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컬럼]말(言)은 체(Sift)로 세 번 걸러라
[전대길의 CEO컬럼]말(言)은 체(Sift)로 세 번 걸러라
  • 김연균
  • 승인 2017.07.04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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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는 마을에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돌프’라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가 마을 앞 나무 밑에서 쉬고 있는데 아돌프란 젊은이가 휘파람을 불면서 나타났다.

소크라테스는 아돌프가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 중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기회에 아돌프의 버릇을 고쳐 주려고 마음먹었다. 아돌프가 다가와 인사를 하고 시키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제 말을 좀 들어보세요. 윗마을에 사는 필립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아세요? 그 착한 친구가 글쎄.....’
이 때 소크라테스는 그의 말문을 막으며 물었다.
“자네가 이야기하기 전에 가루를 치거나 액체를 받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인 ‘체(Sift)’로 자네의 말을 세 번 걸러 보세나.”

‘첫째는 사실이라는 체라네. 자네가 지금 말하려는 이야기는 진실인가?’
그러자 그는 머뭇거리며 ‘아니요. 남에게 들은 이야기’라고 대답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두 번째 체는 선(善)이네. 자네가 하려는 이야기가 진실이 아니라면 최소한 좋은 내용인가?’ 이에 아돌프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아니요. 별로 좋은 내용은 아닙니다."라며 답했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세 번째 체로 걸러보자며 ‘자네 이야기는 꼭 필요한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돌프는 소크라테스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풀죽은 대답에 소크라테스는 아돌프에게 조용히 타일렀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실하지도 않고, 좋은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내게 굳이 말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후, 아돌프는 ‘진실(眞實), 선(善) 그리고 필요성(必要性)’이란 세 가지 체에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조직에서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은 하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친한척하며 아돌프처럼 이 말, 저 말 말전주를 하는 이가 꼭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舌)의 권세에 있다’는 구약성서의 가르침이 있다.
혀(舌)는 인체의 작은 기관이지만 살인의 무기가 될 수도 있으며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영웅(英雄)을 만들기도 하고 바보로 만들기도 한다.

‘이 말이 진실인지? 청자(聽者)에게 유익한 좋은 내용인지? 그리고 꼭 필요한 이야기인지?’를 먼저 3가지 체(Sift)로 꼭 걸러보는 습관을 갖자.

루이스 맨스(Luis Manns)의 이야기가 정곡(正鵠)을 찌른다.
‘When you talk, you tell me what you already know.
Try to learn what others know when you hear’
(말을 할 때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말하라.
들을 때는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을 배우도록 하라).

경청(傾聽)과 관련한 ‘YTT 사고법(思考法)’과 ‘TPO 대화법’을 붙인다.
과거를 돌이켜 보고 새로움을 안다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5자성어가 있지만 대화법에서 지나간 옛날 이야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거(Yesterday)는 20% 미만을, 현재(Today)는 50% 이상을, 그리고 나머지 30% 이상은 내일(Tomorrow)을 화제를 삼자’는 것이 필자가 주장한 ‘Y.T.T 사고법(思考法)’이다.

그리고 ‘이 순간, 말할 때(Time)인가?, 말할 장소(Place)인가? 그리고 말할 상황(Occasion)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말을 나누는 게 ‘T.P.O 대화법’이다. 세 번 생각하고 한마디 말을 하는 게 ‘삼사일언(三思一言)’이다. 말(言)을 체로 세 번 거르는데 3초의 시간을 투자하라는 ‘삼초후일언(三秒後一言)’이란 말을 필자가 새롭게 조어(造語)해 보았다.

글을 배우는 것은 ‘학문(學文)’이며 미지(未知)의 세계를 학구열(學究熱)을 갖고 ‘물어서 배우는 것’은 ‘학문(學問)’이다. 그럼 (눈으로 보며)귀로 들어서 배우는 것은 ‘학문(學聞)’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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