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① 「고노담화」와 「고노타로」
[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① 「고노담화」와 「고노타로」
  • 편집국
  • 승인 2019.09.1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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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인들의 성향과 행적 속에 대처 지혜가
고노타로는 금수저 집안출신
‘고노담화’의 개요와 온건보수 고노요헤이
고노타로는 왜 그렇게 아베에게 충성하나
고노타로는 어쩌면 ‘고노담화’에 손을 댈지도
고노타로(河野大郎)외무대신 (인터넷전문미디어 「J-CAST 뉴스」 캡처)
고노타로(河野大郎)외무대신 (인터넷전문미디어 「J-CAST 뉴스」 캡처)

'일본의 정치인들'을 시작하며

일본이 양국 간 유대를 강조할 때 즐겨 쓰는 말이 ‘일의대수(一衣帶水)’의 나라였습니다. 좁은 강물을 사이에 둔 것 같이 가까운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 후, 한국의 협력이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곤 했습니다.

그동안 양국은 적어도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국제적으로 모범이 될 만큼 서로 돕고 또 성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랐던 모양입니다. 가전과 반도체, 조선 등 일본의 자존심이라 할 제조업 분야를 하나둘 따라 잡히기 시작한 겁니다. 초조해진 일본은 안보상 이유라며 핵심소재 수출을 제한하는 카드를 깨내 들었습니다.

마치 1941년 선전포고도 없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던 것처럼 말이죠. 물론 이면에는 오랜 디플레이션, 수출부진, 천문학적 국가채무, 재무장 압력 등 더 복잡한 요인이 내재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무도하게 나오는 일본, 그리고 그러한 일본을 이끌고 있는 정치인. 이제 그들의 실체에 다가가 보고자 합니다.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인들의 행적과 성향을 조명하는 가운데, 경제전쟁에 대처하는 지혜를 찾아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알면 경제가 보입니다. 둘은 서로 밀접하게 얽힌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입니다.

거대공룡 일본과 자발적으로 맞짱 뜨고 있는 자랑스러운 국민과 함께, 머잖은 장래 압일(壓日)의 날이 찾아들 것을 기대합니다.

 

① '고노담화'와 '고노타로'

고노요헤이(河野洋平)2008.4 (위키피디아제팬)
고노요헤이(河野洋平)2008.4 (위키피디아제팬)

한일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7월 19일, 일본 외무대신 고노타로(河野大郎)는 늦은 시각 한국대사를 초치해 “(한국이) 아주 무례하다”고 강한 어조로 얘기합니다. 그것도 오만방자한 자세로 상대방의 말을 자르면서 말이죠.

  일본을 좀 아는 필자가 볼 때, 이 말은 일국을 대표하는 대사에게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표현입니다. 그 말 속에는 한국이 ‘처단의 대상’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에도시대 사무라이는 일반서민들로부터 참을 수 없는 언동이나 행위, 즉 ‘무례’를 당하면 그 자리에서 응징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상대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기리스테고멘(切捨御免)이라는 특권입니다. ‘기리스테’는 잘라서 버린다는 뜻입니다.

  누구보다 언어의 무게를 잘 알고 있을 외무대신이 이런 발언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외교장관 회담이 결렬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등, 아베총리 못지않게 많은 한국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베정권 선봉에서 한국 때리기에 앞장서고 있는 고노타로, 그는 누구일까요?

  위키피디아 일본판은 <1963년 1월 토교도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고노요헤이(河野洋平)의 장남으로 출생. 사립명문 게이오(慶応)의숙 중고등학교를 거쳐, 1981년 게이오의숙대 경제학부 입학. 자퇴 후 워싱턴DC 조지타운대학에서 비교정치학을 전공. 폴란드에 1년간 교환학생으로 다녀옴. 그 때 구금 중이던 레흐바웬사를 만나러 갔다 잡혀 하룻밤 유치장에서 보냈다는 소소한 내용까지 기술. 미국 상원의원 선대본부 자원봉사, 하원의원 밑에서 인턴생활.

