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주최 '2018년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참가기
[전대길의 CEO칼럼]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주최 '2018년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 참가기
  • 편집국
  • 승인 2018.12.1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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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사)국제펜클럽 한국본부(손 해일 이사장)가 주최하는 2018년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가 11월 6일부터 9일까지 문화체육관광부, 경상북도, 경주시의 후원으로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1차~3차 대회에 이어 필자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자격으로 참가했다. 

 2018년11월6일 오후 신경주역에 도착한 한글작가 들                (천년고도 글자 뒤 3번째 줄의 필자)
 2018년11월6일 오후 신경주역에 도착한 한글작가 들(천년고도 글자 뒤 3번째 줄의 필자)

민족혼과 한글 말살을 획책했던 일제의 강권통치에 맞선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한 '세계 한글문학-민족혼의 요람'을 대주제로 삼았다. 

'한글문학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 '세계 한글문학의 민족정체성', '한민족 문학의 어제, 오늘, 내일', '한글문학, 세계화의 길'을 주제로 토론을 통한 한글의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1회~4회 까지 세계한글작가대회 개회식 때 애국가 1절, 2절, 3절, 4절을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문인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불렀다. 

여타 다른 모임에선 애국가를 1절만 부르곤 하지만 국제PEN클럽 한국본부의 모든 행사에서는 애국가 1절~4절을 전부 다 부르는 전통이 있다. 참가한 문인들 모두의 코끝이 찡하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흥사단 행사에서도 애국가를 1~4절을 전부 부른다.  

독일, 미국, 알제리,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캐나다 등 10개국에서 51명의 유명작가와 문인, 한글학자 등이 연사로 나섰다. 국내외 한글작가 500여명이 참가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특별강연, 주제 발표, 문학 강연이며 경주시민 5,000여명도 한글문학축제, 문학기행에 참가했다. 

11월 7일, 경주 화백컨벤션센터(3층)에서 이 근배 시인은 '한글문학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이란 주제를 발표했다.

이어서 지난 46년간 한국어만을 심층 연구해온 알브레히트 후베(Albrecht Huwe) 독일 본대학 교수와 한국 현대문학을 연구해온 하타노 세쓰코(波田野節子) 일본 니이가타대학 교수의 특별강연회가 김 홍신 소설가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세계 한글문학의 민족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3·1운동 100주년과 문학의 민족정체성'과 '문학 매체를 통해 본 민족 정체성' 두 분과로 나누어 주제발표 및 종합토론 마당이 열렸다. 

11월 8일에는 경주 화백컨벤션센터(2층)에서는 '한민족 문학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주제의 토론과 '미래세대를 위한 문학과 교육'과 '한민족 문학의 근원과 그 확산'에 대한 주제 발표와 종합토론이 펼쳐졌다. 

또한 곽 효환 시인(대산 문화재단 상무)의 사회로 신 달자 시인(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한글의 새로운 부활과 조명'을,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대학 명예교수가 '한글은 묶여 있는 영웅'이란 주제로  문학강연이 있었다.

8일 저녁에는 경주 예술의 전당에서 폐회식 및 '김 동규의 한글사랑 음악축제가 열렸다. 11월 9일에는 동리/목월문학관과 동리와 목월 생가 등을 답사하는 '문학역사기행'을 끝으로 제4회 세계한글작가대회를 마무리했다.

대회장인 손해일 (사)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은 "한글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세계인과 소통하고 영혼을 맑게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대회가 한글문학의 세계적 도약과 함께 지구촌에 만연된 갈등과 증오를 없애고 인류평화에 기여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은 인간의 메마른 영혼을 적시는 단비요, 문학은 예술의 꽃이다. 우리 한글문학이 홍익인간의 숭고한 이념과 한글 창제 정신으로 세계인과 소통하고 인류평화에 이바지하는 세계 최고의 문학으로 도약하자"며 손 해일 대회장은 외쳤다.  

특별히 국제펜클럽 정회원인 윤 영달 크라운해태그룹 회장은 대회기간 동안 크랙카, 비스켓 등 크라운해태의 과자를 푸짐하게 제공해서 참가 문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동서식품에선 커피를 제공했다. 

세계대회 기간(3박4일) 중 주요 연사들이 발표한 내용을 요약한다. 

