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한국인,선다싱 이야기
[전대길의 CEO칼럼] 한국인,선다싱 이야기
  • 김용관
  • 승인 2017.06.08 1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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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어느 날, 티벳에서 성자로 추앙받는
선다싱(S. Singh...1889~1929)이 하산(下山)하는 눈길에 눈 속에서 쓰러져 죽어가는 한 사람을 보았다.

‘아직은 죽지 않았으니 산 아래 마을까지 업고 함께 내려가자’고 동행자에게 제안을 했으나 ‘우리도 힘들고 위험하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혼자 훌훌 떠나 버렸다.

선다싱은 쓰러진 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를 등에 들쳐 없고 산을 내려왔다. 산 아래 마을 동구 밖에 다다르기 전에 눈길 바닥에 얼어 죽은 동사체(凍死體)가 눈에 띄었다. 자세히 그를 살펴보니 혼자서 먼저 산을 내려 온 바로 그 였다.

선다싱은 등에 업힌 사람과의 신체적인 마찰로 인해 체온 저하를 막을 수 있었으며 추운 줄도 모르고 둘이 함께 무사하게 하산(下山)할 수가 있었다. 우리에게 상생(相生)과 상성(相成)의 가르침을 주는 고귀한 실화다.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고 게오르크 헤겔은 말했다. 마음 안쪽에만 달려있는 손잡이를 열고 사랑을 베푼 좋은 사람들이 많다. 그 중에서 선다싱과는 달리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큰 그릇 두 분이 눈에 띈다.

먼저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를 위해 4,242명의 어린이에게 심장병 수술을 시켜 준 하늘나라에 사시는 함태호 오뚜기 명예회장이다.

재균이란 소년은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재균이 아빠는 뇌졸중으로 인해 일을 할 수가 없었고,
할아버지가 학원 셔틀버스 운전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처지였기에 심장병 수술비 1천만 원을 마련하는 건 참으로 큰일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재균이를 그냥 하늘나라로 보내자!"
어떤 도움의 손길도 없어 결국 수술을 포기하려던 그 때에 한 할아버지가 도움의 손길을 보내왔다.

덕분에 재균이는 다섯 번의 대수술 끝에 건강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11살이 된 재균이가 도움을 준 할아버지를 찾았으나 할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재균이가 찾은 날이 바로 그 할아버지의 장례식장 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생전에 무려 4,242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던 주인공은 라면과 식품제조 회사인 오뚜기 그룹의 창업주, 故 함태호(86) 명예회장이었음을 세상에 밝힌다.

1992년부터 24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실천했으며 도움을 받은 어린이들이 보내 온 편지에 일일이 친필로 답장을 보내 준 그의 무한사랑에 머리 숙인다. 선다싱 보다 4,241명의 목숨을 더 구해준 분이다.

‘때론 물질을, 때론 시간을, 때론 진심 어린 마음을 이웃과 나누어 보라. 나의 진심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인생을 바꿀 수가 있다.’
하늘나라의 함 태호 회장의 굳은 믿음이자 신념이다.

두 번째는 '이티(E.T.) 할아버지' 이야기다.
'이미 타버린 사람'의 줄인 말이며 온몸이 주름져 있는 외계인처럼 생겨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가 젊은 시절엔 잘 생긴 외모에 똑똑하고 신념이 굳은 청년이었다.
천막 교회 한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며 공부해서 서울시립대학교 수의학과에 들어갔다. 대학을 졸업 후 덴마크와 인도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렇지만 어느 날, 그는 자동차가 불길에 휩싸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온몸에 3도의 화상을 입은 중환자가 되었다.

화상으로 귀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고, 손은 오리발처럼 붙어버렸으며 얼굴은 일그러졌다. 눈 하나는 의안(義眼)을 했으며 남은 눈마저도 실명 위기가 왔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화상을 입은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는 "아들아, 수고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러나 그는 눈물샘이 타버려서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었다.
그저 가슴으로 엉엉~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모진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청십자 의료조합 일을 하며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벗회', '사랑의 장기 기증본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어린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는 경기도 가평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워 도시의 아이들에게도 대자연과 벗할 기회를 주었다. 하늘나라의 채규철 선생(1937~2006) 이야기이다.

“사고가 난 뒤 고통을 잊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살지 못했을 것이다. 화상 입은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뭇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처럼 살지 못했다.”, "삶에는 두 개의 F가 필요하다.

'Forget(잊어버려라)'과 'Forgive(용서해라)'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한 평생, 교육자의 삶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자신을 불태웠으며 만인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채규철 선생의 말씀이다.

“소나기 30분이라는 속담이 있다. 소나기 먹구름 뒤에는 늘 변함없이 찬란한 태양이 있다. 우리는 늘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 값진 삶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는 것(Donating)이다.
나 자신이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보자.

한국인 선다싱, 함태호 오뚜기 회장과 채규철 선생을 기린다.

전 대 길
(주)동양EMS 사장,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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