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명사(名士)들의 취미활동
[전대길의 CEO칼럼] 명사(名士)들의 취미활동
  • 편집국
  • 승인 2018.10.17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내가 13년(1985년~1998년)간 모신 故.우정 이동찬 경총회장(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은 한국의 소나무와 꽃과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은 서양화가로서 활동했다. 대자연에서 숨은 그림을 즐겨 찾았다. 

 故.우정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우정(牛汀)‘이란 ’물가에서 풀을 뜯는 유유자적한 소‘란 호(號)다. 우정 회장은 전국 명산을 두루 누비는 등산과 낚시, 그리고 어릴 적 고향친구들과 바둑 두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돈은 벌기보다 쓰기가 어렵다”, “돈은 좋은 일하면 따라 온다“고 내게 일러 주셨다.  

2009년 4월,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열린 ‘우정 회장 미수전(米壽展)’은 남무(南舞) 대자연, 우정 회장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봄의 합창, 단양 옥순봉, 대지의 노래(서운 노송), 대왕송, 용송의 춤, 침묵의 암각화(울주군 반구대), 송추의 아침, 붓꽃, 고요한 강, 연꽃의 향기, 비단잉어의 춤, 2002 월드컵 차 두리 선수 발, 동강할미꽃’ 등의 명화가 지금도 생명력을 갖고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우정 회장의 아들인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그림(작품 1+1=6), 손자 이규호 상무의 그림(LONG LIVE FOR GANDPA)과 이은주 손녀의 그림(ALL IN THE FAMILY), 그리고 수준 높은 며느리와 딸들의 미술작품도 우정 회장의 미수전 화보(畵報)에 담겨있다. 우정 회장과 이 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가족은 미술을 사랑하는 예술가족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객가치 경영의 으뜸으로 삼았던 故.구본무 LG그룹 前.회장은 한강 밤섬의 철새 들이 노니는 모습을 잘 보려고 여의도 LG 쌍둥이 빌딩 집무실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틈만 나면 망원경 속에서 탐조(探鳥)활동을 즐기곤 했다. 

여름 장마에 밤섬이 물이 넘치고 나면 구 본무 회장은 배를 타고 밤섬에 들어가서 수많은 새 들의 먹이를 뿌려주곤 했다. 그는 새(鳥)를 참으로 사랑했으며 존경받는 훌륭한 기업가였다. 

 여의도 밤섬(강 건너 LG쌍둥이 빌딩이 보인다)  

‘사람들과 화합하며 정겹게 담소하는 것’을 좋아했던 구 본무 회장의 호는 ‘화담(和談)’이다. 경기도 곤지암 야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 수석으로 이루어진 ‘화담 숲’을 가꾸었다. 고객과 함께 정담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은 LG 고객사랑과 이타정신(利他精神)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화합을 최고의 가치로 삼은 LG그룹은 곤지암에 위치한 LG그룹 연수원 이름을 ‘인화원(人和苑)’이라고 정했다. 여름철엔 인화원 수영장을 고객과 그룹 임직원 자녀들에게 개방하는데 어린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넘쳐난다. 인화원 지하에 잘 꾸며진 ‘LG그룹 역사관’을 둘러보면 LG그룹의 뿌리를 알 수 있다. 

서강대학교 교수와 국무총리로 일했던 ‘故.남덕우 前한국무역협회장(1985~1988)’의 취미가 ‘클래식 기타 연주’라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백발의 노신사가 클래식 기타를 가슴에 안고 연주하는 모습을 그려보라. 잔잔하게 밀려오는 감흥이 일 것이다. 

남덕우 회장은 세상에서 제일 멋있고 웅대한 한국무역센터를 서울에 짓는 꿈을 꾸었다. 1980년 중반, 남 덕우 회장은 해외출장 후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강남 삼성동에 건립하는 한국무역회관 공사현장으로 직행하곤 했다. 서울 강남중학교 동창(3회)인 故.이강호 한국무역협회장 비서실장이 내게 알려준 숨은 이야기다.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의 취미는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휴일 오후엔 집안에 마련한 음악감상실(Home Theater)에서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즐거움의 삼매경(三昧境)에 빠진다.

그리고 한국경제신문(1면) 사진을 보면 다른 신문사들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행사용 사진 찍을 때 “주인공 정면 중앙의 원칙”을 꼭 지킨다. 그 행사의 주인공들이 정면 앞 가운데에 서도록 배려한다. 김기웅 사장은 앞줄 가장자리나 뒷줄에 선다. 

그의 겸손함이 돋보이며 사소한 일에도 깊은 관심과 숨겨진 배려가 묻어난다. 김기웅 사장 본을 따라서 나도 임직원들과 사진을 찍곤 한다. 