1986년 귀국한 후 후지제록스에 입사해 1993년까지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하다 1993년 일본단자로 옮김. 1996년 선거구제 개편으로 분할된 아버지 선거구에서 중의원 당선. 이후 8선을 기록하며 중의원외무위원장, 국가공안위원회위원장, 내각특명대신 역임. 2017년 8월 아베 3차 내각의 제3차 개각에서 외무대신에 발탁. 3개월 후 구성된 제4차 내각에서 유임> 등으로 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의 집안은 화려합니다. 아버지는 1967년 할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14선을 기록합니다. 이 기간 동안 부총리, 관방장관과 외무대신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후 2003년부터 2009년까지 헌정사상 최장수 중의원의장으로 재직합니다. 그의 할아버지 고노이치로(河野一郎) 역시 쟁쟁합니다. 부총리와 농림대신 등 내각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자민당 간사장과 총무회장을 역임하는 등 1950~1960년대를 풍미한 거물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1964년 아시아최초로 개최된 토쿄올림픽 담당 국무대신으로 이름을 날리죠. 작은 할아버지 켄조(謙三)도 참의원 5선을 기록하던 중, 의장에 두 번이나 취임하는 기록을 세웁니다. 이들의 뿌리는 증조할아버지인 고노지헤이(河野治平)로 모아지는데, 그는 가나가와현의 부농출신으로 1920년대 현 의회의 의장을 지낸 지역의 토호였습니다. 이때부터 고노집안의 정계진출 발판이 마련됩니다. 위에 나온 일본단자는 아버지가 대주주, 동생이 대표이사로 있는 중견기업입니다.

  이러한 고노가계에서 그 유명한 '고노담화'가 탄생합니다. 이 담화는 1993년 8월 4일 고노요헤이가 미야자와(宮沢)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재임할 때 발표했습니다. 한일외교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되는 담화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죠.
 
  '위안부관계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내각관방장관담화'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 담화는 내각의 결의를 거친 일본정부의 공식입장입니다. 이전에 일본이 위안부문제에 대해 취해온 모호한 태도와 달리,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お詫び)’라는 말을 처음 사용합니다. 위안소 설치와 관리에 일본군이 직접 간여한 사실, 위안부 모집에 따른 감언과 강압의 과정에 관헌이 직접 가담한 것이 명확하다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회피하지 않고,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겠다고 합니다. 또한 역사연구와 교육을 통해 오래 기억되도록 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굳은 결의를 표명한다고도 했습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고노담화에 기초해 위안부문제에 대해 비교적 합리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진전시켜 나갑니다. 2012년 12월 아베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죠. 담화의 전문은 외무성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mofa.go.jp/mofaj/area/taisen/kono.html)

  2009년 중의원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고노요헤이는 아직까지 자민당 내 비둘기파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2015년 아베의 정권운영에 대해 “자민당이 더 이상 ‘우’로 나가지 않기 바란다. 지금 모습은 보수정치라기보다 우익정치의 느낌”이라며 우려를 표명합니다.

2016년 아베수상이 전몰자를 추모하기 위해 하와이를 방문한 것에 대해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도 “(그러니까) 중국인 한국인이 일본에 대해 상당한 분노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라는 얘기도 합니다. 당연히 당내 매파를 비롯한 우익들로부터 거센 비판이 일었지만, 그는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습니다. 아마도 정치적 입장이 다른 아들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고노요헤이는 사실 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2002년 지병이던 C형간염이 악화돼 사경을 헤맬 때, 타로가 간을 이식해 줍니다. 딸의 제안에 거부하던 그가 아들의 간곡한 권유를 받아들인 거죠. 그는 그 때의 수술을 “막차를 타고 살아남았다”는 말로 표현 합니다 . 지금은 모교인 와세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2017년 8월 아베가 고노타로를 외무대신으로 발탁할 때, 주변에서 우려가 많았습니다. 나이도 다른 대신들에 비해 어린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베는 “그는 아버지와 다르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아베에게 고노타로는 기대 이상의 충성을 바치고 있습니다. 스가(菅)관방장관과 콤비를 이뤄 한국에 지속적으로 펀치를 날리는 등 악역을 자임하고 있는 거죠.

최근에는 블룸버그 등 해외통신을 통해 “한국에 대한 수출금지는 정당했고, 한국이 1965년 청구권협정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국제여론전도 펼치고 있습니다. 개각을 코앞에 두고 ‘나는 이렇게 아버지와 다르니 내각에 계속 남게 해 달라’고 시위라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가 소문대로 방위대신으로 가거나, 설령 유임이 되더라도 한국과 악연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입니다. 눈엣가시 같은 '고노담화'를 아베는, 그 아들을 통해 손보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자자해지(結者子解之)라는 신조어가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일본어통역안내사

백만인취업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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