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의 철도 이야기] 일본 철도, 140년 역사 세계 철도승객 30% 차지하는 철도대국
[장범석의 철도 이야기] 일본 철도, 140년 역사 세계 철도승객 30% 차지하는 철도대국
  • 편집국
  • 승인 2018.09.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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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토쿄(東京)~요코하마(横浜) 구간 개통하며 철도역사 시작
미국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사철제도로 신규노선 건설박차
국력 총동원해 완성한 철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그 진가 발휘
열차 종류는 고속열차・일반열차・침대열차・노면전차・지하철・모노레일・증기기관차 등 다양
320km/h로 주행하고 있는 하야부사 ⓒ위키피디아 제팬
320km/h로 주행하고 있는 하야부사 ⓒ위키피디아 제팬

세계 최초의 고속열차 신칸센(新幹線), 초 단위를 따지는 정시성, 촘촘한 운행간격, 출근시간대의 초만원 열차, 혼슈(本州)와 큰 섬 3개가 종횡으로 연결된 철도망,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이벤트 열차, 친절한 역무원과 승무원... 우리를 비롯한 외국인 눈에 비친 일본 철도의 이미지는 대략 이런 정도일 것이다.

일본인들의 철도 사랑은 유별나다. 1963년 창간 후 매월 발행되는 JR시각표를 잠시 살펴보자. 1,000 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자 속에는 열차여행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색인 노선도를 따라 들어가면 원하는 열차명과 발착시각을 알 수 있고, 환승정보와 소요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각종 할인티켓・기념승차권・지역이벤트와 캠페인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부록으로 지하철・항공・고속버스・훼리・공항버스・투어버스 등 다른 교통수단도 정리돼 있다. 심지어 로프웨이 운행시간과 요금까지 상세히 나온다. ‘여행 나침판’으로 불러 손색이 없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이 시각표를 끼고 다닌다. 휴대가 간편한 포켓 사이즈도 있다.     

일본 철도는 1872년 토쿄(東京)~요코하마(横浜) 구간이 개통되며 역사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140여년이 지난 요즘, 일본은 전 세계 철도승객의 30%를 차지하는 철도대국으로 성장했다. 열차 종류 또한 다양하다. 고속열차・일반열차・침대열차・노면전차・지하철・모노레일・증기기관차 등등. 이 쯤 되면 지붕 없는 철도박물관 수준이다.

본 칼럼에서는 일본철도의 태동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현재의 개황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 역사
일본철도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 에드먼드・모렐(Edmund Morel)이라는 영국출신 철도기술자다. 주일 영국공사 추천으로 1870년 4월 일본에 온 그는 당시 국가재정을 담당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철도건설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한다. 당초 계획은 영국제 철제침목을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삼림자원이 풍부한 일본의 환경에 맞춰 목재로 변경했다.

또한 건설비가 적게 들어가는 1,067mm 협궤철도를 권유한 것도 그였다. 새로 출범한 메이지정부의 재정을 고려하고 산업계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병을 앓고 있던 모렐은 일본 철도의 개통을 보지 못한 채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유해는 요코하마 외국인 묘역에 묻혔고, 일본인들은 그를 ‘철도의 은인’이라 부른다.

1872년 토쿄~요코하마에 이어 1874년 오사카(大阪)~코베(神戸)가 개통되고, 1877년 쿄토(京都)까지 연장된다. 토쿄와 거의 같은 시기 공사를 시작한 칸사이(関西)구간의 개통이 늦어진 이유는 강을 몇 개나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 최초의 터널 이시야가와・즈이도(石屋川隧道)가 만들어 진 것도 이 때였다. 1880년에는 홋카이도(北海道)의 테미야(手宮)~삿포로(札幌)구간이 미국 철도기사의 지도로 완성된다. 당시 수입된 미국 기관차 몇 대는 지금도 박물관 등에 보존돼 있다.

순조롭게 스타트를 끊은 일본의 철도는 1877년 큐슈 남쪽지방 토족들이 일으킨 세이난(西南)전쟁으로 난관에 부딪친다. 막대한 전비를 충당하느라 국가 재정이 바닥난 때문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국유철도를 고수하려 하지만, 부설계획의 차질을 우려한 의견이 받아들여져 반관반민 형태의 민간철도가 설립된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사철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이다.

