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노', 이 볼썽사나운 줄임말은 없어져야
'노적노', 이 볼썽사나운 줄임말은 없어져야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9.09.27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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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문제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한 술자리에서 누군가 ‘여적여’란 말을 꺼냈다. 여적여?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요즘 세대들이 쓰는 줄임말인 건 분명한데 그게 무엇을 줄인 건지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지라 나름 신조어에도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세대 차이를 느끼게 된다. 차마 모른다고는 할 수 없어 문자 확인을 하는 척 하며 인터넷창에 여적여를 넣어본다.

‘여자의 적은 여자’. 알고 보면 참 간단한 말이지만 꽤나 의미심장한 줄임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신조어는 현재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여적여라는 말 역시 최근 들어 불거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여자의 적이 여자였던 건 인류 출범 이래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적은 내부에 있다’란 유명한 경구가 이를 증명한다. 서로 같은 편이어야 할 사람들끼리 다투고 헐뜯는 일은 그리 낯선 게 아니란 뜻이다. 그게 안타깝다.

그렇다면 이런 줄임말은 어떨까. ‘노적노’.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를 줄인 것이다. 이 말을 떠올린 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기존 노동자들의 일그러진 행태를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전환과 관련돼 기존 노조, 즉 정규직 노동자들의 대표집단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은 경우를 왕왕 지켜봤다.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것은 양반이다. 심한 경우 노동조합이 정규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전환사안에 대해 설문조사까지 하는 경우도 봐왔으니까.

굳이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밝히고 싶지는 않다. 찬성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속마음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자신의 밥그릇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속마음인 걸까. 아니면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 위치를 따낸 자신들의 수고로움을 겪지 않은 비정규직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단순히 그런 이유는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정규직들에게도 반대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게 단순히 자기 밥그릇 지키기 차원은 아닐 거라고 믿고 또 믿고 싶다.

그게 무엇이든 밖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물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본질적으로는 그에 대한 비난은 이 사회가 져야 한다. 노동자의 적이 노동자이도록 몰아가는 이 사회에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모쪼록 노적노가 아닌 노친노(노동자의 친구는 노동자)가 당연하게 받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이 사회 전 구성원의 몫일 테지만 가장 먼저 이렇게까지 되도록 방향을 설정한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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