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6.25전쟁 영웅,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
[전대길의 CEO칼럼] 6.25전쟁 영웅,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
  • 편집국
  • 승인 2019.07.0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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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2019년 6월 25일은 6.25전쟁이 일어난 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아무런 준비 없이 6.25전쟁에 뛰어들었다“는 ‘T. R. 페렌바크’의 미국판 징비록(懲毖錄)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6.25 전쟁영웅, 프랑스의 몽클라르 장군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자 프랑스 정부는 1,054명으로 구성된 대대급 병력을 파병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2차 대전 때 노르웨이 나르빅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18번이나 부상을 입고 18번 훈장을 받았던 전쟁 영웅, 몽클라르(Monclar) 중장이 6.25 전쟁 참전을 자원했다는 점이다. 

6.25 전쟁에 참전을 원했던 장군은 대대장(중령)으로 계급이 하향 강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가족을 남겨두고 한반도 전장으로 출정했다. 1950년 11월 29일, 프랑스 군 부대는 한반도에 도착했다. 미군 2사단 소속으로 23연대와 함께 지평리 전투에 참전했다. 

  몽클라르(Monclar) 프랑스 육군 장군(★★★)과 가족
  몽클라르(Monclar) 프랑스 육군 장군(★★★)과 가족

그는 지평리 서쪽인 현재의 지평중학교 자리를 대대본부로 삼고 진지를 구축했다. 전상(戰傷)으로 다리를 저는 그는 지휘봉대신 지팡이를 짚고 격전지 참호를 일일이 돌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1951년 2월 13일 밤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프랑스군이 지키는 서쪽으로 중공군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몰려오자 프랑스군은 괴성(怪聲)의 사이렌을 울리며 기세를 꺾었다. 

6.25 전장에서 전투 중인 프랑스 대대 병사
6.25 전장에서 전투 중인 프랑스 대대 병사

중공군이 진지 안으로 밀려오자 전 장병들은 중공군과 육박전을 벌였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중공군은 수많은 시체를 남기고 패퇴했다. 심리전과 백병전으로 중공군의 대공세를 물리친 것이다.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이 입은 전력 손실은 5,000여명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대를 포함한 23연대는 전사자 52명, 전상자 259명, 실종자 42명뿐이었다. 프랑스 대대는 지평리 전투 외에도 32개월 동안 쌍 터널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화살머리 고지 전투, 중가산 지구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지평리 전투지역

프랑스군은 6.25 전쟁에 3개 대대 3,500명이 참전했다. 6.25 전쟁에서 전사자 262명, 부상자 1,008 명, 실종자 7명 등 프랑스군은 모두 1,289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지금도 파리시내의 6.25전쟁 참전기념비 앞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노병들이 6.25전쟁을 회상하고 있다.

‘랄프 몽클라르 장군’은 “나는 언제나 전장에서 살아 왔소. 아버지로서 태어 날 자식에게 자유를 위해 U.N군으로 싸웠다는 자랑스러움을  물려주고 싶소”라고 출정을 앞두고 안해에게 말했다.  

이 때 그의 계급은 중장이었으나 파병부대는 대대장 급이었다. 그는 중장(★★★)에서 중령으로 4단계 강등을 자청(自請)했다. 

1, 2차 대전에 참전했던 59세의 역전의 노장은 오로지 프랑스를 위해 계급 강등을 자청하여 참전했다. 무엇이 그를 전장(戰場)으로 이끌었을까? 

그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신학교에 진학했으나 가출하여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를 지원했다. 그러나 당시 그의 나이가 15세라서 귀가 조치되었다. 

1912년, 20세가 되자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서 1914년, 졸업과 동시에 임관했다. 1차 대전에서 7개의 훈장, 11개의 표창을 받았다. 7회의 부상으로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의 본명은 ‘마그랭 베르느레’이다. ‘랄프 몽클라르’란 이름은 망명 자유 프랑스군을 지휘하며 무장저항을 할 때 사용한 암호명이다.

그는 외인부대에 전속되어 1927년 모로코전쟁, 1940년 노르웨이 나르빅 북쪽 제르비크 시에서 나치 독일과 싸워 승리했다. 그 공로로 프랑스 최고의 군인에게 주는 드골상을 수상했다. 

1946년에 알제리주둔 프랑스군 부사령관, 그 후 각지 주둔 프랑스 외인 부대장을 지냈다. 60세에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에 참전하고 1952년에 전역해서 1964년에 72세로 서거했다. 

전설적인 전쟁영웅 몽클라르의 장례식은 파리 앵발리드 병원에서 드골 대통령이 직접 주관했다. 그 때  주 프랑스 한국대사였던 백 선엽 장군(★★★★)도 장례식에 참석했다. 몽클라르 장군은 앵발리드 생 루이 성당 지하묘지에 묻혔다. 이 묘지에는 최고의 무공을 세운 자랑스런 용사들이 잠자고 있다. 

몽클라르 장군과 같은 전쟁 영웅이 없었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존재할 수 있었을까?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을 구해 준 U.N 16개국 참전국과 의료지원 부대를 파병해 준 5개 나라의 참전용사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 

최근 북한 김 정은이 “6.25 전쟁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북침(北侵)”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세계인이 모두 알고 있는 역사적인 진실(眞實)을 거짓말로 왜곡(歪曲)하다니? 거짓말쟁이에게는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  

6.25 전장(戰場)에서 대한민국 영토수호와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한반도에서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친 6.25 전쟁 영웅, 몽클라르 장군과 수많은 참전용사들께 머리 숙여 명복(冥福)을 빈다.  

전   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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