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4] 즐겁게 일하기의 효율성을 깨닫다
[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4] 즐겁게 일하기의 효율성을 깨닫다
  • 편집국
  • 승인 2019.09.1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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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중학교 부지마련에서 건물짓기까지
이수연 사장
이수연 사장

원치 않은 사태로 셋방살이(?)를 끝내야 했던 성화 중학교의 앞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학교의 설립자인 전형내 선생님께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학교의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그게 쉬운 일일 리가 없다. 

사실 전형내 선생님이 그렇게 매달릴 일도 아니었다. 정보국 장교라는 어엿한 직업을 가진 이가 본업을 놔두고 뛰어다니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역시 선생님을 위축시키는 일이었을 게 분명하니까.

그러나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만을 바라보는 100여명 학생들의 애절한 눈빛을 흘려보낼 수 있는 성정의 소유자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결국 그 노력은 보답 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간절함을 뿌리치지 못한 양주군 교육청이 학교 부지용으로 200평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선생님이 우리에게 그 소식을 전했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단 계획대로라면 200평 부지에 건평 400평에 달하는 번듯한 학교를 지을 수 있었다. 

문제는 땅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건물을 지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따로 재원이 있는 것도 아니니 당장 건물을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허허벌판에서 수업을 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상황. 다시 한 번 전형내 선생님의 고난이 이어졌다.

선생님이 그렇게 나서준 덕에 이듬해, 그러니까 1966년 3월 한미재단으로부터 원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당장 필요한 건 수업을 위한 교실이었으니 너 나 없이 거기에 매달려야만 했다. 

전체적인 진행은 건축업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소소한 잡일은 우리 몫이었다. 인부를 쓰려면 돈이 드는데 원조 받은 액수가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었던 까닭이다.

돈의 유무에 상관없이 우리들이 기꺼이 그 일을 했을 거란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배우고 머물 공간이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그런 막일도 곧잘 하는 아이였다.

벽돌 나르기부터 물 길어 나르기 등 손이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했다. 무거운 벽돌을 나르면서도 콧노래가 나오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우리가 벽돌 하나를 나를 때마다 조금씩 교실이 완성되어가는 것이니 웬들 안 그럴까. 다들 자기 체력에 맞게 벽돌을 들었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은 한 번에 몇장씩, 어린 아이들은 한 번에 한두장씩 쉬지 않고 벽돌을 나르면서도 모든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 서려있었던 건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것만 한 게 아니었다. 공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것 역시 우리들의 주요한 임무였다. 제대로 된 수도시설이 없던 공터에 건물을 올리는 일이니 물을 공급하는 건 중차대한 일이었다. 생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물을 나르는 일은 웬만한 근력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적당한 크기의 바께쓰에 물을 담으면 족히 20킬로는 넘어가는 무게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20킬로짜리 물통을 들고 걷는 일은 우리같은 어린 친구들에게는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게다가 욕심은 많아서 한번에 한통이 아닌 두통을 들기 예사였다. 두통이면 족히 40킬로를 넘어간다. 생각해보라.

웬만한 성인 남성도 들기 힘든 무게의 물통을 이고 지고 걷는 그 모습을. 몇걸음 못가 숨을 헥헥거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제대로 나를 수만 있다면 그것조차 괜찮았다. 문제는 개울에서 학교 부지까지의 길이 그리 평탄치 않았다는 거다. 

안 그래도 기우뚱 거리며 걸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길마저 울퉁불퉁 했으니 중간에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아차 하는 순간의 낙마는 애써 길러온 물을 그대로 내버리는 일이었다. 아까운 것도 아까운 거지만 그 경우 옴팡지게 물을 뒤집어쓰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아닌가. 

3월은 봄이라기엔 너무도 가혹한 계절이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얼음이 말해주듯 아직은 겨울이 가시지 않은 계절에 얼음물처럼 차가운 냇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맞은 생쥐꼴이 되어서도 웃을 수 있던 그때, 그건 아마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마지막 체력까지 끌어내야 하는 일을 하면서도 너나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때 알았다. 일이란 게 반드시 힘들거나 하기 싫은 것만은 아니란 사실을. 즐기면서 하는 일은 세상 그 어느 일보다 즐거운 과업이란 걸 온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제이앤비컨설팅 사무실에 와본 분은 알 것이다. 우리 회사는 항상 웃으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난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직원들이 모든 순간 즐겁게 일하지 못할 거란 사실쯤은 안다. 

그러나 최대한 즐겁게 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린 시절 그 차가운 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내 느낌을 지금의 우리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현)
-영등포구청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 위원(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여성가족부 가족친화우수기업 표창
-고용노동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표창
-제45회 상공의 날 모범 상공인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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