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눈 가리고 아옹...공공기관의 자회사 활용 정규직전환 셈법
[분석]눈 가리고 아옹...공공기관의 자회사 활용 정규직전환 셈법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8.04.05 09: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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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비정규직 양산하는 졸속 행정, 비판 목소리 커져
정부, 자회사 설립 통한 우회적 정규직화 방안 불가피 역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지난 3월 22일, 청와대는 헌법 개정안 전문을 공개했다. 노동기본권 강화에 초점을 맞춘 이번 개정안 가운데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언급한 제33조 3항이 특히 눈에 띈다. ‘국가는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은 것인데 이를 거스르는 정부의 행보가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공공기관들의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많은 공공기관이 이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문제는 자회사에 배치한 비정규직 인원들에게 본사의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의 임금을 제시할 수 있냐는 점이다.

그게 가능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니라면 자신들이 스스로 제시한 헌법 조항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봇물처럼 터져 나온 공공기관들의 자회사 설립
지난 4월 3일, 한국조폐공사는 자회사 콤스코시큐리티와 콤스코투게더를 출범시켜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통로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총 125명의 비정규직 용역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게 된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골자였다. 이로써 비정규직 ‘제로’를 달성하게 됐다는 조폐공사의 자화자찬이 묻어나는 발표이기도 했다.

이는 비단 조폐공사만의 일은 아니다. 상당수 공공기관들이 이와 유사한 방식을 통해 정규직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2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8년도 주요업무 추진계획’ 발표 당시 올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며 자회사 설립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수광양항만공사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공사는 지난해 12월 6일 자회사인 ‘여수광양항만관리’ 설립과 함께 지난 3월에 특수경비용역 등 104명의 정규직화를 단행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부발전 등 발전 공기업 5개사 역시 자회사를 설립하는 형태로 경비·용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이는 최근 사례에 국한된 것일 뿐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와 관련된 더 많은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5월12일 대통령이 취임 사흘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고 두 달 만인 같은 해 7월 20일 첫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이후 많은 공공기관이 정부시책을 실행에 옮기면서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 방식이었던 탓이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의 지침 덕분이었다. 공공기관들은 노사 합의만 전제된다면 파견 및 용역 근로자를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2020년까지 정규직 전환 목표치인 17만 5000명 중 상당수는 공공기관의 자회사에 소속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실적으로 무조건적인 정규직 전환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는 충분히 훌륭한 대안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은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 코레일 사태로 지켜본 자회사 노동자들의 실태

자회사 활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 시도하는 인천공항공사. 사진은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해 합의 도출한 정일영 사장과 박대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
자회사 활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 시도하는 인천공항공사. 사진은 정규직 전환 방안에 대해 합의 도출한 정일영 사장과 박대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

노동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자칫 이런 식의 정규직 전환이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자회사를 설립·운영한 코레일의 케이스다. 

노동계에 따르면 코레일의 자회사 노동자들은 동일한 업무 수행에도 불구하고 본사 노동자의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고 더 오래 일하는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자회사는 본사와 별도로 운영되는 회사이기 때문에 근무 규정이나 임금 규정을 따로 설정할 수 있다는 걸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실질적 노동조건의 결정권을 원청이 갖고 있기에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으로 원청의 책임을 회피한 사례로도 인용된다.

코레일 사태의 재연을 우려한 노동계 측에서는 처음부터 자회사를 활용한 정규직 전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해오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답변을 내어놓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간간이 이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 나오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난해 7월 20일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재연에 불과하다.즉,정부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해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뚜렷한 지침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은 실제로는 파견, 용역업체 등의 간접고용 방식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 모호한 가이드라인 손질하고 추가적 기준 제시해야
정부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는 ‘용역계약 형태 운영을 지양하고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 및 전문적 업무수행 조직으로 실질적 기능을 하도록 경영‧인사관리체계를 운영할 필요’라고 언급할 뿐 추가적인 설명이 없어 실무적으로 혼선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논란의 소지가 될 만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보다 강화된 추가적 기준 역시 제시되어야 한다. 노동계가 원하는 것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경영 전문성 및 효율성 확보를 위해 사업영역별로 분사에 준하는 사업조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간접고용 인력만으로 자회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정규직 조직까지 자회사로 소속을 옮기는 방식이다.

둘째, 제대로 된 정규직에게 부여되는 실질적인 노동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동종 유사업무 정규직과의 차별 없는 노동조건 보장과 안정적인 고용 보장 등 정규직이 누리는 수혜를 동등하게 누려야 한다. 앞서 언급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요소는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보장이다. 노동자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자와 대화에 나선다 해도 자회사와의 교섭만으로는 실체적인 결과를 얻기 힘들다. 원청에게 실질적인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이 없는 원청으로서는 노조와의 대화를 거부해도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이에 대해 공공연대 남궁정 선전부장은 “원청에게 사용자의 권한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는 현재의 기형적인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작금의 자회사 활용을 통한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 방식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간접적 고용 방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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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공항 2018-04-05 12:35:35
최고의 기사 잘 봤습니다.짝짝짝

고단한 삶 2018-04-05 18:30:06
공공기관이 이러는데 일반 기업들이 뭘 보고 배울지...

인천공항공공운수 2018-04-08 09:30:21
어떻게 같은 민노지만 너무 틀리네 요기 민노는 어영이라 공사에서 하자는건 무족건 찬성하는데 공긍운수가 어영 민노인가?

이경 2018-04-19 13:34:35
정규직으로 전환된지금. .
비정규직때보다 힘든 노동과 임금, 복지 . . 뭐하나 나아진것없고 오히려 직원말을 들어줄생각도안하는 갑들이 생겨났다 반으로 줄어든다던 여객의 편수가 종전과 다르지않음에도 직원수는 반으로 줄어들어 직원들이 고통받고있다 전직원들이 다시 비정규직때로 가고싶어한다는걸 알고나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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