(주)리바트 前회장 경규한과 전상중 前.해군제독(시인)은 동호인들의 합창단원으로 노래하기를 즐긴다. 전상중 제독은 진해 벗소리합창단 단장으로 활동한다.   

故.정세영 현대 산업개발(IDC) 명예회장의 취미는 ‘수상스키’다. 
시간만 나면 청평호수에서 하얀 물살을 가르며 온갖 시름을 날려 보내곤 했다. 뿐만 아니라 정세영 회장은 골프를 참으로 좋아했다. 내가 한국경총 노사대책부장, 회원사업부장으로 일할 때 ‘경총회장단 골프간친회’를 년 4회씩 열었는데 꼭 참가하곤 했다. 

       故.정 세영 현대산업개발(HDC) 명예회장      

특이한 점은 왼손잡이 골퍼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골프 스윙으로 백구(白球)를 파란 하늘로 날려 보냈다. 

예전에 뉴코리아CC 첫 홀에서 티샷을 한 후에 이 동찬 회장, 김상홍 회장, 구자경 회장 세 분이 어린 아이들처럼 서로 손을 잡고서 초록색 잔디 위를 걸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두 눈에 선하다.
 
골프란 운동에 심취해서 부단한 노력으로 덕평CC 클럽챔피언을 3연패한 이승남 무역회사 회장과 한성CC 클럽챔피언 박광하 (주)대한컨설턴트 사장의 골프사랑도 돋보인다. 누구나 골프 클럽챔피언이 될 수는 없다.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230M를 넘나들며 매 라운드마다 80타를 넘기지 않는 70대 후반 스코어의 에이지슈터(Age-Shooter)인 88세(米壽)의 안 종구 회장은 실버 골퍼들의 우상이다. 골프를 좋아하는 최현 경주 최 부잣집 종손에게 평생 실컷 공을 치라며 거액의 금일봉을 주신 모친(경주 교동법주 계승자)이야기에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충청북도 보은읍 보은중학교를 마치고 상경해서 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 석사(한자능력 특급 자격증 소지)인 김상문 IK그룹회장은 등 소평, 주은래 연구를 위해 100회 이상 중국을 방문한 후에 ‘소평소도(小平小道)’와 ‘주 은래 평전’이란 책을 펴냈다.  

2005년 4월18일 북경 교외의 경도CC에서 이른 새벽부터 18시까지 물과 바나나 초콜릿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단 한 번도 앉거나 쉬지 않고 달리며 7회 라운딩(126홀)에 성공한 김상문 인광(IK)그룹회장의 기록이 중국 북경 경도CC 클럽하우스 앞 비석에 새겨져 있다. 

그의 환갑인 2011년 4월18일, 05:18~18시까지 또 다시 8회 라운드(144홀...64Km) 골프대장정에 성공했다. 중국인들의 환호와 찬탄의 박수를 받았으며 새로운 기록이 기념비석에 아로 새겨졌다.   
 
그는 인천 공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114 번이나 땅 주인을 찾아가서 매매계약을 체결한 은근과 끈기를 ‘114 정신‘이라 명명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김상문 회장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답한다. 그는 충청도 보은 이평리(배뜰)에서 나랑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나라 영상의학의 선구자인 김동익 분당차병원 원장은 전국 산하를 누비는 사진작가로 이름을 날린다. 의사가 된 후 지금까지 날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집에서 가까운 스포츠센터에서 아침 운동을 하고 7시에 병원에 출근해서 환자를 돌본다. 출근시간은 아침 9시지만 남 보다 늘 2시간 먼저 출근한다. 

‘그럼 몇 시에 취침하느냐?’고 여쭈니 밤 11시에 취침한단다. 성공한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자리에 오르려면 무언가 다르다.  

2018년 1월초 새벽 5시30분, 분당 코오롱스포렉스 문을 열자마자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목욕 전에 정수기 물을 마시려고 컵에 물을 따르려는데 갑자기한 손이 불쑥 들어왔다. ‘먼저 따르세요’라고 했더니 나부터 먼저 물을 따르란다. 둘이서 함께 물을 마시고 나서 점잖게 생긴 상대방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의사 선생님이시지요?, 큰 대학병원 원장님이시지요?”