먼저 “한글은 나라, 시조는 겨레”란 이 근배 시인의 강연 요지다.                

     이 근배 시인 
     이 근배 시인 

1946년, 이 근배 시인은 충남 당진 태생으로 송산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는 모국어의 원년생인 ‘한글둥이’다. 마당에서 대 가치로 ㄱ,ㄴ,ㄷ,ㄹ을 배운 세대로서 8,000만 한국인의 모국어를 갖고 태어난 게 자랑스럽단다. 이 근배 시인의 주제발표 내용이다. 

“한글은 기적이다. 혁명이다. 천지개벽이다. 우리나라가 다시 태어나고 겨레가 다시 태어났으며 겨레는 혈통이 아닌 언어로 구별할 수 있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며 시조는 한글 시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힘주어 주장한다.  

중국어나 일본어 어휘(語彙)는 300~400개인데 반해서 우리 한글은 12,000개의 발음기호로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쓸 수가 있다.
 
1418년에 세종은 왕위에 올랐으니 2018년은 세종 즉위 600년이 되는 해다. 1445년에 한글이 지어졌으며 다음 해인 1446년에 한글을 반포했다. 한글반포 4년 후인 1450년에 세종대왕은 서거했다. 
 
1447년에 간행된 조선왕조를 칭송한 ‘용비어천가(총125장)’는 한글로 지은 첫 대서사시다. 용비어천가 2장에서 한글은 무엇이고 한글은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또렷한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시조의 음률과도 맞는다. 시조는 뜻글자이며 뿌리글자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꽃 좋고 여름 하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믈에 아니 그칠 새/내에 이르러 바다에 가나니”

위 용비어천가의 첫 시구에는 한자어(漢字語)가 쓰이지 않았다. 한글과 시조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것은 나라를 나라이게 하고 겨레를 겨레이게 한 천둥같은 울림이다. 하늘과 땅을 이 겨레에 열어준 축복과 은혜의 말씀이다. 

20세기 문학이론가들이 ‘시(詩)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은유(Metaphor)를 구사함이 마치 갓 태어난 글자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 내려와 몸속에 익힌 글자를 구사하듯 훨훨 날고 있다. 

세종은 소현 왕후가 죽자 수양대군에게 석보상절을 짓게 했다. 1449년에 세종은 석가의 공적을 찬양하는 ‘월인천강지곡’을 몸소 짓는다. 상,중,하 총 3권에 500여 수의 시를 수록한다. ‘용비어천가’와 ‘월인청강지곡’이란 두 서사시는 한글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선언하는 기념비적 경전이다.

한글을 제대로 익히고 쓸 시간도 없는 한문학자들이 어떻게 한글로 용비어천가와 월인청강지곡을 지었을까? 그 까닭은 아래와 같다. 

비록 처음 익힌 글자이나 이미 신라의 향가(鄕歌), 혹은 그 이전부터 내 나라 말씀으로 노래해 왔으나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없었다. 

귀로 듣고 입으로만 읊어지면서 적어낼 글자가 없어 몸살을 앓아오다가 꽉 막혔던 말문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는 시조의 초장이 되어 저절로 써진 것이리라.  

고려 말부터 발달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時調)는 언제, 어디에서 부터 그리도 오묘한 시(詩)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을까?

1728년, 시를 잘 짓고 노래를 잘 부르는 가인(歌人)이자 시인(詩人)인 ‘김 천택’이 붓글씨로 엮어낸 최초의 시조집’, ‘청구영언’ 속에는 고려 말 이 색, 정 몽주의 시조가 실려 있다. 

최근 발굴된 ‘영언(永言..1809년)’에는 을파소(?~203), 설총(655~?), 이 조년(1269~1343), 우 탁(1262~1342) 등 고구려  백제, 신라부터 고려 초 중기의 시조까지 실려 있다. 

따라서 시조(時調)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의 시(詩)형식으로 존재했다. 조선왕조에 들어서는 김 종서, 성 삼문, 왕 방연, 농암 이 현보, 서 경덕, 이 황, 황진이 , 정 철, 이 이, 이 순신, 박 인로, 윤 선도 등이 너나없이 시조 창작을 했다.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정치가, 학자, 문인에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우국충정을 노래했다. 부모에게는 효성을, 형제와 이웃에게는 사랑을 노래했다. 해와 달과 꽃나무와 바다와...세상만물, 나고 죽고 만나고 헤어지고 사람 사는 일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만백성이 다투어 시조를 지었다. 

