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 칼럼] 고자질과 흥청망청(興淸亡淸) 
[전대길의 CEO 칼럼] 고자질과 흥청망청(興淸亡淸) 
  • 편집국
  • 승인 2018.01.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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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묵 시치미 등 우리말의 정겨운 어원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남의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타인에게 실토하는 것을 ‘고자질’이라고 한다. 믿음이 없고 비겁한 행동이다. 그런데 고자질이란 말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남자로서의 생식기가 불구(不具)가 되어 성생활이 불가능한 남성이 고자(鼓子)다. 궁궐에서 사는 내시(內侍)들은 모두가 고자다. 

궁궐의 후궁(後宮)들은 왕의 여자이기 때문에 부적절(不適切)한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 내시를 들일 때 마다 꼭 거세(去勢) 했다. 거세 후에는 남성호르몬 대신 여성 호르몬이 더 많아지게 되어 내시들은 자연스럽게 여성화(女性化)된다. 

내시들은 말(言)이 많고 말로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궁궐은 늘 시끄러웠다. 하도 시끄러워서 ‘고자 놈들이 고자질하고 자빠졌네’가 ‘고자질’이 되었다. 

연산군은 조선8도에 채홍사(採紅使)를 파견, 아름다운 처녀를 기생으로 뽑았다. 고을마다 원님이 기생들을 관리하게 하고 기생들 이름을 '흥청(興淸)'이라 했다. 

연산군은 흥청이와 놀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 실각(失脚)했다. ‘흥청이랑 놀다 망했다’고 해서 ‘흥청망청(興淸亡淸)’이란 말이 생겨났다. 망청(亡淸)은 운(韻)을 맞추느라고 덧붙인 말이다.

조선14대 선조가 임진왜란 피난길에 맛있게 먹었던 생선이 '은어(銀魚)‘다. 그 후 선조가 예전의 그 맛이 생각나서 은어를 먹어 보니 그 맛이 아니어서 도로 '묵'이라고 해서 ‘도루묵’이란 말이 생겨났다.  

도루묵
도루묵

'시치미 떼다'의 어원을 알아본다. ‘시침(始針)’을 ‘시치미’라고도 한다. 
시침(始針)은 본바느질을 하기 전에 본바느질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기 위해 군데군데 임시로 뜨거나 박음 선을 표시하기 위해 임시로 꿰매는 것인데 이 것을 ‘가봉(假縫)’이라고도 한다. 

이런 행위가 '시침질'이고, 시침을 한 실(絲)을 '시침실'이다. 시침실은 본바느질인 박음질이 끝나면 흔적이 나지 않게 막 바로 뜯어버린다. 

그래서 어떤 일을 저지르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뻔뻔한 표정을 지을 때에 ‘시치미(를) 뗀다'고 하는 게 그 유래(由來)이다.
 
옛날 농촌에서는 누에를 치거나 삼 ·모시· 목화 등을 길러서 명주, 삼베, 모시 베, 무명 등을 자기 집에서 자가(自家) 생산했다. 

집안에서 물레를 직접 돌려 실을 잣거나 베틀에 올라 옷감을 짜는 게 길쌈이다. 길쌈이 끝나고 겨울이 되면 여인들은 식구들의 옷을 밤을 새며 손수 바느질해서 만들어서 입혔다. 

이때 시장기를 달랠 겸 낮에 숨겨둔 누룽지 조각을 혼자 먹고 있는데 이웃 사람이 마실 오면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척하며 옷감에 붙은 시침[시치미]을 떼면서 슬그머니 말꼬리를 돌렸다. 

마실 온 이웃이 이걸 모를 리가 없으며 숨겨둔 누룽지 조각을 뺏어 먹으면서 말했다. "깍쟁아! 내가 모를 줄 알고? 시치미를 떼는 척 하지 마!"라고.
 
또 다른 설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해서 주소를 적어 매의 꽁지 털 속에다 매어둔 네모진 뿔이 '시치미' 또는 '시침'이다. 

학자들은 옛날엔 사냥이 나라에서 장려할 정도로 성행했을 때 매의 꽁지에 매어둔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시치미 떼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것을 정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허지만 이런 주장은 매사냥이 옛날에 아무리 성행했더라도 매사냥은 매를 최소한 2년 이상 길들여 부릴 수 있는 ‘봉잡이’와 같이 한 조를 이루는 사람들이 즐기던 놀이였다. 

매 꽁지에 이름표를 매는 것은 사냥할 때 ‘보라매’가 멀리 달아나서 찾지 못하는 경우를 대비했을 것이라는 점은 있다. 실생활에서 두루 쓰이던 ‘시치미 떼다’의 어원이 매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등잔 옆에서 쓰던 물건은 등잔 밑에서 찾아야 한다. 옷을 만들 때  필요한 시침질은 옛 여인들이 등잔 밑에서 늘 하던 일상의 일이다. 

대화 중에 많이 쓰이는 ‘고자질, 흥청망청, 도루묵, 시치미’란 우리말이 정겹게 느껴진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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