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이슈]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8.03.26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차 휴가는 언감생심, 부당 해고 구제 신청 권리도 없어
노사정 어디서도 신경 쓰지 않는 미운 오리 새끼 신세
법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인 것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실상이다.
법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인 것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실상이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근무하던 이은영씨는 얼마 전 사장으로부터 회사가 어려우니 더 이상 출근하지 말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하루아침에 받아든 해고 통지였지만 부당해고와 관련된 그 어떤 주장도 펼칠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였기 때문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없고 부당 해고를 당하면 노동 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게 이 법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일부 규정 적용 조항에 따라 30일 전에만 통보하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고 근로자는 구제 신청을 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근로자의 권익을 최우선적으로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조차 외면하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들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럽다는 말조차 서슴지 않는다. 정규직 유무를 떠나 법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위치에 놓인 것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실상이다. 

▲52시간 단축 근무 적용대상에서도 제외

지난 2월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격무에 시달리는 근로자들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에겐 이조차도 남의 일이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은 주 52시간 근로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단서조항이 붙은 까닭이다. 

노동계 일각에서 이에 관한 우려를 표하기는 했지만 산적한 다른 문제들에 파묻혀 매몰되고 말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따르면 2018년 현재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근로자 수는 558만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 수 1990만명의 28.1%에 달한다. 전체 근로자 10명 중 3명이 장시간 근로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동권 강화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지고 이에 관한 각종 법안 및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노력이 표출되는 것에 비한다면 의아하기까지 할 정도다. 

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전에도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은 노동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해왔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적용받는 근로기준법에서조차 배제된 존재였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해고 조항 외에도 유급휴가, 연장 수당 같은 부분의 적용 배제 등이 그렇다. 

1년간 80% 이상 출근하면 15일의 유급 휴가를 주어야 하고 연장, 휴일, 야간 근로에는 임금의 50% 이상을 추가 지급해야 하는 근로기준법 규정 역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노동자라면 응당 누려야할 근로기준법의 혜택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관계법은 모든 기업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차별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규모에 대한 차등 없이 적용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혼란과 기업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여 각 법률에서 적용 범위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상시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그 적용 여부를 구분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 11조 2항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을 보면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바로 이 조항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의 발목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문제다. 해외의 사례를 보더라도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우리처럼 광범위하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한 나라는 없다. 독일과 일본, 프랑스 등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법 적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독일은 근로시간, 휴가, 해고 제한에 관한 각각의 개별 법률을 두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역시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준법이 적용된다.

이철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국 사례에 비춰보면 사업장의 규모가 영세하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적용상의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현실을 감안하면 근로기준법은 오히려 영세사업장에 엄격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단축 근로 확대 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늘고 있는 이유다.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12월 발표한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5인 미만 사업체 1239개 중 42.9%는 이미 주당 40시간의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고 있으며 연장근로 시간제한도 22.6%가 적용 중이다. 5인 미만 사업장도 상당수 업체가 근로시간 단축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원회나 국회 입법조사처는 꾸준히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해왔지만, 개정 전에도 개정 후에도 근로기준법은 이를 외면해왔다.

비정규직 못지않은 최우선 보호 계층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이와 관련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이 문제를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서 심도 깊게 논의 중이다. 하반기 중에 이와 관련된 연구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며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이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 제시된다면 그에 따르는 합당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