그 분이 머쓱해 하면서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김동익 분당 차병원 원장이며 차의과대학 의무 부총장입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1996년도에 5,000여명의 고급인력을 재취업시키고 서상록 롯데호텔 쉔부른 웨이터를 탄생시킨 경총고급인력정보센터 전대길 前.소장입니다. 인사노무관리 경력이 45년인 제 눈에 의사 선생님으로 보여서 무례한 행동을 했습니다. 용서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김동익 차병원 원장과 나는 매일 새벽에 만나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안해가 아파서 김동익 원장께 전화로 긴급 진료를 요청해서 도움을 받기도 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창의와 신념, 성의와 실천, 책임과 봉사”란 사훈과 “사업은 예술이다”라는 기업경영 철학을 솔선수범으로 실천한 故.조중훈 한진그룹 명예회장은 사진작가다. 박용성 두산그룹 前.회장의 취미는 야생화(野生花) 사진을 찍는 것이다. 

김건동 삼성물산 前.사장, 홍형중 성우그룹 前.사장도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신구대학 식물원(꽃무릇 축제, 복수꽃 축제), 하늘공원, 안양 관곡지에서 연꽃 사진을 즐겨 찍는 노준석(86세) 노사공포럼 사무총장도 숨은 사진작가다. 그는 150점의 분재(盆栽)를 가꾸며 100여 점의 수석(壽石) 속에서 늘 웃고 산다. 

홍성원 현대홈쇼핑 前사장은 섹스폰 연주자(15년 경력)다. 주역(周易)에 심취하여 3년 전 부터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역학(易學)을 공부하고 있다. 김판수 삼양사 前.사장도 역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운명과 사주팔자에 관해 연구한다.    

창업자인 故.이종근 회장이 일군 제약기업인 ‘종근당(鐘根堂)’이란 ‘집 당(堂)’자는 ‘종근이네 집’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이종근 회장의 이름 속에 ‘종 종(鐘)’자가 들어서인지 이종근 회장은 일평생 세계 각국의 수많은 종들을 모아서 서울 충정로 종근당 사옥(1층)에 ‘종(鐘)박물관’을 열었다. 그는 세계의 종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1970년대 삼성그룹 사원으로 입사해서 그룹사 회장이란 정상에 우뚝 선 이영관 한국 도레이그룹 회장은 직장인들의 열망의 대상이며 진정한 우상이다. 직장인 모두가 이 영관 회장처럼 직장에서 출세하기를 소망하고 갈망한다. 

이영관 회장은 CEO가 된 후에도 각종 CEO세미나와 경제포럼 등에 빠진 적이 없다. “배움엔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이 그의 학습자세다. 
 
세계 각국을 누비는 여행이 취미인 이영관 회장은 안해(집안의 해란 의미의 옛말)와 상의해서 '100가지 버켓 리스트(Bucket-List)'를 만들어 실행하고 있다. 

그 중에서 백미(白眉)는 미국 페블비치CC, 스코틀랜드의 골프발상지, 'St. Andrews Old Course' 등 세계 100대 명문 골프장에서 부부가 함께 라운딩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곳을 다녔는데 아직도 수 십 군데를 더 다녀야 한단다. 이영관 회장 부부의 삶은 꿈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동화(童話)같다. 

지난 20년간 ‘맥지 청소년사회교육원’을 세우고 이끌어 온 공로로 호암 사회봉사대상을 수상한 이강래 원광대학교 부총장(경영학과 교수)은 우리 전통의 창(唱)을 사랑하는 아마츄어 명창(名唱)이다. 

               이강래 원광대학교 부총장

‘쑥대머리, 고왕금래, 사랑가, 사철가, 돈타령, 심청 어미 상여 나가는 소리’등이 그가 즐겨 부르는 명곡이다. 

익산 미륵산 중턱에 위치한 “소릿재”에서 조통달(가수 조 관우 부친) 국악인 문하생으로 노래공부를 23년째 하고 있다. 조 통달 선생의 문하생인 ‘유태평양(27세) 명창’과는 어릴 적부터 함께 공부했다. 

“어떤 연유로 국악공부를 하게 되었는가?”라고 호형호제하는 이강래 부총장에게 물어 보았다. 한참동안 허공을 바라보더니 크게 한 숨을 한번 쉬고는 세상에 처음으로 밝힌 이야기의 줄거리다.  

“23년 전 젊은 교수 시절, 원광대학교 강의실에서 눈에 띤 한 여학생이 너무 예쁘게 보이고 사랑스러워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갑자기 맥박이 빨라졌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산 속의 차디 찬 계곡 물에 몸을 담가도 그 여학생에 대한 열화(熱火)는 가라앉지 않았다. 

산 속에서 혼자 소리쳐 보았건만 상사병(?)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국악 명창, 조통달 선생님’을 스승으로 삼아 창(唱)을 익히고 난 후에 잡념을 떨쳐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의 전통 노래 가락인 창을 갈고 닦는다”라고,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