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건설업 특성에 맞는 비정규직 정책과 가이드라인 필요
[기획] 건설업 특성에 맞는 비정규직 정책과 가이드라인 필요
  • 박보람 기자
  • 승인 2018.03.15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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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제로화 정책 대하는 건설업계의 맨얼굴
업의 특성상 비정규직 선호하는 자원도 많아
정규직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안정과 안전 보장되는 일터
건설업이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울상이다 건설업계는 실질적인 정부의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건설업이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울상이다. 건설업계는 실질적인 정부의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나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아웃소싱타임스 박보람 기자] '소득 양극화, 비정규직, 실업률 인상’

2018년 현재 우리나라 고용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짧게 줄이면 이 세 단어로 축약하면 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비정규직 제로화’가 될 것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내놓은 업무 지시 1호로 현 정부가 비정규직 정책에 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에 관한 노동계의 반응은 당연히 호의적일 수밖에 없다. 정규직에 비해 노동조건과 임금, 복리후생 등 여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던 비정규직으로서는 정규직화를 추진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굳이 정규직이 아니어도 좋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건설업계다.

건설업은 업무 특성상 날씨와 공사기간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런 이유 탓에 타 업종에 비해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는 임금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일의 효율을 위해 비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옳다. 정책의 타당성을 떠나 업종의 특성상 수용하기 곤란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 건설업계 종사자들의 속내인 것이다. 

▲일 잘하는 비정규직이 더 대접받는 건설현장
"상시적으로 필요한 인력은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맞지만, 건설공사와 같은 경우 일의 특성상 일감이 늘거나 줄거나 하는 식으로 고용 탄력이 생기기 마련이다. 고용 탄력성을 고려한다면 무조건적인 정규직 채용보다는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현장을 운용할 때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래도 해야 한다고 하니 곤란스러운 것이다. 우리로서는 그저 정부의 눈치만 볼 뿐이다.”

지방에서 아파트를 짓고 있는 한 대형 건설사 간부 A씨의 말이다. 그의 말이 지금의 건설사 관계자들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계절적 요인과 수주산업이라는 특성상 현장 중심의 단기 고용은 불가피한 게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일의 특성상 정규직 비중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음도 물론이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 B씨는 “길게는 3~4년 공사가 진행되는 건설업계에서 정년을 보장하는 정규직화는 현실적이지 않다”며 “솔직히 언제 일감이 없어질지, 늘어날지 모르는 건설업계는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에 전혀 공감하지 못 하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건설산업 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가운데 건설업의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종에서 일하는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인 52%가 비정규직에 달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비정규직 근로자의 비중이 큰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대형 건설사라고 해도 그리 다른 것은 아니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위권내 대형건설사의 경우 근로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 근로자일 정도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2017년 기준, 현대산업개발의 비정규직 비율은 41.2%였고 이는 2016년에 비해 4.2% 늘어난 수치다. 현대산업개발의 비정규직이 높았던 이유는 분양분량이 몰리며 현장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설업은 경기가 좋아질수록 비정규직 인력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다른 산업과 같은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의 경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낫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기술이 뛰어난 A급 타일공, 석공, 배관공의 경우 하루 임금이 15만~30만원선에 이른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따르면 건설업 종사자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평균 1만 7000원, 비정규직은 이보다 높은 1만 8800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규직보다 오히려 비정규직이 더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또 있다. 건설업의 특성상 지역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일을 해야 하는데 근로자에겐 이 또한 부담이 된다. 

건설노동자 B씨는 “정규직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갈 수도 있다”며 “건설업의 특성상 지역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데 정규직이 되면 모두 따라다녀야 한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대구로, 울산으로 옮겨 다닐 순 없는 노릇 아닌가”며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안전한 일터, 안정된 근무환경이 더 중요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정규직 여부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다. 안전한 일터가 바로 그것이다. 일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안전사고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올 3월 엘시티 추락사고로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경찰과 포스코 건설에 따르면 안전점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 건설업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생긴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노동계는 이 문제를 하도급업체가 인력을 채용하기 때문이라며 건설사 본사에서 직접 채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도급단계가 늘어날수록 근로조건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선 직접고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설기업노조는 지난 건설의 날 행사에서 "안전 관리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며 “건설현장 안전 관리자가 비정규직일 경우 현장 안전 문제를 시정하라고 적극 요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한다면 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제로화보다 불법하도급문제로 인한 안전과 안정을 우선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의 일자리 정책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닌 고용의 안정성과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동일입금, 동일노동’ 적용방안의 구체화, 사회간접자본(SOC)예산 확충, 안전 관리자 직접고용 등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노동계는 건설업계의 오랜 병폐인 불법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 현황에 대해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도록 전산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건설사 보고서에 나온 비정규직 현황에는 일용직 등 하청 인력 정보가 정확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설업은 비정규직 전환에 대한 복잡한 셈법이 요구되는 업종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건설업에 특화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정부의 취지는 이해하나 건설업은 비정규직 채용을 안 할 수 없다. 건설업에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비정규직 정책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한 건설사 임원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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