로소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다.

3부에서는 놀이의 현대적 사유 유형을 탐색한다. 놀이철학에서 니체가 차지하는 지위는 특별하다. 20세기 중반 유럽 문화에 대한 전면적 반성이 제기되기 반세기 전, 이미 니체는 유럽 문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놀이에 주목한다. 유럽 가치의 재평가를 통해 니힐리즘을 극복하려 한 니체가 찾은 돌파구가 바로 놀이이다. 니체의 예술철학, 관점주의, 힘을 향한 의지, 영원회귀는 모두 놀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니체에게 놀이는 전통 형이상학의 극복과 새로운 가치 창조의 모태인 셈이다. 놀이와 관련한 니체의 사유가 전통 형이상학의 극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듯, 하이데거・가다머・핑크의 사유도 주체 중심의 근대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삶의 과정 전체를 언어놀이로 설명하는데, 그에게 언어놀이의 총체가 곧 인간 삶이다. 문화는 삶의 양식이고 삶의 양식이 언어놀이에서 비롯되었다면, 문화의 뿌리는 바로 놀이가 되는 셈이다.

놀이와 우리 시대, 현대 예술과 놀이
4부는 놀이와 우리 시대를 다룬다. 오늘날 예술은 철학 그리고 놀이의 정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대철학의 놀이 사유는 직간접적으로 현대예술의 자양분 역할을 하며, 예술은 삶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계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예술에서 놀이의 정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니체의 역할에 주목한 저자는 놀이정신을 잘 구현한 현대예술이 니체의 놀이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니체의 놀이적 사유에 깊이 공감하고 그것을 예술활동의 근간으로 삼은 대표적인 예술운동으로 플럭서스Fluxus를 꼽을 수 있다. 플럭서스 주창자들이 주장하는 핵심은 ‘모든 것이 예술일 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며, 그들의 이러한 ‘확장된 예술관’을 추동하는 것은 ‘놀이’의 정신이다. 오늘날 디지털 문화가 몰고 온 세계관의 변화는 중심의 끊임없는 이동, 규칙의 약화와 맥락 의존성, 우연성과 생성의 긍정에 근거한다. 디지털 문화의 정신을 대변할 만한 핵심 개념은 놀이이다. 이 점은 디지털 문화를 가장 선도적이고 심층적으로 보여주는 디지털 예술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디지털 예술의 놀이적 성격과 현재성을 프랑스의 디지털 예술가 ‘모리스 베나윤Maurice Benayoun’을 통해 살펴본다.


지음 : 정낙림 / 출판 :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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