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허울 뿐인 원칙 '입찰 실적제한 폐지'..소기업 기회조차 없어
[기획] 허울 뿐인 원칙 '입찰 실적제한 폐지'..소기업 기회조차 없어
  • 이윤희 기자
  • 승인 2019.04.26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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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조달 입찰, 실적 없는 기업에겐 '그림의 떡'
수의계약 시 예규 근거 삼아 버젓이 실적 제한 횡행
실적 제한 문구 없어도 형식뿐...입찰 시도조차 않는 기업들
조달청,해당 감사부서에 조치요구나 감사원 민원청구 통해 해결 밝혀
공공조달 입찰 시 고시 금액 미만의 소액 계약은 투찰 기업을 실적으로 제한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으나, 실제 현장에선 여전히 '실적'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조달 입찰 시 고시 금액 미만의 소액 계약은 투찰 기업을 실적으로 제한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으나, 실제 현장에선 여전히 '실적'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공공조달 입찰 참여 기업들로부터 물품·용역 2억 1000만 원 미만 입찰 시 실적제한 요구를 불가능하도록 지정한 법령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반발이 제기됐다.

창업인과 소상공인 등 실적을 갖추기 어려운 이들에게 공공조달 입찰에 대한 문호를 넓히기 위해 개정된 해당 법령이, 실제 현장에서 안착되지 못한 채 형식적인 투명성 갖추기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최근 실적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입찰 참여조차 불가능했던 일부 기업들은 영세기업들을 위해 제정된 법령이 공공기관의 입맛대로 해석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미실적 기업의 공공조달 입찰 참여, 결국 실적이 걸림돌
#A 기업은 최근 공공기관에서 진행한 NCS 채용대행 용역 입찰을 알아보던 중 견적서 상 입찰 참여 기업의 실적을 제한한다는 문구를 확인했다. 해당 계약은 기획재정부에서 고시한 금액인 2억 1000만 원 미만으로, 분명 '실적 제한 금지' 대상 계약이었음에도 기재된 실적제한 문구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해당 공공기관에 문의했으나 실적 제한 근거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기획재정부로 내용을 문의 후 답변의 권한이 조달청으로 이관되었는데, 조달청으로부터는 발주기관에서 작성하는 조건은 해당 발주기관에 직접 답변을 받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해당 기업은 뚜렷한 근거를 듣지 못한 채 입찰을 포기해야 했다. 오를 수 없는 나무를 오르려다 견적비, 설계비 등 부수적인 비용만 지출한 채 끝날 공산이 컸기 때문.

이와 같은 사례는 단지 위 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기관이 제시하는 실적을 충족하지 못하는 많은 기업 관계자들이 공공조달 입찰은 '그림의 떡' 취급하며 시도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 여러 민간기업의 채용대행을 진행 중인 모 아웃소싱 기업은 정작 공공기관의 채용대행은 단 1건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해당 기업의 관계자는 "공기업에서 진행하는 내용은 제한이나 규격이 까다로워 생각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정부가 실적을 갖추지 못한 소기업들이 공공기관 입찰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입찰 참여 기회의 문턱을 낮추자며 '소규모 계약에 대한 실적제한 경쟁 폐지'등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선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견적서 상 입찰 제한에 대한 문구가 없어도 업체 선정 과정에서 기업의 경쟁력보다는 실적 위주로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다 보니 전문성과 기술력 확보보다는 실적 쌓기에 매진하는 기업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안전부 예규 구실 삼아 입찰 참여 실적 제한

4월 25일 나라장터에 고시된 용역 공고서에 '실적제한' 문구가 포함되어있다.
4월 25일 나라장터에 고시된 용역 공고서에 '실적제한' 문구가 포함되어있다.

나라장터에 지난 4월 25일 올라온 수의계약 대상 용역 전자입찰 안내를 확인하면, 해당 계약은 기초금액 4240만 원 수준으로 입찰 제한 금지 대상이지만, 3항 입찰(견적) 참가 자격에서 '입찰공고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1500만 원 이상 연구용역을 수행한 실적이 있는 업체'로 제한을 두고 있다.

정부는 기획재정부 공고 제 2107-170호를 통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시행했다. 해당 개정령 안 제25조 제2항에서는 소규모 계약에 대한 실적제한 경쟁 폐지를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사례와 같이 소규모 계약 입찰에서 실적에 따른 입찰 제한이 등장할 수 있는 근거는 '지방자치단체 입찰 및 계약집행기준'에 대한 '행정안전부 예규'다.

행정안전부 예규에서는 '법령 개정 취지를 감안할 때 소액 수의계약에서 실적제한을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다만 계약의 특성상 계약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견적서 제출 대상을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때 제한 대상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시공실적, 용역 수행실적, 납품실적 등을 포함한 투찰 기업의 '실적' 내용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발주기관은 "찔러보기식 투찰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의 무분별한 투찰을 지양하기 위해 실적제한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인력·시간적인 제약이 따르는 상황에서 실적으로 검증된 기업과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실무자들이 활동하는 입찰관련 모 카페에는 무분별한 투찰을 우려하는 글과 함께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실적제한'을 명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글이 다수 올라왔다. 이러한 문의 글에 대부분의 답변은 행정안전부 예규를 들어 실적제한을 둘 수 있다고 답하고 있다.

한 카페에서 '입찰 실적제한'을 검색하면 공공조달 소액 계약 시 실적제한을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카페에서 '입찰 실적제한'을 검색하면 공공조달 소액 계약 시 실적제한을 둘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원칙을 면피할 수 있는 예규로 인해, 원칙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 선택사항이 되어버린 셈이다. 발주 기관들이 검증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칙에 관용이 적용되어선 안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정해진 원칙이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실제 현장에서 실적이 없는 소기업들은 공공조달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의 쓴맛을 봐야만 했다.

앞서, NCS 채용대행 공공조달에 입찰제한을 둔 건에 대해 조달청은 가장 말미에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있어 추정가격이 고시금액 미만인 제조 또는 용역계약의 경우에는 '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 제5조 제1항에 따라 실적으로 경쟁 참가자의 자격을 제한하여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며 "이를 지키지 아니한 기관 및 계약담당자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감사 부서에 조치 요구를 하거나 감사원 민원 청구 등을 통해 조치받는 것이 합당하다 사료된다"고 밝혔다.

공공조달 소액계약건에 대한 입찰 실적 제한은 창업기업과 소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와 투명한 입찰 거래, 다양한 입찰 참여 기회의 확보를 위해 진행된 약자를 위한 원칙이다.

업계에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약속한 원칙이 때와 상황에 따라 입맛대로 바뀔 수 있는 것이어선 안된다"며 "공공조달 입찰 계약이 원칙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 작은 기업에도 공평한 기회가 부여될 수 있는 입찰 시장을 형성해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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