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7] 소녀 장발장의 허기를 달래준 매점의 빵
[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7] 소녀 장발장의 허기를 달래준 매점의 빵
  • 편집국
  • 승인 2019.10.10 0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서울 생활은 계속되는 동가숙서가식의 연속이었다. 양딸로서 살았던 마포에서의 생활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던 탓이다. 계기는 내가 다니던 선생님의 권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선생님은 양주 은현면 학교에서 선생님을 하신 분이셨는데 그 때문인지 동향의 내게 평소부터 많은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내가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으신 모양이었다. 학비를 직접 벌어야 해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그 집으로 가 일종의 집사 노릇을 한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선생님 눈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해보인 건 아닐까 싶다. 나는 선생님의 주선으로 학교의 급사 일을 맡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도 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선생님은 숙소 문제까지 해결해주셨다. 학교 매점에 딸린 방을 이용할 수 있게 선처를 베풀어 주신 것.

그때부터 나는 낮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도우는 급사를 하고 저녁에는 매점에 있는 방에서 마음 편히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학교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역시 나와 똑같은 혜택을 받게 되었는데, 그게 또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동병상련이어서였을까. 우리 둘은 하루 종일 같은 동선에서 움직이며 서로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었다. 낮에는 급사로 일하며 돈을 벌고 학교가 끝나고 나면 매점으로 와 공부를 하면서 생활을 했다.

알겠지만 학생들이 사라진 학교는 그야말로 적막하다. 더 이상 손님이 찾지 않는 매점은 우리 둘만의 공간이었다. 당시 매장을 운영하시던 사모님은 영업이 끝나면 빵이나 각종 간식거리들을 정리하고 퇴근하시고 나면 남은 건 우리 둘 뿐이었으니 당연히 그럴 밖에. 

우리는 숙박료도 내지 않고 그 공간을 점유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염치가 있으니 매점을 치운다거나 하는 일에 앞장서서 매달리기는 했다. 사모님은 그런 우리를 예쁘게 보셨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도 매점 사모님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보면 출출해지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한창 성장기에 있는 여고생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라는 것. 그건 함께 매점을 쓰는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배 고프다고 뭘 사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처지였다. 고픈 배를 움켜잡고 잠들었던 날이 어디 하루이틀이었겠는가.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너무 배가 고픈 날이면 우리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매점에 있는 빵을 몰래 뜯어먹곤 했다. 잦은 빈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달이면 서너번은 그랬던 것 같다.

이 정도는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매점에 있는 빵이 몇 개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매점 사모님이 그 사실을 모를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단 한번도 그 문제로 우리를 나무라신 적이 없던 천사같은 분이셨다.

버젓이 우리들이 빵을 훔쳐 먹는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하나라도 더 우리를 도와주시려 했던 사모님. 한번은 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저녁을 차려주시기도 했다. 잘 먹어야 큰다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학이 되면 매점을 활용할 수 없게 되는데 그럴 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옷가지와 이불 따위 등을 자신의 집에 보관해주시기도 했다.

만약 그때, 내가 매점의 빵을 훔쳐 먹는 것을 문제 삼았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해도 매점에서 쫓겨난 것은 분명했을 거다. 아마 학교에서도 급사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을 확률도 크다. 그랬다면 난 아나 자존심 때문이라도 학교를 그만 뒀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쳐갔을 때 그 신부님은 경찰에게 자신이 은촛대를 준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장발장이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인도했다. 내겐 매점 사모님이 그 신부님에 다름아니다.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현)
-영등포구청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 위원(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여성가족부 가족친화우수기업 표창
-고용노동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표창
-제45회 상공의 날 모범 상공인 표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