하여 한글이 있어서 시조가 제 모습을 찾았다. 시조가 있어 한국문학이 산과 강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높은 멧부리와 깊은 강물을 굳이 고르자면 정철(鄭澈..1536~1593)과 윤 선도(尹善道...1587~1671)를 앞세우게 된다. 

송강 정 철은 관동별곡, 사미인곡, 성산별곡 등 장가(長歌)로 한국시문학사의 첫머리를 장식했다. 시조 또는 절창(絶唱)을 많이 배출한 한국시의 비조(鼻祖)로도 칭송받는다.
 
27세에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를 하고 승승장구한 송강 정철은 한문을 버리고 한글시의 은유법(Metaphor)적 대작(大作)을 낳는다. 그의 깨달음과 실천 앞에 머리가 숙여진다.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물어보자 너 가는 곳 어듸메뇨
막대로 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 보노매라“

46세에 장원급제한 윤 선도는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師傅)가 된다. 그는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어부들을 위해 춘하추동 각 10수씩 총 40수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지어 뱃전에 새겨놓고 이를 노래했다. 

‘고산시고유고’ 별집에 실린 75수의 시조와 단가는 윤 선도가 한글에 바치는 헌사(獻辭)이며 시조의 나라로 일으켜 세운 금자탑(金字塔)이다. 

아래는 고산 윤 선도의 대표시다. 

“앞개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썰물은 물러가고 밀물이 밀려 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강촌이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어부사시사 봄의 제 1장에는 바다와 산과 햇살과 밀물과 썰물 그리고 마을과 꽃이 하나가 되어 배를 저어간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란 소리는 지구상에 한글 밖에 없는참으로 고귀한 말이다.  

“사람이 몇 생을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劫)을 전화(轉化)해야 물이 되나! 금강의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담과 만폭동 다 그만 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 안개 풀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천척절에(千尺絶崖)에 한번 굴러 보느냐” 

위 사설시조는 시조시인 ‘조 운(1900~1948)’이 금강산에서 구룡폭포를 보고 쓴 것이다. 위 작품을 보고 윤 곤강(1911~1950)시인은 그 어떤 시조도 감히 ‘구룡폭포’ 시조와 어깨를 겨눌 수 없다고 평했다. 

“한글은 시로 해가 뜨고 시로서 해가 진다. 논, 밭, 길쌈을 매면서도 시를 지었다. 시조에서 시의 뿌리가 나왔다”고 이 근배 시인은 강조한다.  

어느 날, 한국인이 사랑하는 명곡,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최 영섭 작곡가가 이 근배 시인을 만나 모자를 벗고 “시인이 없으면 작곡가는 작곡을 할 수 없다”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단다. 

그리고 1981년, 이 근배 시인 등 문인 8명이 그리스 문인들과 만났는데 그리스 문인들이 “당신 나라에서는 어떤 말을 쓰는가? 시(詩)가 있는가?”라며 미개인처럼 대해서 이 근배 시인은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었단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5,000년 역사 속에 세계 최고의 글자인 한글이 있다. 그리스인, 너희들처럼 서구의 시도 쓰기도 하지만 1,000년 역사를 가진 한국인 특유의 전통 시를 쓴다”고 말이다. 

37년 전에는 서구인들은 우리나라를 미개국으로 알고 대했던 게 사실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후 한류 문화가 세계 각국을 휩쓰는 오늘 날에는 그렇지가 않다.  

“사람은 심장이 멎으면 죽는다. 영혼을 잃으면 문인(文人)이 아니다. 나라와 한글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인의 글에는 향기와 빛이 난다“는 김 홍신 소설가의 문학에 관한 명언도 놓치지 않고 적는다.  

둘째 강연은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이라는 주제로 한글연구의 대가(大家)인 ‘알브레히트 후베’ 독일 본대학 교수의 강연 요점이다. 

 세계 한글작가대회에서의 필자와 후베 교수
 세계 한글작가대회에서의 필자와 후베 교수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 주 시경 한글학자의 가르침을 후베 박사는 잊지 않는단다.  

