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1] 넘어지면서 배운 자전거
[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1] 넘어지면서 배운 자전거
  • 편집국
  • 승인 2019.08.29 1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삶에 아로새겨져 있는 어린 시절 짐자전거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이 '별빛에 꿈을 담고'란 자서전을 출간했다.너무나 가난해서 야학을 다녀야만 했던 어린 시절부터 콜센터 사업으로 아웃소싱 중견기업 사장이 되기까지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그녀의 회고록 10여편을 선정하여 매주 목요일 연재한다.(편집자 주)]

요즘 도로변을 보면 간혹 자전거 전용도로라는 게 보인다. 자전거만 다닐 수 있게 만들어놓은 길인 모양인데, 이런 걸 보면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우리 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무튼 그 길 위로 간간이 돌아다니는 자전거를 보면 참 다양한 디자인의 자전거들이 확인된다.

한눈에 봐도 멋지다 싶은 자전거들이 참 많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위험해보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다보니 온갖 걱정만 느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자전거란 게 기본적으로 달리지 않으면 넘어지도록 만들어진 물건이다 보니 그런 걱정이 안 들 수도 없는 일이다.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꽤나 격렬한 부상을 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건 온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딱히 틀린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넘어져봤냐고? 그래서 다쳐봤냐고? 두말 하면 입 아프다. 넘어진 걸로 따지면 누구 못지않게 화려한 경험을 지닌 나다.

어린 시절, 처음 자전거를 배우면서 얼마나 많이 넘어져봤는지 모른다. 친구집 울타리를 정면 충돌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니 말이다. 문제는 그때 자전거가 지금처럼 제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란 데 있다.

나이가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옛날 자전거라는 게 지금처럼 드라이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형태다. 소위 말하는 짐자전거, 그러니까 기어 따위는 없이 밟으면 달리고 브레이크를 잡으면 멈추는 엄청나게 투박한 자전거였다. 

짐자전거라는 말에서 알겠지만 주목적은 화물 운송용이었던 그 자전거는 크기도 컸고 무게도 엄청났다. 어린 아이가 타기에는 너무도 부적절했던 그 자전거는 사실 우리집에 세 들어 살던 아저씨의 것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아저씨는 음식 장사를 했었던 걸로 기억된다. 음식 장사를 하려면 당연히 재료들을 사날라야 했고, 자전거는 그 목적을 위해 소용됐던 물건이었다.

요즘이라면 차로 실어날라야 했겠지만 그 시절에 차가 가당키도 했을까. 당연히 모든 재료의 운반은 자전거 몫이었다. 많게는 수십킬로를 오가야 했던 그 자전거는 군데군데 녹도 슬고 브레이크도 시원찮은 그런 종류였다. 부모님들은 당연히 만류했을 터. 그러나 자전거를 향한 내 열망을 잠재우기엔 부족한 것이기도 했다.

엄마 몰래 아저씨의 자전거를 빌려 자전거 타기를 배우던 그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친구가 잡아준다고는 했지만 그 무거운 자전거를 어린 여자아이가 잡아준다고 될 일이 아니잖은가. 계속되는 추락의 연속이었다. 

그 무거운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경험은 어린 여자아이가 감당한 말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포기를 모르는 성격은 자전거를 놓지 못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기저기 긁히고 까지는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거듭되는 실패를 통해 조금씩 나가는 법을 배우고 나니 호승심이 솟구쳐 오른 것. 친구의 응원을 받으며 달리는 그 순간은 거짓말 좀 보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책 제목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쉽사리 제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어느 집 울타리로 향하는 자전거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꽤 높은 톤의 비명을 지르는 것이 다였다. 그리고 충돌, 요즘 말로 하면 정면충돌이라고 해야 할 만큼의 강력한 충돌이었다.

다행히 요즘과는 달리 시멘트 벽이 아닌 탓에 나름 쿠션의 혜택을 입긴 했지만 그렇다고 온전할 리는 없었다. 지금도 선명한 그 기억, 난 그때 내가 다친 것보다 자전거를 먼저 걱정했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자전거는 아저씨의 재산목록 1호에 해당되는 것이었을 테니까. 다행스럽게도 자전거는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 워낙 튼튼한 것이었으니까. 

자전거의 무사함을 확인하고 나자 비로소 내 몸으로 시선이 갔다. 내 몸 역시 자전거만큼 튼튼한 것이었나 보다. 긁힌 상처는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래도 어디 하나 부러진 데가 없는 걸 보면 정말 튼튼하게 만들어진 건 분명했다.

그날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어느날 차가 폐차될 만큼의 교통 사고가 났을 때도 어디 하나 부러지지 않았던 건 이날 자전거 사고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야단을 맞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이후로도 난 종종 아저씨의 자전거를 빌렸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물론 그날 이후에도 난 넘어지기를 반복했던 아이였다. 빈도가 줄긴 했지만 커다란 짐자전거를 발도 제대로 안 닿는 여자아이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나도 포기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던 건 확실하다.

그런 마음가짐이 지금의 나를, 지금의 회사를 만든 원동력이었을 거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자전거를 타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매일 차를 가지고 다니니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을 밖에. 

볕이 좋은 하루, 자전거를 끌고 나가봐야겠다. 아마 넘어질 지도 모른다. 자전거 타기는 한번 배우고 나면 절대 잊지 않는다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오래 안 탔으니 넘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인생 역시 그렇다. 살다보면 누구나 넘어질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무섭다고 달리지 않는다면 그 인생은 아무런 진전이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 내 어린 시절의 짐자전거는 그렇게 내 삶에 아로새겨져 있다.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현)
-영등포구청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 위원(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여성가족부 가족친화우수기업 표창
-고용노동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표창
-제45회 상공의 날 모범 상공인 표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