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 칼럼] 참수(斬首)당한 끽연자(喫煙者)들
[전대길의 CEO 칼럼] 참수(斬首)당한 끽연자(喫煙者)들
  • 편집국
  • 승인 2018.06.0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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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에 대한 모든 지식과 추억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세계보건기구(WHO)는 1987년에 창설 40주년을 맞아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매년 5월31일을 ‘세계 금연의 날’로 지정했다. 

담배는 인간에게 마약(痲藥)처럼 백해무익(百害無益)하며 수많은 질병발생의 요인이며 중독성(中毒性)이 강하다.  

1492년, 오랜 항해 끝에 인도 땅인 줄 알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1451~1506년)’ 이탈리아 탐험가는 원주민에게 유리구슬 등을 주고 그 답례로 "타바코Tobacco)"라는 풀 잎사귀 선물을 받았다. 이 것이 바로 세상에 알려진 ‘담배(Tobacco)의 기원’이다. 

이렇게 해서 담배는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포르투갈 주재, ‘장니코(Jean Nicot...1530~1600년)’란 프랑스 대사는 담배의 효능에 감탄해서 1550년 담배씨를 파리로 보냈으며 극심한 두통으로 고생하던  앙리4세의 ‘카트린Catherine de Medicis...1519~1589년)’왕비에게 두통치료제로 진상(進上)된다. 

그녀는 코로 냄새를 맡는 분말담배인 ‘스너프(Snuff)’를 무척이나 좋아했으며 이런저런 연유로 담배는 프랑스 중상류층에 급속히 퍼진다.   

그 당시 두통 치료용 담배는 스너프 형태로 처방이 되었으며 이는 담배연기를 코로 들이마시는 흡연방법이다. 스너프 형태의 코담배는 18세기 유럽 상류층의 신분을 뽐내는 과시용이기도 했다. 귀족(貴族)이나 성직자(聖職者)들도 코담배를 즐겼다고 한다.

담배 속에 들어있는 식물의 2차 대사물질인 ‘니코틴(Nicotine)’이란 명칭도 ‘장니코(Jean Nicot)’란 프랑스 외교관 이름에서 왔다. 

담배에 얽힌 인디언의 전설이다. 
한 인디언 소녀가 추한 얼굴로 태어나 일평생 연애 한 번 할 수 없었다. 마음은 착하고 순수했지만 뭇 남자들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부모 사랑도 받지를 못했다.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며 그녀가 자살(自殺)하며 “내세(來世)엔 세상의 모든 남자와 키스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그 후, 그녀가 죽은 자리에 풀 한포기가 돋아났는데 이 풀이 바로 ‘담배’란다.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자는 무려 11억 명이며 남성의 47%, 여성의 12%가 끽연자다. 결론적으로 인디언 소녀는 소원을 이루었다. 세상의 뭇 남성과 입맞춤을 하며 뜻하지 않게 뭇 여자와도 키스를 하니 말이다.   

그리고 중국이 세계의 굴뚝(?)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세계 흡연인구의 1/3은 중국인이다. 미세먼지와 황사(黃紗)는 물론 중국인의 담배연기 속의 다량의 유해물질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북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憂慮)된다. 

학창 시절 창고나 화장실, 야산 등에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다 선생님께 발각되어 혼쭐이 난 불량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면 떳떳하게 끽연(喫煙)한다. 

군대에 입대하면 신병교육대에서 화랑담배를 한 보루씩을 나누어 주어서 재래식 화장실엔 뿌연 담배연기 속에 여기저기에서 ‘켁~!, 켁~!’하는 기침소리가 넘쳐난 시절이 있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사무실엔 책상마다 개인별 재떨이가 놓였으며 상사와 맞담배질 하며 담배연기를 내 뿜을 때엔 목이 따갑고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게 먼 옛날이 아니다. 불과 30~40년 전 모습이다. 