훈민정음은 예의와 해례로 구분한다. ‘예의’는 세종대왕이 직접 쓴 것이고 ‘해례’는 성 삼문 등이 집필한 것이다.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 예의에서 세종대왕께서 몸소 한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백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섬기는 자세가 담긴 ‘나랏말싸미’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한글은 처음부터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문자다“라는 게 후베 교수의 첫 마디다. 그는 음양오행과 IT, 한글을 기본 바탕으로 한 훈민정음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세계적인 한글학자다. 

컴퓨터는 ‘0, 1’이란 두 마디 말만 하는 빈 깡통(바보)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를 처리하는 속도는 엄청 빠르다. 모든 글자나 기호들을 0과 1로 바꾸어 표현해서 입력해야 한다. 부호화가 필요하며 입력하는 순서가 중요하다. 0과 1로 계산하는 수학은 이짐법이다. 

이진법을 연구, 개발한 서양 학자는 라이프니츠(Leibniz...1646~1716)다. 중국 북경의 예수회 선교사가 ‘라이프니츠’에게 64궤도를 보냈다. 이진법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양에서는 이진법이 음양설에 포함되어 있으며 음양설을 기초로 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훈민정음(한글)은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한 문자다. 세종대왕은 라이프니츠 보다 250년 전에 이진법을 기초로 한 문자를 창제했으니 실제로 ‘세종대왕은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64궤도를 갖고서 이진법으로 알아봤지만 그 속의 세계관은 잘 몰랐다. 그러나 세종대왕은 이진법뿐만 아니라 온 누리를 기준으로 한 문자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음양오행설은 한의학, 즉 인체에 적용되는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균형, 조화, 평화를 찾는 세계관이다. 

그러나 한글 처리 과정상 문제가 있다. 남한의 컴퓨터 문자 자판은 33개 한글 글자다. 왼 손에 자음자, 오른 손에 모음자의 두벌식 자판이다. 모음자를 오른 손, 자음자를 왼 손으로만 한다는 말은 훈민정음에는 없다. 

이는 “인간공학”에 맞지 않는다. 두벌식 자판은 33글자(겉), 세벌식 자판은 58글자, 한글맞춤법은 67글자(안)의 개수로 되어 있다. 소위 쓰이지 않는 4가지 글자가 있다. 

훈민정음에는 첫/끝소리 글자 기능만 가진 자음자는 없다. 음양오행(水木火金土)의 생성순서대로 다섯 기본 글자가 생긴다. 따라서 한글의 숨겨진 4개의 글자를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음양오행에 의한 자판의 자모 배정을 바꾸는 게 좋다. 미래 5400~1,000년 이상을 살아남을 수 있다. 훈민정음에 따른 음절 다발은 400억 개나 된다. 민족혼의 다발이다. 

부호화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11,172개의 음절자를 쓸 수 있다. 후베 교수가 새롭게 발명한 새로운 문자판은 훨씬 더 빠르고 유용하게 한글을 쓸 수 있어서 특허를 받았다. 인공지능을 음양오행설만으로 해결가능하다. 

그래서 “한글은 묶여있는 영웅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묵여 있는 4글자와 한글자판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그가 외친다.  

“한글 창작의 길(이 광수와 3.1운동)“이란 주제로 이 광수 연구로 유명한 ‘하타노 세쓰코(波田野節子)’ 일본 니이가타대학 교수의 특별강연 내용이다. 우리나라 한글작가들 보다 그 녀는 우리말과 글을 너무나 잘 안다. 

15세기 한글 창제 이후 조선에는 한문사용자와 한글 사용자 두 계층이 존재했다. 개화기가 되자 두 계층을 가르는 것은 국한문과 순 한글문이라는 표기의 차이로 바뀌었다. 

1894년 갑오개혁 당시 고종의 칙령에 의해 한글을 ‘국자(國字)’로 삼고 ‘국문(國文)’을 한글로 사용할 것을 명문화했다. 지식인은 한글과 한자를 혼용한 국한문을 쓰게 되었다. 1896년 창간한 ‘독립신문’은 순 한글신문이었다.