홋카이도철도 개통 시 수입된 미국제 기관차 ⓒ위키피디아 제팬
홋카이도철도 개통 시 수입된 미국제 기관차 ⓒ위키피디아 제팬

최초의 민간철도는 1881년 설립된 닛폰(日本)철도였다. 정부의 지원과 보호를 받은 닛폰철도의 영업이 순조롭게 흘러가자, 각 지역에서 철도를 건설하려는 조직이 속속 등장했다. 홋카이도탄광철도・칸사이(関西)철도・산요(山陽)철도・큐슈철도 등 소위 ‘메이지 5대 사철’은 모두 1880년대 탄생한 기업들이다.

이때부터 국철과 사철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신규노선 건설에 박차를 가한다. 1889년 토쿄와 오사카를 잇는 토카이도(東海道)선이 완공되고, 1891년 토쿄의 우에노(上野)와 아오모리(青森) 간 동북지역 노선이 개통한다. 일본 정부가 국력을 총동원해 완성한 철도는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을 맞아 그 진가를 발휘한다.

당시 철도의 서쪽 끝 히로시마(広島)에 대본영을 설치하고 메이지천황이 직접 전쟁을 지휘했다. 철도가 전쟁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한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규모가 더 커진 러일전쟁 때는 모든 철도를 거의 군사용으로 전용해 혁혁한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구간별 운영주체가 달라 차량의 다이어그램과 차량호환, 운임정산 등 번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이 전쟁 후 철도의 국유화를 재촉하는 계기가 된다. 철도국유화는 경영난을 겪던 사철 측 요구와 효율성을 따지는 군부의 이해가 일치해, 1907년 국가가 노선 대부분을 매수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이로써 국유철도 영업거리는 기존 2,459km의 두 배 가까운 4,806km가 된다. 하지만 재정이 부족했던 정부는 경편철도법을 따로 만들어 지방의 사철건설을 장려했다.    

한편 산업사회 발전으로 도시에 인구가 몰리자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노면전차가 등장한다. 쿄토 시내를 관통해 후시미(伏見)까지 6.6km를 전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력은 비와코(琵琶湖)의 수력발전이었다.

이 열차는 곧 오사카・토쿄・나고야 등 다른 대도시로 퍼졌고, 1927년부터 운행하기 시작한 지하철과 함께 대중교통의 근간을 이룬다. 당시 노면전차를 운행하던 회사 상당수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사철 그룹이 되었다.

1945년 8월 종전을 맞아 전시 총동원체제에서 벗어난 일본철도는 곧 재건과 부흥의 길에 들어선다. 공습으로 파괴된 시설이 복구되고 개량된 우등열차와 침대열차가 투입되었다. 매연이 심한 증기열차를 대신해 전기나 디젤로 움직이는 기관차가 등장했다. 사고에 취약했던 목제 객차를 철제로 바꾸는 작업도 병행되었다.

이러한 전후 부흥과정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한국 전쟁이었다. 패전으로 바닥을 헤매던 일본경제는 뜻하지 않은 전쟁 특수를 만나 단기간에 전쟁 이전을 능가하는 수준에 도달한다.

그 후 1954년부터 20년 가깝게 지속된 고도성장기를 지나는 사이 철도는 눈부시게 발전한다. 대표적 성과가 신칸센의 완성이다. 1950년대 후반 토카이도선 수송능력이 한계에 이르자 별도의 선로부설 필요성이 대두된다.

우여곡절 끝에 1959년 국회가 최종 승인한 신칸센 건설계획은 1)국제표준 1,435mm 궤간, 2)최고시속 200km가 골자였다. 착공 4년 5개월 여 뒤인 1964.10.1. 토쿄-오사카 552.6km 구간이 개통된다. 전에 없던 스피드에 안락함을 갖춘 ‘꿈의 초특급’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제18회 토쿄 올림픽 개막 직전의 일이다. 현재 신칸센 중 최고시속은 토호쿠(東北)신칸센 토쿄~모리오카(盛岡)구간을 달리는 하야부사의 320km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일본어통역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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