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이강인과 푸슈카시
[전대길의 CEO칼럼] 이강인과 푸슈카시
  • 편집국
  • 승인 2019.07.1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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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최근 2019 U-20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준우승을 했다. 전 세계인에게 대한민국 선수들의 놀라운 축구실력과 불멸의 투혼을 보여주었다.               

 (골든 볼 수상하는 이 강인 선수)
 (골든 볼 수상하는 이 강인 선수)

특별히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골든 슈(Golden Shoe)’와 ‘MVP’로 선정된 ‘이 강인’ 선수에게 축하와 격려 박수를 보낸다. 우리 젊은 선수들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에 비해 스피드나 기술면에서 다소 뒤졌으나 참으로 잘 싸웠다. 

그런데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이 강인 선수’를 보면 ‘페렌츠 푸슈카시(Ferenc Puskas...1937~2006)’ 선수가 생각난다.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인 이 회택-차 범근-박 지성-손 흥민 선수의 계보를 잇는 이강인 선수(2001년생)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축구 대표팀 감독·코치진과 선배들과 동료 선수들의 도움으로 이런 영광을 차지했다”면서 어린 선수로서 겸손함까지 갖추었다. 
           
1960년 영국 글래스고의 햄튼 파크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팀이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팀과의 유러피언 축구경기(UEFA) 결승전이 벌어졌을 때 레알 마드리드 팀에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헝가리 출신, ‘페렌츠 푸슈카시(Ferenc Puskas...1937~2006)’가 주전 선수로 뛰었다. 이날 푸슈카시는 4골을 득점하며 빼어난 활약으로 레알 마드리드 팀에게 우승컵을 안겨 주었다. 

 페렌츠 푸슈카시(Ferenc Puskas)
 페렌츠 푸슈카시(Ferenc Puskas)

경기가 끝난 후 기자들이 푸슈카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축구를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공을 차고 있지 않을 때 사람들과 축구 이야기를 한다. 축구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축구에 대해서 생각한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브라질 선수, 펠레나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처럼 푸슈카시 역시 전설적인 축구선수다. 요즘 바르셀로나 팀의 메시나 유벤투스의 호날두와 토트넘핫스퍼의 손 흥민 선수처럼 그 당시에 Star-Player로서 활약했다.  

그는 득점할 기회가 오면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기회(機會)를 뜻하는 ‘opportunity’는 라틴어 ‘옵포르투(obportu)’에서 유래했다. 

‘옵포르투’는 수심이 낮아 접안(接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심이 깊어지는 밀물 때를 기다리는 선박을 뜻한다. 말하자면 항구에 들어가는 절호의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따라서 축구 선수가 득점하는 행운은 푸슈카시 처럼 끊임없는 연습과 준비, 철저한 훈련에서 온다.  

‘대바구니 농(籠)+공 구(球)’자의 ‘농구(籠球)’는 대바구니에 공을 넣는 경기다. 농구의 종주국이 Mexico라는 설도 있다. ‘밀칠 배(排)+공 구(球)’의 ‘배구(排球)’는 공을 손으로 밀치는 운동이다. 

‘발족(足)+공구(球)’의 ‘족구(足球)’는 1970년대 대한민국 공군의 전투기 정비병들이 활주로 공터에서 재미삼아 즐겨 했던 공을 발로 차서 Net를 넘기는 경기다. 따라서 족구의 종주국은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다. 필자도 그때 직접 손으로 공을 떨어트려 놓고 발로 차면서 즐겼던 운동 경기다.  

‘찰 축(蹴)+공 구(球)’자의 ‘축구(蹴球)’ 각 팀별로 11명의 선수들이 발로 공을 차거나 머리로 공을 받아서 상대팀 Goal대 안으로 차 넣는 경기다.  골키퍼 외에는 손으로 공을 만질 수가 없다. 

이러한 축구 경기는 언제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기원전 6~7세기경 고대 그리스 시대의 ‘하파스톤(Harpaston)’이라는 경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중국이 그리스보다 먼저 축구를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다. B.C 4~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대리석 벽화에는 공을 발로 차며 경기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현대 축구와 직접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골프처럼 영국에서 축구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가장 믿을 만한 설이다. 예전에 덴마크의 폭정 하에서 학대를 받았던 영국인들이 덴마크 군대를  몰아내고 전장(戰場)에서 덴마크 전사자들의 두개골을 발로 차며 승전을 축하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14세기 이후 축구는 점차 성황을 이루었으나 지금처럼 골대를 세우지 않고 찬 볼이 골라인을 넘으면 득점으로 인정했었다. 