1898년에는 국한문전문인 ‘황성신문’과 한글신문 ‘제국신문’이 등장했다. 1904년에 창간된 애국 계몽신문인 ‘대한매일신보’는 지식인을 위한 국한문판과 서민을 위한 국문판 두 가지를 간행했다. 그 여교수는 “춘원 이 광수는 소설가이기 보다는 독립 운동가였다”고 평가했다. 

“독립선언서와 종교매체(문학)의 역할”이란 윤 석산 한국시인협회장의 특강 요지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정치, 사회단체는 말살되었지만 종교단체와 교육단체는 명맥을 유지했다. 그 당시에는 천도교(3대 교령 손 병희) 교도가 제일 많았다. 독립운동은 천도교에서 정한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화”라는 3대원칙에 의해 평화적이며 거족적으로 일어났다. 

그 정신은 천도교, 기독교, 불교와 기독교 등 3 종교의 조화와 화합으로 ‘상생과 조화’라고 할 수 있다. 33인을 종교별로 구분해 보면 천도교도가 타 종교인 보다 더 많다. 기미 독립선언서의 원고는 오 세창이 천도교에서 운영하는 보성사(이 종일 사장)에 의뢰해서 인쇄되었다.  

동학(東學)은 새로운 삶의 차원에서 1905년에 ‘천도교’로 이름을 바꾼다. “도망가는 자는 쫓지 않는다. 효자가 난 마을에는 100M 이내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동학의 가르침도 눈길을 끈다.   

“1919년 3.1절 전후의 매체를 통한 한국문학의 전개”란 주제로 이 덕화 평택대 교수의 발표요지다. 문학적으로 1910년대는 “미래도 없고 현재도 없다”는 ‘병적 낭만주의’ 시대였다. 이 광수 문학은 실력 양성론, 김 동인 문학은 자유민족론을 바탕으로 한다. 

주 요한의 불놀이는 식민지 지식인의 외로움, ‘서정적 자아’를 표현한다. 서정적 자아는 독창적이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이 광수의 무정은 신소설이 아니라 현대소설이다. 시(詩)는 자유시, 정형시, 산문시 등 3가지 종류로 구별한다. 

“한국 문학이론의 정체성과 전통사회”란 주제의 박 현수(시인) 경북대 교수가 발표한 요점이다. 그는 퇴계 선생의 14대 손인 ‘이 육사’를 연구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새벽”의 ‘새’는 동쪽을 뜻한다. ‘벽’은 밝다는 뜻이다. ‘동쪽이 밝아 오는 것’이다. 따라서 “시(詩)는 노래다“. 풀어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의 ”부랴부랴“는 ”불이야, 불이야“란 의미다. ”쏜살같다“는 ”쏜 화살 같다“는 의미다. 따라서 시인은 각질을 배껴 내서 민감하게 느끼게 해야 한다. 

“한국 아동문학의 진단과 내일을 위한 과제”란 주제로 한글을 사랑하며 40년간 교직에 몸담았던 아동문학가, 정 용원 시인의 발표 내용이다. 

아동문학에는 ‘교시적(교훈적) 기능’과 ‘신비적 기능’이 있다. 아동문학은 좋은 말, 아름다운 말을 바탕으로 한다. 북한을 탈출한 황 장엽 선생은 안가(安家)에서 틈만 나면 동화책을 읽었다. 인간의 본심(本心)으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110년 전에는 ‘아동문학’이란 말이 없었다. 1908년 ‘해에게서 소년에게’란 동시를 담은 육당 최 남선의 <소년>지를 창간 시점으로부터 한국 아동문학의 역사가 시작된다. 아동문학시는 동시(童詩)다. 

세계에서 아동문학 장르가 있는 곳은 한국뿐이다. 일본에도 아동문학은 한국처럼 활발하지 못했으며 중국은 아동문학 그 자체가 없었다. 

윤 동주 시인은 125편의 시를 썼는데 그 중 35%인 40여편이 동시다. 그에게 저항시인, 민족시인, 순수 서정시인이란 수식어가 붙지만 아동문학가라고 불러야 한다. 김 소월과 박 목월 시인도 동시를 많이 쓴 아동문학가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드는 무지개란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The Child is Father of Man)이라고 표현했다. 인어공주를 쓴 덴마크의 안데르센도 아동문학가라고 부르지 않고 소설가라고 부른다. 어린왕자를 쓴 프랑스의 생텍쥐페리나 돈키호테를 쓴 스페인의 세르반테스도 소설가라고 부른다. 원래는 아동문학가다. 

