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의 철도 이야기] 세계철도의 역사
[장범석의 철도 이야기] 세계철도의 역사
  • 편집국
  • 승인 2018.08.0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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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이후 철도의 태동과 핵심교통 수단으로 전세계로 뻗어나간 철도 역사조망
Liverpool and Manchester 철도의 개통식 ⓒ위키피디아 제팬
Liverpool and Manchester 철도의 개통식 ⓒ위키피디아 제팬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사람과 물자의 대량수송 수요를 촉발했다. 1804년 리처드 트레비식이 증기기관으로 궤도를 달리는 차량을 내 놓으며 그 대안으로 철도가 부상한다.

최초 상업운전에 성공한 철도는 1812년에 등장한 톱니바퀴 구동방식(Rack and pinion)으로 운행한 살라망카(Salamanca)라는 열차였다. 그 후 조지 스티븐슨에 의해 기관차 성능과 레일시스템이 개량되고 근대 철도의 기틀이 완성된다.

차량 제작자이자 경영자이던 스티븐슨은 철도역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들 로버트 스티븐슨과 함께 근대 증기기관차의 표준이 된 ‘로켓호’를 제작하고, 서로 다른 궤도를 달리는 열차끼리 접속할 수 있도록 간격을 통일하는데도 기여했다.

오늘 날까지 각국에서 표준궤로 통용되는 폭 1,435mm는 이 때 정해진 것이다. 세계최초로 시각표를 정해 운행한 철도는 1830년 영국 맨체스터와 리버풀 50km를 잇는 정기편이었다.

이 때부터 미국과 유럽 각국이 앞 다투어 철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1827년 미국, 1832년경 프랑스에 이어 1835년 독일이 철도를 개통한다. 이 중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1835년 선로길이가 1,600km를 넘어선다. 1850년대에는 미시시피 동쪽 모든 주에 철도가 깔린다.

이러한 열풍은 철도가 높은 수익을 올리는 신사업으로 각광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쿡이 철도망을 이용한 패키지투어를 선보인 것도 이 무렵이다. 동서를 연결하는 대륙횡단철도는 멕시코로부터 할양받은 캘리포니아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나며 건설이 앞당겨진다.

1869년 5월 첫 노선이 개통되고 서부 이주에 가속이 붙는다. 이후 1800년대 말까지 3개 노선이 추가로 건설된다. 철도가 깔리는 동안에도 열차는 쉬지 않고 주행속도를 높여, 1893년 ‘미합중국999’ 열차가 시속 160km를 기록한다.

피터 쿠퍼가 제작한 미국최초의 증기기관차 ⓒ위키피디아 제팬
피터 쿠퍼가 제작한 미국최초의 증기기관차 ⓒ위키피디아 제팬

한편, 러시아는 1872년 그루지아의 트리비시~포티 간 개통을 시작으로 본격 철도 건설에 나선다. 1880년 중앙아시아 각 지역, 1887년에는 사마르칸트까지 선로를 늘린다.

1891년부터는 프랑스 자본으로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에 들어간다. 이 철도가 영국과 일본을 자극해 1902년 동맹을 맺게 한다. 양국은 러시아가 철도로 대규모 군사이동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시베리아 철도는 일본과 전쟁이나 혁명이 일어난 와중에도 건설이 이어져 1913년 9,000km가 넘는 세계 최장노선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1904년 청나라와 협약을 맺고 만주 북부를 경유하는 동청(東淸)철도라는 단축노선을 먼저 개통한다.

 1800년대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다. 동양을 침략하는 서구열강으로서는 넓은 식민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자원을 실어 나르는데 철도만한 것이 없었다.

반면 현지인들은 철도가 나라를 침략하고 자원을 수탈하는 앞잡이라며 저항했다. 아시아 최초로 철도가 놓인 인도에서는 영국이 경비절감을 위해 노선마다 규격이 다른 궤도를 부설해 국내시장이 분단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게다가 신분에 따라 객실 등급을 차별화함으로 전국에서 반영(反英)운동이 거세게 인다.

중국도 1876년 영국에 의해 상해~오송 구간이 개통되지만, 허가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곧 철거해 버린다. 청・일 전쟁 후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과 러시아에 부설권을 넘기지만, 의열단의 공격대상이 되고 마침내 신해혁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일본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 그들은 일찍이 철도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도입을 추진했다. 1872년 영국의 도움으로 토쿄 신바시(新橋)~요코하마 구간을 개통하는 한편 인력양성에 힘을 기울여 1879년 일본인 첫 기관사를 배출한다.

1890년경에는 자체 인력으로 신바시에서 코베(神戸)에 이르는 약 600km의 토카이도(東海道)선을 완성한다. 사철(私鉄)이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토쿄에서 동북지방을 연결하는 우에노~아오모리는 카조쿠(華族, 귀족)자본으로 설립한 일본철도에 의해 완공되었다.

그 후 일본은 영국이 그랬듯 조선과 중국에 철도를 부설하고 식민통치의 수단으로 삼는다.

요코하마역 풍경 1874년 우타가와・히로시게(歌川広重)작품 ⓒ위키피디아 제팬
요코하마역 풍경 1874년 우타가와・히로시게(歌川広重)작품 ⓒ위키피디아 제팬

1900년대 들어 세계철도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다. 1876년 650km에 불과하던 멕시코 철도는 1911년 24,000km가 되고, 서구문명에 폐쇄적이었던 중국도 1900년 470km에서 1913년 10,000km로 선로를 대폭 확장한다.

인도는 1900년대 초 선로길이가 4만km에 달하는데, 당시 미국・캐나다・러시아에 이은 세계 4위 규모였다. 아프리카에서도 이집트나 알제리처럼 식민지화가 일찍 이루어진 북부지역과 광산자원이 풍부한 남아공지역을 중심으로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다.

기관차를 움직이는 동력은 증기력, 전력, 그리고 디젤이다. 질풍노도의 1800년대 이 세 가지 기술이 모두 유럽에서 완성된다.

처음 증기력에 의존한 열차시스템은 1866년 발전기가 나오자 전력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공해 없는 전기 노면전차가 1881년 독일에 이어 1883년 영국에 등장하고, 1888년부터 미국 주요 도시에 급속히 보급된다.

특히 경사가 급한 산악지역에서는 수력발전을 이용한 전기 기관차가 증기력을 대체하는 동력으로 각광 받았다. 디젤은 1892년 루돌프 디젤이라는 프랑스계 독일인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디젤이 기관차에 장착되어 실용화되는 것은 1920년대부터다. 디젤은 증기기관보다 연비가 좋고 전봇대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미국과 러시아처럼 장거리 구간이 많은 나라들에 의해 집중 도입되었다.

 그 후 전기를 이용한 모델이 나오고 충전식・액체식 동력전달장치가 개발되는 등 디젤은 지금도 중요한 기관동력으로 많은 나라에서 활용하고 있다.   

 

장범석

칼럼니스트일본어통역안내사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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