직장 여사원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재떨이를 비우고 보리차를 끓였으며 여비서는 상사의 담배를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했었다. 거래처를 방문하거나 고객을 만나면 담배부터 먼저 권하곤 했다. 그 시절엔 커피가 귀해서 담배를 피고 보리차를 마시면서 비즈니스 상담을 했었다. 
    
그러나 세월이 바뀌어 오늘의 끽연자(喫煙者)들은 ‘추운 겨울에도 밖에 나가 숨어서 담배를 피워야 하나?’란 푸념을 한다. 금연 장소는 점차 늘어나서 끽연자의 설 땅은 없으며 선진국일수록 담배 값은 비싸기 그지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담배의 해악을 잘 알고 있으며 담배가 보급된 초기부터 흡연자와 비흡연자 사이에도 갈등과 싸움이 있었다. 

‘혐연가(嫌煙家)’인 ‘영국의 ’제임스 1세’ 왕은 금연 구역을 지정하는 법안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 
“입에서 내뿜어지는 악취(惡臭)나는 연기(煙氣)는 땅 속의 갱(坑) 속에서 분출하는 지옥의 연기와 같다”라며 ‘제임스 1세 왕’은 담배 연기에 대한 물리적 혐오(嫌惡) 외에도 담배연기가 연상시키는 종교적인 혐오감도 대단했다. 

최초의 영국인 흡연자는 정치인, 시인, 탐험가인 ‘월터 롤리(Walter Raleigh...1552~1618년)경(卿)’이다. 
그는 신대륙에서 공수한 담배를 집에서 즐기곤 했다. 그가 담배피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주인 머리에 불이 났다며 하인들이 기겁해서 물을 끼얹었다는 일화(逸話)도 있다. 

‘월터 롤리(Walter Raleigh)경’은 담배를 못 끊어서 혐연가(嫌煙家)인 제임스 1세에게 목을 잘리는 참수(斬首)를 당했다.

끽연자라면 담배 불을 붙이기 전에 ‘월터 롤리(Walter Raleigh)경’의 명복(冥福)을 비는 묵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우리나라엔 언제쯤 담배가 들어왔을까?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에는 임진왜란(1592년) 후인 1616년에 일본을 통해 조선반도에 담배가 들어왔으며 1621년엔 남녀노소 모두가 담배를 피워댔다고 한다. 

서당(書堂)에서는 훈장과 학도가 마주보고 맞담배질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세계 최초의 금연운동가’란 타이틀을 영국 제임스 1세에게 근소한 차이로 빼앗긴 이는 조선의 15대 왕인 광해군(光海군...1608~1623년)이다. 

조선 시대 왕과 조정의 대신들이 조회를 하는 정전(正殿)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광해군은 뿌연 담배연기와 악취에 대노(大怒)해서 왕(王)의 면전(面前)에서 담배를 피우는 신하는 모두 죽이겠다고 어명(御命)을 내렸다. 
그 후로 왕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했으며 이것이 민간으로 퍼져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게 예절(禮節)로 자리매김했다.  

광해군은 죽이겠다는 협박만 했으며 영국 제임스 1세는 한 사람의 목을 잘랐으나 오스만제국의 ‘무라드 4세(Murad...1612~1640년)’는  무려 30,000명의 흡연자 목을 칼로 자르는 참수(斬首)를 단행했다.

무라드4세가 담배를 혐오(嫌惡)한 것은 터키 이스탄불(Istanbul)에 세계 최초(1544년)로 문을 연 카페인 ‘차이하네(Cayhane)’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술탄을 비난하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란다. 

1633년 이스탄불 대형 화재(火災)의 원인이 흡연 때문이었다는 설도 있다. 원인이야 어쨌든 그의 담배 혐오는 대단했다. 부자든 귀족이든 외국인이든 담배를 피우는 이는 무조건 목을 잘랐다. 

심지어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터키주재 프랑스 대사관 외교관들이 면책특권을 외치며 대사관 안에서 담배를 피우자 군대를 보내 담배를 피우던 프랑스 외교관들의 귀를 자르고 추방했다. 

