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 칼럼] 캠퍼스(Campus)와 하이힐(Highheel)
[전대길의 CEO 칼럼] 캠퍼스(Campus)와 하이힐(Highheel)
  • 편집국
  • 승인 2018.05.1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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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아는 말이다.

‘로마인이 통치하다’는 뜻의 '로만레인즈(Roman Reigns)'란 프로레스링 선수(190.5Cm, 120Kg)가  프로레스링 레슬마니아(Wrestlemania) 4각의 링(Ring)에 올라 양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와우~!’하고 포효(咆哮)하면 그의 카리스마(Charisma)에 장내는 조용해진다. 로마인의 보이지 않는 우월감(優越感)을 드러내는 듯 몸짓 같다.  

현재 세계인이 쓰고 있는 달력(月曆)도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가 만든 것이라고 전한다. 1년 12개월 중에서 8월에 로마황제, 자신의 이름을 붙여 ‘오거스트(August)’라고 했다.  

그 밖에도 로마인의 발자취는 유럽의 여러 나라는 물론 동서양의 가교인 터키, 이스탄불을 넘어서 우리가 쓰고 있는 말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로마인들은 숲으로 뒤덮이지 않은 평야지대를 ‘캠퍼스(Campus)’라고 불렀다. 
로마인들은 탁 트인 평지를 보면서 두 가지 특징을 생각했는데 첫째는 ‘농사짓기에 좋은 곳’이며 둘째는 ‘적과의 전투(戰鬪)에 유리한 지형’이다. 

우리가 현재 대학교 정원(庭園)이나 부지(敷地)를 캠퍼스라고 부르는 것도 군대가 막사를 짓고 진(陣)을 친 야영지(野營地), 진영(陣營)이란 뜻의 ‘캠퍼스(Campus)’에서 유래했다. 

로마의 장군들은 적군에게 숲에서 기습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면 탁 트인 평야지대인 캠퍼스에 진영(Camp)을 차리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따라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캠핑(Camping)’의 어원은 ‘캠프(Camp)’에서 유래했다.  

6.13 지방자치단체장 출마자들의 선거대책본부를 ‘캠프(Camp)’라고 부름도 마찬가지다. 

로마 군대가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로마군대에 유리한 지형, 평지인 캠퍼스로 나가 적군과 싸웠다. 전투가 벌어질 경우에 로마군대 전투장비의 전개와 광활한 평야지대에서 사방을 경계할 수 있는 시야 확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전투작전을 전개하는 것을 ‘캠페인(Campaign)’이라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광고나 선거유세도 캠페인이다. ‘캠페인을 승리로 이끈 사람(Field를 차지한 사람)을 ’챔피언(Champion)‘이라 한다. 

2000년 전의 로마 군인들은 소금(Salt)으로 월급을 받았다.
지금도 직장인이 매월 받는 월급이란 영어단어인 ‘Salary’의 어원은 로마 군인들이 받았던 소금(Salt)에서 유래했다. 
   
로마 시민들은 대체로 집 밖에서 생활했다. 거리에는 약국, 빵집, 가게, 음식점, 이발소, 세탁소까지 잘 갖추어져 있었다. 

로마 시민들은 1년 365일 중 공휴일이 120일이었다. 공휴일이면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사의 경기를 보러가곤 했다. 체육경기와 서커스, 연극을 주로 보았는데 이런 오락거리 모두가 공짜였다. 

그리고 로마 사람들은 남녀 모두가 ‘튜닉(Tunic)’이라 불리는 옷을 즐겨 입었다. 소매가 없는 헐렁한 옷으로 그 길이가 무릎 근처까지 내려왔다. 

뿐만 아니라 로마인들은 목욕하길 무척 좋아했으며 목욕은 중요한 일상생활 중 하나였다. 로마에는 856곳의 대중목욕탕이 있었단다. 목욕탕은 로마인들의 세신(洗身)하는 장소이자 친교의 장(場)이며 그리고 휴게실, 간이음식점 등으로 쓰였다.

2000년 전(서기 65~75년경) 영국 땅을 정복하고 로마인들은 원주민 켈트족의 성지(聖地)였던 '배쓰(Bath)란 도시'에 로마식 온천탕(Roman Bath)과 사원을 건립했다. 

인구 300,000명의 아름다운 도시의 ‘배쓰대학교(Bath University)’는 영국에서 5번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대학교로 일컫는다. 목욕이란 뜻의 ’Bath'란 영어단어가 바로 ‘Bath'란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영국에서 유일하게 자연 온천수(섭씨 46도)가 솟아나지만 대중목욕탕으로 쓰이지 않는 관광명소다.  

노천탕, 냉탕, 온탕, 도서관, 예배당이 있었으며 상류층만 이용하던 Bath 온천탕(湯)에서 필자가 손가락을 담가 보았다가 ‘앗~! 뜨거워!’하며 손가락을 얼른 뺀 적이 있다. 

로마인들의 화장실 문화는 현재 기준으로 보면 낙제점이다. 
여럿이서 촘촘하게 구멍을 뚫어 놓은 좌변기에 앉아서 앞 사람, 옆 사람과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며 용변을 보았단다.

이러한 풍습은 중국 땅에서 30년 전 까지도 실제로 있었다.
1989년 6월, 필자는 로마인처럼 용변을 보아야 할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필자가 한국경총자총협회 경제시찰단원으로 북경의 중국기업가협회를 방문했을 때이다. 

천안문 광장을 둘러보던 중에 갑자기 아픈 배를 움켜쥐고 천안문 광장의 공중화장실로 들어서니 어두컴컴한 화장실에 두 눈만 껌벅이는 인민복 차림의 중국인들이 바지를 내리고 옆으로, 앞으로 쭈욱~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무섭기도 하고 얼른 밖으로 뛰쳐나와 인근의 호텔 화장실로 달려간 적이 있다. 로마시대의 공중화장실과 다를 게 없었다.  
 
로마의 길거리엔 더러운 오물이 널려있어 똥을 피하기 위해 로마인들이 굽 높은 하이힐(Highheel)을 신었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주장은 16세기 베네치아 여인들이 길거리의 오물을 피해 다니기 위해 신었다는 ‘초핀(Chopin)’이 현대적인 하이힐의 시초라고 한다.
  
키가 작은 루이14세는 태양王이란 신분을 과시하려고 하이힐을 즐겨 신었으며 루이15세의 ‘퐁파두르(Pompadour..1721~1764년)’ 애첩(愛妾)도 애용했단다. 

수천 켤레의 하이힐을 소장했던 루이14세는 자신의 각선미에 도취(陶醉)한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였다. 그리고 여성용 하이힐 보다 남성용 하이힐이 훨씬 더 화려했다. 

길거리의 오물을 피해 다니기 위해 옛 사람들이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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