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독서왕(讀書王) 김득신(金得臣)
[전대길의 CEO칼럼] 독서왕(讀書王) 김득신(金得臣)
  • 편집국
  • 승인 2018.09.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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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부벌레들의 가르침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클럽 이사, 수필가

중용(中庸)에는 ‘앎(知)의 세 단계’가 있다. 

첫째 단계는 성인(聖人)처럼 ‘배우지 않고도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만물의 이치를 깨우친 사람’이다. 이 게 ‘생이지지(生而知之)’다. 

둘째 단계는 위인(偉人)처럼 ’배워서 앎에 이르는 사람’이며 이를 ‘학이지지(學而知之)라 한다. 셋째 단계는 ‘고생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앎에 이르는 사람’인데 이를 ‘곤이지지(困而知之)’라 한다. 

“문자가 만들어진 후 수천 년과 30,000리를 다 뒤져도 대단한 독서가는 시인, 김득신(金得臣...1604~1684)이 으뜸이다”라고 다산(茶山) 정약용이 말했다. 

백곡, 김득신은 충청도 괴산군 측백나무가 많은 백곡(栢谷)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호(號)가 백곡(栢谷)이다. 그의 머리는 보통사람들 보다 나쁜 것으로 알려졌다. 

남들이 서너 번을 읽을 때 그는 수백 번을 반복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가 50세가 되어서야 뒤늦게 과거에 급제했다. 그 후 학문에 정진한 김득신은 걸출한 문장가로 거듭 났다. 

조선 최고의 독서가인 김득신은 남들과 같은 공부방법으론 절대로 남을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다. 남들이 책을 한번 읽으면 10번을, 남이 10번 읽으면 100번을 읽었다. 

그는 백이전(伯夷傳)을 100,013,000번 읽은 것을 기리기 위해 자신의 서재이름을 ‘억만제(億萬齊)’라 지었다. 당시 일억은 현재의 십만 번이니 백이전(伯夷傳)을 113,000번 읽었다.  

어디 그 뿐이랴, 그가 쓴 ‘독수기(讀數記)’에는 평생 10,000번 이상 읽은 글이 36편이라고 적었다. ‘장자, 사기, 대학, 중용’은 10,000번을 채우지 못해 제외했다. 

백곡집

김득신의 친척들은 어릴 적에 천연두를 앓은 후에 머리가 둔(鈍)한 그에게 “큰 인물이 되기는 글렀다”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허지만 아버지는 소년, 김득신에게 “조급해하지 말라.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룰 수 있다”며 격려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어느 날, 김득신이 말을 타고 길을 가는데 어떤 집에서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말을 멈추고 “글이 정말로 익숙한데 무슨 글인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에 말고삐를 끌던 하인이 “나리께서 매일 읽으신 거라 쇤네도 아는데 ‘사마천의 백이전(伯夷傳)’이 아닙니까?”라고 했다. 글 읽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하인도 줄줄 외울 정도였으나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를 못한 것이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장례 행렬을 따라가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독서왕, 김득신 시인이 자신의 묘비에 남긴 말이다.

“재능이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긋지 말라. 나처럼 머리가 나쁜 사람도 없었겠지만 끝내 성취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은 힘써 노력하는 데 달려있다“라고. 

중국 송나라 학자 주희가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성리학은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다. 주희를 신성불가침한 성역으로 받들며 주자학 공부에 힘썼다. 

조선시대 ‘선비(士)’는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말하며 ‘사대부(士大夫)’라고 불렀다. 그런데 선비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여성들 중에도 학식이 풍부하고 인품이 훌륭한 인물을 ‘여사(女士)’라고 불렀다. 요즘은 아무나 ‘김 여사’, ‘이 여사’라고 부르지만 말이다. 

김득신 외에도 조선시대의 공부벌레 선비들이 참으로 많다. 

조선의 성리학자인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어릴 적에 천자문(千字文)과 동문선습(童蒙先習)을 떼자 공부하는 재미가 생겨났다. 

이른바 문리(文理)가 트인 것이다.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는 게 즐거워서 공부에 힘쓰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는 대학자가 되었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생후 7개월 만에 아버지, 이식이 세상을 떴다. 부친 이식은 좌찬성을 지낼 정도로 학문과 경륜을 겸비했으며 청렴하여 재물을 탐하지 않아 가정형편은 어려웠다. 

퇴계의 모친 박씨는 자녀 8남매(7남1녀) 중에서 장남만 출가해서 홀로 어린 7남매의 자녀교육을 위해 농사와 양잠 일에 힘썼다. 

퇴계 모친이 직접 쓴 묘비에 남긴 기록이다. 

“사람들은 보통 과부는 자식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흠을 본다. 너희들이 남보다 백배 더 공부에 힘쓰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비난을 면할 수 있겠느냐?”라고.          

 <칼을 턱에 고이고 공부한 조선의 성리학자, 조식(曺植)>

조선의 성리학자인 조식(曺植...1501~1572)은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안에서 나를 깨우치는 것은 경(警)이요, 밖에서 결단하는 것은 의(義)다.”라 했다. 공부방에서 단정히 앉아 ‘졸음을 쫓으려고 칼(刀)로 턱을 고이고 허리춤에는 방울을 달고 졸음과 싸우면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조선 헌종 때의 여류시인, 금원(錦園...1817~?)은서책을 읽고 넓은 세상을 유람하겠다고 꿈꾼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평생 집 안에만 갇혀 지내는 것은 덧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여러 책 속에 나오는 금강산을 오르고 싶어서 부모에게 금강산 유람을 졸랐다. 

그녀의 부모는 어린 소녀가 단식을 하며 버티는 바람에 부모로부터 금강산 유람을 허락받았다. 1830년 춘삼월, 고향 원주를 나선 그녀는 제천·단양·영춘·청풍을 거쳐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돌아보고 한양까지 여행했다. 

그 감동과 궤적을 '호동서락기(湖東西洛記·1850)'란 기행문에 담았다. 

“내 삶을 생각하니 금수(禽獸)로 태어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난 게 다행이다”, “야만의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고 문명의 나라에서 태어난 것 또한 행복이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 불행이요,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지 않고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것이 불행이다. 여자로 태어났다고 규방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것이 옳은가? 한미한 집안에 태어났다고 세상에 이름을 떨칠 것을 단념하고 분수대로 사는 것이 옳은가?”라고 200년 전의 여류시인, 금원은 갈파(喝破)했다. 

끝으로 비록 지능지수(IQ)가 낮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책읽기에 힘썼던  김득신 시인처럼 양서(良書)를 읽고 또 읽자. 

문리(文理)가 트인 성리학자인 김종직, 퇴계의 모친 박씨, 학문정진을 위해서 턱 밑에 칼을 꼽고 공부한 성리학자인 조식과 넓은 세상을 둘러 본 여걸(女傑) 금원에게서 학문의 길을 배우고 익히자. 

“꿈꾸어라, 끝없이 도전하라”, “아는 게 힘이다, 하면 된다”,
“빗방울이 돌에 구멍을 낸다”가 조선시대 공부벌레들의 가르침이다.   

 전    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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