프랑스 측에서 거센 항의에도 무라드 4세의 대답이 압권(壓卷)이다. “외교관 특권을 감안해서 목은 자르지 않고 봐준 것이다.”라고.

무라드4세는 술탄인 몸으로 거지 분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적발해서 현장에서 목을 베었으며 부하들을 내보내서 흡연자를 색출했단다. 무라드4세는 담배의 원수인 슐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흡연자들은 목숨을 걸고 담배를 피웠는데, 사람들은 ‘콜로냐(Kolonya)'라는 독한  레몬 향수를 개발, 손이나 입가에 뿌려 담배 냄새를 숨기려 했다. 

이런 탄압을 겪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터키인들은 담배금지령이 사라지자 세계적인 골초 왕국이 되었다는 후일담이 있다.

17세기 독일에서도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하면 법정에 서고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칼뱅주의에 심취한 사회분위기 덕에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겼으며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은 법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1848년 3월, 독일 동북부 프로이센에도 혁명의 기운이 용솟음쳤다. 성난 폭도들은 당장에라도 왕을 끌어내 참수할 기세였고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어떻게든 민중을 진정시키고 민중들에게 특사를 보내 달랬는데 민중들이 내세운 것은 헌법제정과 검열 폐지,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권’이었다. 

결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왕은 민중의 요구를 수용했다. 아무 데서나 눈치를 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게 민중의 크디 큰 성과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군주가 담배를 싫어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 22대 ‘정조(正祖)대왕’은 “여러 가지 식물 중에 이롭고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南靈草)’만 한 것이 없다. 민생에 이용되는 것으로 이만큼 덕이 있고 이만큼 공이 큰 게 어디 있느냐?”라며 담배 애호가로서 또한 골초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정조는 담배가 몸에 좋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그 탓인지 민간에서는 담배가 편두통, 매독 등에 효과가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래서 배가 아픈 아이에게 담배를 물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 풍습은 1970년대까지 민간요법으로 전해 내려왔다.

흡연자 입장에서는 강제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상황은 죽을 만큼 괴로운 경우다. 담배의 중독성은 마약류보다 더 강하다. 

애연가의 슬픈 이야기다. 
오스트리아의 의사(醫師)이며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지그문드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년)’는 젊어서부터 담배를 피웠다. 그는 담배를 끊으려다 우울증이 걸려 그 당시엔 합법이었던 코카인을 복용했다. 

그가 코카인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또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으며 노년에는 구강암에 걸려서 자신의 턱을 잘라내고 인공 턱을 붙였지만 끝내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전쟁(戰爭) 중에도 병사들은 흡연 욕구를 참기가 힘들어서 한밤중에 담배를 피우다 적군(敵軍)에게 발각돼 사살당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해서 금연할 흡연자들이 아니다. 담배대체품은 바로 입으로 씹는담배다. 껌을 질겅질겅 씹듯이 말이다. 연기를 내뿜지 않으면서 니코틴을 섭취할 수 있기에 군인들에게 많이 보급되었다. 화재위험이 있는 현장의 인부들도 애용했다는데 전자담배가 세상에 나온 현재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요즘 끽연자는 참 다행이다.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옛날처럼 참수(斬首)당할 걱정은 없으니 말이다. 

끝으로 대한민국 공군 신병시절에 컵에 물을 떠 놓고 ‘켁켁~!’대면서 화랑담배를 배운 후 줄곧 담배를 피워오다가 제17회 월드컵 개막일인 2002년 5월31일, ‘서울월드컵 개최 기념’으로 필자는 담배를 끊었다.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16년 동안 단 한 개비의 담배도 손에 들지 않았다. 

앞으로도 필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 진짜 사나이의 다짐이다. 
동양EMS 본사도 담배연기나 담배냄새가 절대로 나지 않을 것이다.  

*(註) 애플북스 출판사의 ‘사물의 민낮(저자:김지룡/갈릴레오SNC) 책자 내용 중에서 일부 내용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전     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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