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세종대왕의 초가집
[전대길의 CEO칼럼] 세종대왕의 초가집
  • 편집국
  • 승인 2018.10.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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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클럽 이사, 수필가

2018년 10월 9일은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한글을 반포한지 572돌을 맞는 한글날이다.
 
우리 한국인에게 한글이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따라서 위대한 한글을 통한 세종대왕의 정신과 가르침을 배우자. 그리고 세종대왕과 얽힌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쳐본다. 

조선왕조 왕들이 대대로 기거한 경복궁은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그런데 경복궁 안에 주춧돌도 쓰지 않은 허름한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지붕을 짚으로 엮은 것도 아닌 억새풀을 얹어 놓았고 방바닥에는 아무것도 깔지 않은 초라한 집이다. 한때 이 집에 기거했던 사람이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 재위 5년, 나라에 대기근이 들어서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어 흙을 파먹는 상황에 대처하면서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구휼하며 국무를 보았던 초가집이다. 

세종 즉위 후 10년간 가뭄이 들지 않은 해가 없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했으며 또한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힘썼다.

이 허름한 초가집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세종대왕의 거처로 사용되었다. 혹시라도 신하들이 초가집 방바닥에 지푸라기라도 깔아두면 대노하였으며 거친 흙바닥에서 주무시는 생활을 수 년 동안 했다. 행동과 마음으로 세상을 빛낸 성왕(聖王)이다.

세종대왕은 늘 자신의 몸을 낮추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다. 

“활을 멀리 쏘기보다 바로 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일의 시작이 막연하고 과정이 험난할지라도 불필요하게 힘을 소진하지 않고 일을 의미있게, 옳게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활을 멀리 쏜다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초체력 없이는 화살을 멀리 쏘아도 명중률이 낮으니 무슨 소용이랴. 그 바탕을 먼저 닦으라“는 4자성어가 원사해용(遠射奚用)이다.

1435년 봄, 세종대왕은 ​“활을 잘 쏘려면 우선 기력이 강장(强壯)해야 하며 멀리 쏘기보다는 바로 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신하인 최윤덕에게 말했다. 

1474년, 세종대왕은 “인재를 구해 쓰는 법”이란 과거시험 문제를 출제했다.  

"왕은 말하노라. 인재는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人材天下國家之極寶也)다. 세상에 인재를 들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국왕이 인재를 쓰지 못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으니, 첫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셋째는 국왕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할 경우다“ 

“또한 현명한 인재가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위와 통하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뜻이 통하더라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임금과 뜻이 합치되지 못하는 것이다. 임금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하가 임금과 통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자면 두 맹인(盲人)이 만나는 것과 같다. 어떻게 하면 인재를 등용하고 육성하고 분변할 수 있겠느냐? 각기 마음을 다해 대답하도록 하라".

그때 과거에 장원급제한 강희맹(1424~1483)의 답안이다.   

"한 시대가 부흥하는 것은 반드시 그 시대에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한 시대가 쇠퇴하는 것은 반드시 세상을 구제할 만큼 유능한 보좌가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올바른 도리로써 구하면 인재는 항상 남음이 있다. 어찌 인재가 없다고 단정하여 딴 세상에서 구해 쓸 수 있겠는가?”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따라서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서 인재로 키워야 한다. 그리고 전능한 사람도 없다. 따라서 적당한 일을 맡겨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사람의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재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이 원칙이다. 이렇게 하면 탐욕스런 사람이든 청렴한 사람이든 모두 부릴 수가 있다"라고. 

1990년대 초, 경총 간부인 필자와 긴밀한 업무협조를 해 온 SK그룹의 인사총책임자(CIO)인 김광수 前상무는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인재를 선발하여 승진을 시켰는가?”란 화두를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전부 뒤져서 그 해답을 찾아냈다. 

조선시대에 공직자를 승진시킬 때에 가장 중요시했던 항목은 바로 “후계자(후임자)를 키웠는가?”이다. 따라서 SK그룹이 적재적소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최고의 기준은  “후계자를 제대로 잘 길렀는가?”이다. 이는 세종대왕의 인재선발 방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삼성그룹의 인재를 선발하는 인재상(人財像)은 중국 송사(宋史)에 나오는 “의심가는 사람은 쓰지를 말고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는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이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 정치가들이 고생해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일관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듯이 세종대왕 시대에는 훌륭한 신하들이 참으로 많았다.

세종대왕 때에 예조참판, 대사헌, 예조판서 등의 높은 벼슬을 지낸 '정갑손(1396~1451)'은 청렴한 공직자이다. 정갑손이 함경도 관찰사로 지낼 때 일이다. 임금의 부름으로 한양까지 다녀와야 했는데 당시 함경도에서 한양까지의 여정은 한 달을 넘기는 먼 길이었다. 

그렇게 오래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온 정갑손은 업무를 처리하다 한 장의 보고서를 보았다. 함경도에서 선출한 관리들에 대한 보고서였다. 이를 본 정갑손은 책임자를 크게 꾸짖었다. 

"여기 새로 뽑은 합격자 명단에 내 아들의 이름이 들어있는데, 그 녀석은 아직 미흡하여 관직에 나서기에 한참 모자란 것을 내 잘 알고 있다. 나랏일을 돌보는 중요한 일에 능력이 아닌 아비의 위명을 보고 판단하다니...어찌 이렇게 백성을 속일 수 있겠는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리고 막바로 명단에서 아들 이름을 지웠다. 

지금도 계속되는 취업대란의 시기에 실력은 있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많은 젊은이가 취업을 위해 힘겨운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청탁을 통한 불법으로 취업해서 나중에 밝혀진 사건이 TV 뉴스에 나올 때마다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화(火)나고 허탈하게 한다. 

수백 년 전에 정갑손은 공정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공정한 인사관리 기준(Rule)은 꼭 지켜져야 한다. 

“공직에 있을 때에는 공평함보다 큰 것이 없고, 재물에 임하여는 청렴보다 큰 것이 없다”는 선현들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이를 실행하자.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클럽 이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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