동심에 바탕을 둔 ‘아동문학’을 ‘동심문학(童心文學)’이라고 부르길 그는  제안한다. 이제는 ‘동시(童詩)문학‘, ’동화(童話)문학‘으로 구분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0여 명의 아동문학가가 글을 쓰고 있다. 

한국에도 아동문학상 제정과 정부, 기업, 문화단체의 지원이 절실하다. 세계화를 위한 아동문학의 번역, 출판, 해외보급으로 노벨문학상에 도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남북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문학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동문학’이란 ‘인간의 양심을 맑고 밝게 하는 것’이다. 

“시조, 어떻게 흘러 왔나?”란 주제로 원 용우 한국 시조협회 고문의 특강 내용이다. 
“시조란 천지인(天地人)을 3장으로 쓴 것”이다. “시조의 창시자”는 고려 말 “역동(易東) 우탁(禹倬...1243~1306년)”이다. 

그는 역학을 제일 잘 아는 최고의 성리학자다. 성리학의 시조는 송나라때 주자의 학문이다. 고려 유학자인 ‘안 향(安珦)’이 죽을 때 “성리학의 대가인 우탁(禹倬)을 스승으로 모셔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탁 선생이 700년 만에 다시 살아서 돌아온 것 같다. 

그는 명신(名臣)으로 중국 연경에 가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베껴 왔다. 그는 1286년(충렬왕 12년)에 주자학을 처음 접했으며 그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시조형식의 장르가 없었다. 

시조의 원조(元祖)인 우 탁 선생의 기본형식(3장 6구 12소절)을 갖춘 두 수(首)의 시조다. 우리나라 시조의 첫째, 두 번째 시조다. 

“한 손에 가사를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즈림길로 오더라“

“춘산에 눈녹인 바람 건 듯 불고 간듸 업다
저근 듯 빌어다가 마리 우희 붙이고져
귀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우리 문학의 시와 시조는 한 덩어리다. 분류가 되지 않는다“, “현대시조의 시의 원조는 육당 최 남선”이라고 원 용우 시조문학자는 말한다. 

“한글의 새로운 부활과 조명”이란 신 달자 시인의 특강 요지다.

첫째 자신을 사랑하자.
둘째, 한국어는 촌스럽고 외국어는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없애자. 
셋째, 혐오의 언어를 사랑의 언어로 만들자. “한글은 희망이며 문인의 심장이다” 
넷째, 한글은 한국의 정신이며 지존(至尊)이다. 

“여러분, 우리 자신을 사랑합시다.  여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언제 가슴이 뛰고 흥분합니까?”라고 K-POP 가수, 방탄소년단(BTS)이 U.N에서 연설했다. 

신 시인은 “나는 문인이다”라고 대답하기 힘들었단다. 신 시인의 독백이다. 나는 한글에 대해서 미안한 사람이다. 한글의 소중함과 고마움, 과학적인 체계를 잘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경상도 거창에서 태어나서 1961년 상경한 신 달자 시인은 “나의 슬픔에는 요즘 치매가 왔다. 슬퍼할 수 있는 게 행복이다“라고 말한다. 라이샤워 교수는 “한글은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말했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 프랑스 작가는 20세기는 경제사회이나 21세기는 탈경제사회 라고 했다. “문학 작가에게 조국은 없다. 그 나라의 언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제4차 세계한글작가대회를 처음부터 끝날 때 까지 수많은 한글학자들과  연사들의 말 한 마디, 글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안해와 함께 열심히 공부했다.

제4회 경주 한글작가대회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 생각했던 내용을 빠짐없이 적으려고 했다. (주)동양EMS 4,000여 명 가족들에게 이를 요약 정리해서 보고한다. 여러 날을 독수리 타법으로 이를 정리했다. 

(주)동양EMS 임직원들로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이를 실행하는 CEO로 평가받고 싶다. 학문은 물어서 배우는 것이다. 앞으로도 한글작가로서 만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즐겨 읽히는 훌륭한 문학작품을 발표하련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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