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줄어든 예산, 근시안적 처방에 휘청거리는 직업훈련기관
[기획] 줄어든 예산, 근시안적 처방에 휘청거리는 직업훈련기관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9.03.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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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지급 훈련비 지급으로 올해 예산 2000억원 소진
실직자 구제해야 할 교사들이 오히려 실직자 될 아이러니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더 강화되어야 할 직업교육이 정부의 부적절한 대처로 휘청거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직업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수강생들의 모습.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실직자들을 교육하고 고용시장에 내보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민간 직업훈련기관들이 정부의 졸속 행정에 커다란 위기를 맞고 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역행하는 예산 삭감과 까다로워진 자격 심사 등으로 인해 수강생 모집이 힘들어지며 경영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것. 결국 이로 인한 피해는 직업훈련을 통해 사회에 발을 디뎌야할 실직자나 구직자들에게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경기도 안산의 직업훈련기관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A씨는 요즘 들어 부쩍 한숨이 잦아졌다. 근래 들어 부쩍 줄어든 수강생 탓에 텅 비다시피 한 교실을 접해야 하는 일도 그를 괴롭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고민스러운 것은 이로 인한 실직의 위험이 자신을 위협하는 탓이다.

기본적으로 직업훈련기관은 실업자 등 학생을 모집하여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관할고용센터로부터 그만큼의 훈련비용을 지원받아서 그 돈으로 기관운영과 강사 급여를 지급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학생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면 제대로 된 훈련비용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고 이는 곧 A씨를 비롯한 직업훈련기관 종사자들의 월급이 온전히 지불될 수 없다는 의미다.

실업자들을 가르치고 제대로 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켜야할 책임을 지닌 직업전문기관 종사자들이 오히려 실업자가 될 처지에 놓인 지금의 아이러니는 현재 이 사회의 고용 시스템이 지닌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 수요 예측 실패로 예산 당겨쓰기 일쑤
이는 비단 A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심사평가 대행기관인 직업능력심사평가원의 '2018년 국내 직업훈련기관 인증평가' 결과를 보면 현재 정부지원 훈련시장에 참여하는 훈련기관만 7000여 곳에 달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수십만 종사자들 역시 A씨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세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해에 걸친 일이 아니라는 것. 지난해에도 그리고 그 전해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용부가 직업훈련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탓에 지원 예산이 동나 야기된 교육비 정상 지급 불가 사례는 거의 매년 반복되는 연례행사에 다름 아니다.

지방 고용지원센터 공고문. 수요 예측 실패로 인한 예산 부족으로 지원 자체를 받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진제공 전국직업전문학교 총연합회

이와 관련해 청와대 국민게시판에는 관련 청원이 여러 건 올라있다. 2월 1일 게시된 ‘직업훈련기관이 살아야 일자리도 경제도 살아납니다’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청원 내용을 살펴보면 직업훈련기관에 배정된 2019년도 훈련비 예산은 총 6000억원. 훈련기관들은 이 예산을 바탕으로 1년치 교육 과정을 짜고 있지만 실상 올해 활용 가능한 예산은 4000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 

이유인즉 작년 11월, 12월 미지급된 훈련비를 금년 예산으로 대신 지급하다 보니 벌써 2000억 원이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격해진 사전심의제 때문에 구직자들이 활용해야 할 내일배움카드 발급률 역시 20%도 채 되지 않고 있다며 조속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정부와 민간직업훈련기관 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지역 및 산업수요 중심의 직업능력개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전국직업전문학교총연합회 박홍일 이사장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더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정부는 직업훈련의 취업률도 저조하고 고용유지도 어려워지자 이와 관련된 예산을 삭감하고 있는 형편”이라며 “단기적인 취업증대에만 시선을 돌리다보니 정작 멀리 봐야 할 부분은 놓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며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책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
실직자 등이 직업훈련교육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한둘이 아니다. 일단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을 받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용노동부 소속 직업상담사와의 면담이다. 많은 교육생들이 여기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직업상담사들은 내담자가 제대로 된 직종을 선택하기 위해 조언을 해주는 일을 도맡지만 취업증대라는 정책 구현을 위해 단기적인 취업률 상승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 상담사들 대부분은 훈련보다는 취업, 그리고 내담자의 적성과는 무관한 취업 위주의 직종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그렇게 취업을 한 취업자의 60%는 1년 이내 퇴사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가 경제 발전과 실업 급여 등에 소진되는 예산을 따지더라도 너무 큰 낭비이며 개인에게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 박이사장의 진심 어린 조언이다.  

사실 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훈련기관들의 업무 지원 및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고용노동부는 실업자 재취업을 위한 국비지원 사업 축소에 대해 훈련이 꼭 필요한 사람을 선별·지원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근래 들어 일부 직종에서 취업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이를 이용하는 사례가 발생해 적절한 제어가 필요했다고 밝힌 노동부 관계자는 폭발적인 수요 증가로 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지경에 이르다보니 보다 엄격한 심사가 필요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이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전북유일의 직업상담 전문학원인 휴먼평생직업교육학원 강정원 원장은 "취업 희망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에 사업을 축소시켰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라며 "일자리를 늘리는 데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던 정부가 정작 실업자 훈련 지원 사업을 축소시켰다는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취업 희망자들의 요구를 예산에 반영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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