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구멍 뚫린 52시간근무제.. 재량근무 범위 확대 괜찮을까?
[이슈] 구멍 뚫린 52시간근무제.. 재량근무 범위 확대 괜찮을까?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9.08.06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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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라면 재량근로제 운영지침서 악용할 여지 다분
합의 노동시간보다 더 일해도 법 보호 받기 어려워
일본수출 규제 핑계로 공짜 노동 부추기는 행위 지적도
정부가 재량근로제 운영치침서를 발표하고 적용범위 확대를 고시했다. 명목상 이유는 일본수출 규제에 따른 대응책이라고 밝혔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용자 측 요구를 수용해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로 머리를 썩히던 기업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정부가 최근 유연근로제의 하나인 재량근로제 운영 지침서를 발표하며 그 적용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상 집중근무가 필수적인 기업들은 이번 조치를 크게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에서는 즉각 반기를 들고 나섰다. 제도를 악용해 별도의 임금 지불 없이 일만 부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지난 7월 31일 정부는 재량간주근로시간제(이하 재량근로제) 운영 안내서’를 발표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일본의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소재·부품 등의 시급한 국산화를 꼽았지만 ‘재량근로제 대상’이라고 구체적으로 짚은 업무들과 추가된 2가지 분야 업무, 즉 금융투자분석·투자자산운용 업무는 일본의 수출규제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노동계가 일본 수출규제를 핑계로 사용자의 요구를 지나치게 수용해주고 있다고 들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량근로제란 근로자가 자신만의 업무방식 등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특정 14개 업무에 대해 실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어서더라도 노사가 사전에 서면합의한 근로시간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주 최대 52시간제 적용이 곤란한 전문직 등을 위해 만들어진 유연근로제의 일종이다.

재량근로제는 집중 근무를 요하는 업종에서는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는 제도다. 유사한 맥락에서 거론되는 것이 탄력근로제다. 현재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논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문제는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재량근무제는 노사 대표가 ‘서면 합의로 정한 노동시간’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근무시간을 구체적으로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시행하려면 반드시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역시 이와 관련해 엄격한 규제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반드시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근로자 대표의 정의다. 근기법에 따르면 근로자 대표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또는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없으면 근로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로 정의된다. 대부분 기업은 노조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노조가 없는 기업들이라면 근로자 대표를 정하는 게 얼마든지 회사의 의지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해줄 조직을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재량근로제는 노동시간을 아예 측정하지 않기로 합의한 것이라서 추가 임금 청구도 어렵다. 오히려 재량근로제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업무수행수단·시간배분’에 대해 사용자가 ‘구체적 지시’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업무범위도 매우 한정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재량근로제는 제한 없는 근로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특례제도이므로 도입 대상업무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야 하고 노동자 건강보호조처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근로자 대표의 동의 없이 탄력근로제를 활용하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공공연히 재량근무제 도입 범위를 확대한 셈이니 노동계가 발끈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한국노총은 운영안내서 발표 즉시 성명서를 내고 안내서 폐기를 요구했다. 정부가 계도기간을 명목으로 연장노동 포함 주 최대 52시간제의 시행을 9개월 이상 늦췄고, 재량근로제 대상업무를 확대(‘금융투자분석’ 및 ‘투자자산운용’)하는 고시를 시행한데 이어 ‘재량근로제 운영안내서’까지 발표함으로써 정부 스스로 노동시간단축 법제도를 회피할 빌미를 계속 제공하고 있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무분별한 재량근로제 적용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민노총 역시 이 대열에 동참했다. 

민노총 관계자는 “재량근로제는 노동자 자신에게 재량권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노동을 시키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아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을 극복하기 위한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에 역행하는 제도일 뿐”이라며 “재량근로제를 사용자들이 이용함에 어려움이 없도록 정부가 안내서까지 펴낸다는 것은 정부가 앞장서 장시간‧공짜노동을 부추겨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파괴하는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라고 강경한 어조를 내비쳤다.

정부가 발표한 재량근로제 운영지침. 자료 고용노동부
정부가 발표한 재량근로제 운영지침. 자료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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