축구와 럭비를 구별하기 위해 1863년 영국 축구협회(Association Foot Ball)를 발족하고 경기규칙을 제정하고 오늘날의 축구경기로 발전했다. 축구의 명칭은 나중에 ‘Soccer’로 바뀌게 되었다. 

축구의 체계화에 대한 움직임과 함께 축구와 럭비를 구별하기 위해 1863년 10월 26일 영국 축구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가 창립된 것이 현대스포츠로서의 축구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은 명실상부한 축구 종주국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보급된 스포츠가 축구다. 국가 간 대항전은 ‘전쟁’이라 불릴 만큼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대표적인 축구 세계대회는 ‘FIFA 월드컵’ 대회로 단일 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다. FIFA 월드컵 대회는 20세기 초 올림픽 운동, 특히 1920년 올림픽 대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의 개최권은 우루과이에 주어졌다.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축구와 유사한 경기를 즐긴 것으로 보인다.  신라 시대에 ‘축국(蹴鞠)’이란 공차기 놀이가 있었다고 삼국사기에 전한다. 둥근 놀이기구인 ‘농주(弄珠)’를 갖고 김 유신과 김 춘추가 함께 축국을 하다가 옷고름이 찢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제물포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 피쉬(Flying Fish)'호의 승무원들을 통해서 전해졌다.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官立) 외국어학교에서 체육 과목으로 채택되면서 부터다. 한국 최초의 축구 경기는 1906년 3월에 서울 삼선평(오늘의 삼선교 부근)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 간의 시합이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하에 경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다. 1921년 제1회 전(全)조선 축구대회가 열렸다. 

1928년 5월 22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조직인 ‘조선심판협회’(회장 신 기준)가 창립되었다. 이어 1933년 9월 19일에 ‘조선축구협회’(회장 박 승빈)가 창립됨으로써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축구 조직이 생겨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으며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일제 말기 강제로 해산되었던 조선축구협회는 해방과 함께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거듭 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같은 해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고, 1954년에는 AFC(아시아 축구연맹)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 본선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발을 내딛은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축구는 1956년 제1회, 1960년 제 2회 아시안 컵에서의  우승으로 아시아의 축구챔피언으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이어서 1960년대 이후 메르데카컵, 킹스컵, 아시안게임,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등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각종 축구대회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려 대한민국은 아시아 축구 최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무대 도약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한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일본과 함께 ‘코리아-재팬 월드컵 대회’를 개최했다. 이는 우리나라 축구가 세계적 수준으로 한 단계 도약하는 전기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강국 축구팀을 이기고 세계 4강을 차지했다.

축구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던 미 헬리콥터 부대에서 아프가니스탄 동부 코스트주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하늘에서 ‘투하’해 주는 ‘축구 헬기 작전(Operation Soccer Chopper)’을 벌였다. 

헬기에 공을 싣고 비행하다 어린이들이 보이면 하늘에서 축구공을 떨어뜨려 어린이들에게 선물하는 ‘작전’이었다. 그 당시 외신에 따르면 1,000여개의 축구공을 투하했다. 

처음에는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미군 헬기에 돌을 던졌으나 축구 공 선물을 받으려고 점차 헬기 쪽으로 몰려왔단다. 이 축구공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 문양이 인쇄돼 있었는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코란의 핵심 구절이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 쓰여져 있다. 무슬림은 평생 이를 실천해야 할 5대 의무 중 하나이며 날마다 이를 암송해야 한다. 

미군이 떨어뜨린 축구공을 현지 무슬림들이 코란의 성스러운 구절을 발로 차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이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일이던지 상대방 입장에서 살펴보고 확인해야 하는 교훈을 준다.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프란츠 베켄바우어), “힘든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한다”(카를레스 푸욜), “모든 단점은 장점이 될 수 있다”(메시) 유명한 축구 선수들이 말한 축구에 관한 명언이다. 

“형들과 동료들의 도움 없이는 골든 볼을 받을 수 없었다”는 이 강인 선수의 겸손한 고백에 감동어린 박수를 보낸다. 그가  푸슈카시 선수를 넘어서는 훌륭한 축구 선수로 성장하기를 고대한다.       

전   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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