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닭 벼슬(Cockscomb)과 달걀 노른자위(Yolk)
[전대길의 CEO칼럼] 닭 벼슬(Cockscomb)과 달걀 노른자위(Yolk)
  • 편집국
  • 승인 2018.04.04 08: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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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노블리스 오블리제'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NEN클럽 한국본부 이사

포클랜드 섬(Falkland Island)은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동남쪽 500km, 영국본토로 부터는 무려 12,832km나 떨어져 있는 작은 섬이다. 

아르헨티나가 영국령인 포클랜드 섬을 침공하자 영국과 아르헨티나간의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났다. 이 날은 바로 1982년 4월 2일이다.

이 때 미국은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중재에 나섰는데, 영국의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1925년~2013년) 수상이 당시 미국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M. Haig)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나무랐다. 

“우리에게 타협을 하라는데 미국이라면 타협하겠느냐?  하와이가 일본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을 때 당신네 미국은 어떻게 했느냐? 도죠 일본군 장군에게 타협하자고 말했느냐?” 

그러자 전쟁보다는 타협을 종용했던 미 국무장관은 대처 수상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포클랜드 전쟁이 발발하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이며 왕위계승 서열 2위인 앤드루 왕자도 전투헬기 조종사로서 포클랜드 전쟁에 앞 장 서서 참전했다. 이러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정신의 실행으로 영국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는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인이 되었다. 또한 1,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의 이튼칼리지 스쿨 출신 정치, 경제 지도자의 자식들이 포클랜드 전쟁에 앞 다투어 참전해서 2,000여명이 전사(戰死)했다. 

6.25 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한국전쟁에 참전,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그 당시 밴플리트 미8군 사령관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 수행 중에 전사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아들도 육군소령으로 참전한 바 있다. 중국 모 택동 아들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죽었다.  

이러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프랑스어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한다. ‘귀족의 신분, 고결, 기품, 위엄’이란 뜻의 ‘노블리스(Noblesse)’는 ‘닭 벼슬(Cockscomb)’을 의미한다. 오블리제(Oblige)는 ‘달걀의 노른자위(Yolk)’란 뜻이다.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닭이 자기벼슬을 자랑하지 않고, 알을 낳을 사명이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 이를 알기 쉽게 3가지로 표현한다.   

첫째,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대가(代價)를 바라지 않는 기부’를 말한다(Noblesse Oblige refers to a donation)

둘째,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부유한 사람들이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도덕적인 의무다.(Noblesse oblige is a sense that those who are wealthy have a moral obligation to use their position to help those who are not) 

셋째, 재벌(財閥)들은 그들의 불공정하고 불법적인 사업 관행을 중단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즉 도덕적 청렴에 바탕을 둔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Chaebol operators ought to drop their unfair and illicit business practices and build a new corporate culture based on 'noblesse oblige,' or moral)

뿐만 아니라 신문기자 출신인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해밍웨이(Ernest Hemingway...1899~1961년)'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자신의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모병관에게 ‘군대에 보내 달라’며 통사정을 하며 매달린 적이 있다. 그는 행동파 지성인이였다. 

결국 운전병으로 전쟁에 참전했으며 그 후 스페인 내란 때에도 구급차 운전병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또 2차 대전 때에는 나이어린 병사들과 파리근교의 최전선에까지 참전해서 미국의 최고 무공훈장을 받았다.

소년병으로 참전한 1차 대전의 기억을 되살려 ‘해는 또 다시 떠 오른다’와 ‘무기여 잘 있거라’는 소설을 썼다. 스페인 내란에 참전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란 유명한 소설(小說)을 집필하기도 했다. 

헤밍웨이가 1954년에 노벨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란 소설도 사실은 2차 세계대전 때의 참전경험을 밑바탕 삼아 스페인의  역사 도시, ’론다(Ronda)’에서 집필한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란 소설도 론다 도시에서 썼다. 

어떤 위험을 겪지 않고도 부(富)와 명예(名譽)를 얼마든지 누리고 살 수 있었던 헤밍웨이다. 헤밍웨이가 전장(戰場)에서 전투 중 박격포탄을 맞거나 차량사고를 당하는 등 237 군데의 크고 작은 전흔(戰痕)을 몸에 안고 살았던 그의 삶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증적 증거다.   

헤밍웨이는 스페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romantic)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가장 좋은 도시’는 ‘론다(Ronda)’라고 했다. 

독일의 서정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1875~1926년)’도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이 도시의 매력은 좁고 깊은 계곡으로 두 마을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며 산 넘어 산, 계곡에 계곡이 이어지는 경이로운 론다 도시의 모습은 도저히 묘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시인, 릴케는 ‘쉬고 있는 헤라클레스(Heracles)'라는 동상(銅像)인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Auguste Rodin...1840~1917년)’의 비서로 일했다는 기록에 새로움이 묻어난다.   

끝으로 1970년에 ‘서 종철 육군 참모총장, 국방부장관’(1924~2010년)이 월남전선(越南戰線)을 시찰할 때 그의 아들도 월남전에 참전,  백마부대 진지에서 부자간 상봉을 했었다는 후일담(後日譚)을 풍문으로 전한다.  
그 때 ‘서00 일병’이 서 종철 장군의 아들인지를 아무도 몰랐으며 뒤늦게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월남전 참전용사들의 사기(士氣)가 충천(衝天)했다. 필자가 공군으로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있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화(實話)다. 

영국이나 미국 지도자들의 사례처럼 대한민국 지도자의 아들들이 전선에서 다치거나 전사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NEN클럽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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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진 2018-04-08 10:13:15
"1,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의 이튼칼리지 스쿨 출신 정치, 경제 지도자의 자식들이 포클랜드 전쟁에 앞 다투어 참전해서 2,000여명이 전사(戰死)했다."

이 부분은 잘못된 내용인듯. 이 전쟁의 영국군 총전사자수가 256명 (위키백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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