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법도 정책도 보호하지 못하는 초단시간 근로자 
[이슈] 법도 정책도 보호하지 못하는 초단시간 근로자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9.03.22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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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단시간 근로자 75만 6000명, 17년보다 11.3% 증가
초단시간 근로자증가는 고용의 양과 질 악화 의미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됐지만 정작 혜택은 받을 수 없어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제대로 된 법적 보호를 받기 힘든 위치에 놓여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하기 힘든 초단시간 근로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1주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도 안 되는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제대로 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대부분 경제적 취약 계층인 탓에 온전한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것이 초단시간 근로자다. 

이에 초단시간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구제책이 없어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하는 형편이다. 

정부는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한다며 관련 대책을 내놓고는 있으나 실제 구제와는 무관한 전시성 행정에 치우칠 때가 많아 오히려 불만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근본적인 자구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초단시간 근로자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 노인이나 여성 등 경제적 취약 계층 비율 압도적
한국노동연구원은 3월 17일 발간한 ‘노동리뷰’ 3월호에 실린 ‘초단시간 근로자 현황’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소정근로시간(노동자가 실제 일하기로 정해진 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75만 6000명으로 전년(67만 9000명)보다 11.3%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초단시간 근로자의 비중도 3.8%로 조사 대상 기간인 2003년 이후 가장 높았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초단시간 근로자가 늘고 있다는 뜻이다. 

자료 한국노동연구원
초단시간 근로자 비중 추이. 자료 한국노동연구원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한 초단시간 근로자의 연평균 증가율이 9.2%었음을 감안한다면 최근의 증가속도는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초단시간 일자리의 증가는 고용 상황의 질과 양 모두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휴수당이나 연차수당을 받지 못하고, 2년 넘게 일해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 초단시간 근로자는 노인이나 여성 등 경제적 취약 계층의 비율이 매우 높고 업무 자체도 단순노무직인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노동법의 보호에서 소외될 수 있는 나쁜 일자리가 초단시간 일자리인 것.  

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단시간 근로자의 73.3%를 여성이 점유하고 있으며 노동자 열 명에 여섯 명(56.6%)이 60세 이상 고령자들로 이뤄져 있다.

증가속도 또한 이례적이다. 여성의 경우 최근 3년새 24.4% 증가했다. 60세 이상 초단시간 근로자는 2016년 33만 4000명, 2017년 34만 2000명이었다가 지난해 8만 6000명 증가한 42만 8000명을 기록했다.

업무 또한 절반(49.3%)이 단순노무직으로 지난해 크게 늘어난 부분이기도 하다. 초단시간 단순노무직은 2016년 29만 4000명에서 2017년 29만 3000명으로 소폭 줄었다가 지난해 37만 3000명으로 다시 크게 늘었다. 

초단시간 일자리가 크게 늘면서 이와 관련된 문제들이 수면으로 부상하고 있다. 짧은 근무시간으로 인한 저임금 문제부터 기준 시간을 채우지 못해 주휴 수당도 받을 수 없다는 것들이 그렇다. 

실업급여 등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소득 불안정뿐 아니라 일자리 질도 떨어지는 상황이다. 실제 국민연금 직장가입자 가입률을 비교했을 때 2017년 기준 일반 단시간 근로자(주 15시간 이상 36시간 미만) 가입률은 22.5%인데 반해 초단시간 근로자는 1.3%에 불과했다.

■ 주휴수당 주지 않으려 일자리 쪼개기 극성
안 좋은 일자리가 분명함에도 해마다 큰 폭으로 초단시간 일자리가 늘어나는 이유는 인건비 부담에서 자유로워지고 하는 고용주들의 속내가 반영된 때문이다.

당산역 부근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A씨는 최근 아르바이트생 숫자를 2명에서 7명으로 크게 늘렸다. 대신 알바생들의 하루 근무시간을 하루 8시간 주 6일 근무에서 1명당 하루 4시간씩 3일로 전환했다.  

압바생들을 초단시간 근로자로 만든 것인데 이유는 자명하다. 이럴 경우 근로시간이 주 12시간으로 줄어 주휴수당 미지급은 물론 산재보험을 제외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의무 가입 사항도 면제되기 때문이다. 대신 비는 시간은 업주 본인과 가족이 메우고 있다. 

“늘어난 최저임금 탓에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졌다. 바람직한 것이 아니란 건 알지만 인건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늘어난 최저임금이 취약계층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자료제공 한국노동연구원
초단시간 근로자 특성. 자료 한국노동연구원

재계가 초단시간 근로자의 증가 원인으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와 주휴수당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재계 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높아진 주휴수당 부담을 벗어나기 위해 시간 쪼개기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입장은 이와는 다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업무보고에 출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답변을 통해 “초단시간 일자리에 노인 일자리가 많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초단시간 근로자 증가가 꼭 주휴수당 때문은 아니다”며 이의 관련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현재 초단시간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방식이 너무도 뚜렷하다. 

더 심각한 것은 초단시간 근로자들이 취약계층이다 보니 불이익을 받더라도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처지라는 점이다. 많은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매일 30분에서 1시간씩 연장근로를 하고도 초단시간 근로자라는 이유로 연장근로수당도 지급받지 못하고 1년 만에 해고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 돈은 내지만 혜택은 받을 수 없는 고용보험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거듭된 논란으로 이어지자 정부와 국회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초단시간 근로자의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고용보험법 시행령 제3조 당연가입 요건을 개정해 7월 3일부터 월 60시간 미만(주 15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근로자가 3개월 이상 계속 근로하는 경우 상시·지속성을 인정해 생업 목적의 여부와 관계없이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이라는 설명이다. 

2017년 11월 인권위가 고용노동부 측에 '초단시간 근로자에 대해 사회보험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보호의 필요성이 더 강한 대상을 배제하는 것이므로 사회적 공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이들을 보호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초단시간노동자 권리보장법' 발의 후 기념 촬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초단시간노동자 권리보장법' 발의 후 기념 촬영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

초단시간 근로자도 고용안전망 안에 품겠다는 정부의 취지와는 달리 정작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불만을 내놓기에 여념이 없다. 현재 구조라면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고용보험료를 지불함에도 불구하고 혜택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용보험 가입은 실업급여 수급을 위한 것인데도 초단시간 근로자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행 기준이다. 현행법은 18개월 동안 180일 이상 근무해야 실업급여 수급 요건을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초단시간 근로자들은 애초부터 이 요건을 충족시킬 수 없는 근로자다. 

실업급여 혜택 없이 보험료만 내는 꼴이니 당연한 반발이다. 수급 요건을 완화하는 개정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긴 하지만 언제 처리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이대성 교수는 "사회안전망에 편입시킨다는 정부의 발상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이뤄져 오히려 초단시간 근로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며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의 처리와 관련해 훨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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