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공공조달 입찰 실적제한 폐지 조항 무시하는 공공기관들
[초점] 공공조달 입찰 실적제한 폐지 조항 무시하는 공공기관들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8.09.10 0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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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1천만원 미만 소규모 입찰 시 실적증명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법
알고도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개정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아 
개정 법 취지 살리는 공공기관 현장 운용이 절실
공공조달 입찰 시 실적제한 입찰을 폐지하는 법이 있따라 생기고 있지만 아직도 공공기관 상당수는 실적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콜센터 근로자들의 모습.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인재파견을 주업으로 하는 A기업은 얼마전 한 공공기관의 용역입찰에 도전했으나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입찰가 등 타 요소들에서 입찰에 성공한 기업보다 모자랄 것이 없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들에겐 실적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었던 게 패인이었다.

생긴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기관이 요구하는 실적 증명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것.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국가계약법과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양자 모두에서 2억 1천만 원 미만의 소규모계약에 대해서는 입찰 자격 중 하나인 실적 제한을 폐지한 바 있다. 따라서 공공조달 입찰 시 기관이 입찰 참가기업에 대해 실적 증명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셈이다. 

그러나 많은 공공기관들이 여전히 실적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법은 잘 만들어놓고 그 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누구보다 더 앞장서 법을 준수해야할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 법 개정 사실 모르는 담당자들도 부지기수

2017년 4월 13일, 정부는 행정자치부 공고 제 2107-124호를 통해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하 지단체 계약법) 일부개정령(안)에 관한 입법예고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신설된 시행령의 골자는 제20조 제2항 ‘물품과 용역의 실적제한 입찰 폐지’로 ‘특수한 설비 또는 기술이 요구되는 물품제조계약이나 특수한 기술이 요구되는 용역계약의 경우 기획재정부장관이 고시한 금액(2.1억원) 미만의 경우에는 입찰 시 실적제한을 할 수 없도록 하여 창업·소상공인의 입찰참여기회를 확대하고자 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4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2017년 5월 24일부터 발효되었다. 이로 인해 납품 실적이 부족한 창업기업이나 중소기업들도 제한 없이 공공조달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17년 12월 15일, 정부는 기획재정부 공고 제 2107-170호를 통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에 관한 입법예고를 시행하기에 이른다.

개정된 시행규칙은 제25조 제2항으로 ‘소규모계약에 대한 실적제한 경쟁 폐지’였다. 그 내용은 앞서 신설된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동일한 것이었다.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국가계약을 준수해야 하는 기관까지 구속함으로써 창업기업과 소규모 기업 등이 공공입찰을 통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조치였다.

2017년 기준 공공조달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약 35만개사이며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정부는 공공조달을 통해 창업 활성화, 벤처·중소기업 신시장 창출 등 혁신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법을 정비하고 토양 구축에 나선 것이다. 

개정 취지만 놓고 보면 소규모 기업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미처 실적을 쌓을 여력이 없었던 소규모 기업들로선 실적과 실력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그러나 현실과 법은 달랐다. 관련 법이 개정된 후에도 입찰 공고문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법은 2억 1천만원 미만의 소규모계약에 입찰하는 기업들에 실적을 요구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 입찰 사례들에서는 여전히 실적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용역입찰 공고를 보면 너무도 손쉽게 실적증명을 요구하는 공고를 찾아볼 수 있다. 나라장터 홈페이지 캡쳐.

■ 하위법인 장관 예규가 상위법을 제압하는 아이러니

2018년 8월 27일 천안시시설관리공단 공고 제 2018-66호 ‘용역 소액수의 견적제출 안내공고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입찰은 2018년 천안시시설관리공단 직원(신규 및 경력직) 채용대용 용역에 관한 입찰로 총 용역 예정 금액은 2589만 4천원(공급가액 23,540,000원 + 부가가치세 2,354,000원)인 소규모 계약이다. 당연히 개정법률의 저촉을 받는 계약이지만 여기서도 실적을 요구하는 내용은 발견된다. 

3항 입찰 참가 자격에서 나목을 보면 다음과 같은 조항이 발견된다. 

‘입찰공고일 기준 최근 3년 이내에 단일 건으로 2천만원 이상 완료된 “채용대행 용역 실적” 증명이 가능한 업체이어야 합니다.’ 실적증명서는 2018.09.03.(월) 12:00까지 계약담당자의 이메일(*******@cfmc.or.kr)로 제출 후, 반드시 수신확인(회계팀 *** 041-559-****)을 하시기 바라며, 기간 내에 서류를 미제출하거나 수신확인이 안된 경우 개찰 전 사전판정에서 배제됨을 알려드립니다. 원본은 계약체결 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천안시설관리공단 용역 소액수의 견적제출 안내공고. 붉게 표시된 부분이 각각 용역금액과 실적증명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2억 1천만원 미만 입찰임에도 불구하고 실적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불법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자료 천안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발췌.

공공연하게 실적 증명이 가능한 업체여야 한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친절하게 제 7항 라목에서 ‘위 ‘3항’ 견적제출 참가자격을 위반한 자의 견적제출은 무효로 하며,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9조를 준용한다며 법령 준수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까지 하다. 

제39조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작 실적 증명 요구를 금하고 있는 지단체 계약법 제20조 제2항도, 국가계약법 제25조 제4항도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든 근거가 지단체 계약법 제30조 ‘수의계약대상자의 선정절차 등’이었다. 동법 제5항을 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계약담당자는 견적제출자의 견적가격과 계약이행능력 등 행정안전부장관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수의계약대상자를 결정한다’고 명기되어 있다.

여기서 행안부 장관이 정하는 기준이 행정안전부 예규 제39호로 그 내용 중 제5장 수의계약 운영요령을 보면 ‘계약담당자는 계약의 특성상 계약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견적서 제출대상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적(시공실적, 용역수행실적, 납품실적)이다. 

중요한 것은 이 내용을 규정한 것이 행정안전부 예규라는 것이다. 법의 체계상 예규는 당연히 상위법의 효력을 능가할 수 없음에도 이를 근거로 든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설관리공단의 경우 실적 증명을 제출하지 않은 입찰 참가업체는 경쟁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실적 증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탈락 조치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가 비단 천안시설관리공단만의 일은 아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올라온 용역 관련 입찰 공고에도 실적 증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 그를 증명한다.

상황은 정부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소규모업체들로서도 항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조속히 이와 관련된 입장을 정리해야 옳다. 공공기관들이 법을 어기고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표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보인다. 위법 사례를 감독하고 시정 조치해야할 조달청조차도 이에 대한 특별한 경각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실적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위법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계약 자체가 원인 무효가 될 정도의 중차대한 결함은 아니다. 그래도 법이 규정하는 바가 있으니 앞으로 이에 관한 지도는 이어나갈 생각이다.”라고 조달청 관계자는 밝혔다.

법은 약속이다. 지키지 않을 약속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이 올바른 정부의 태도일 것이다. 모쪼록 정부의 현명한 대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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