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④초명문가 출신 「아소 타로(麻生大郎)」
[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④초명문가 출신 「아소 타로(麻生大郎)」
  • 편집국
  • 승인 2019.10.10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외조부 요시다총리, 장인 스즈키총리, 동생은 황족
아베내각에서 막강파워 발휘하는 아소파
화제의 이마이에리코 정무관을 아소가 발탁
고노요헤이 아들 고노타로가 총리가 된다면
「아소 타로」   (아소 타로 홈페이지 캡처)
「아소 타로」 (아소 타로 홈페이지 캡처)

아베 내각은 자민당 7개 파벌과 무파벌 그룹, 연립정당인 공명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파벌은 크기에 따라 입각하는 인원수 등 지분을 갖는다.

최대 파벌은 소속의원 284명 중 97명을 보유한 호소다(細田)파로 아베총리가 이 파벌에 속한다. 두 번째가 아소가 회장으로 있는 아소파로 54명의 멤버를 거느리고 있다. 아소파는 지난 9월 개각에서 대신 3, 부대신 3, 정무관 4명 등 총 10명을 입각시켰다.

참의원의장과 중의원의장, 자민당 총무회장이 아소파 소속인 것을 감안하면 행정과 당에 미치는 아소의 파워를 짐작할 수 있다.

아소가 입각시킨 의원 중 36세 나이에 내각부 정무관에 임명된 이마이·에리코(今井絵理子)가 있다. 요즘 일본 정가의 화제가 되고 있어 잠시 소개한다. 정무관은 대신을 도와 특별한 정책이나 기획에 참여하는 직책으로 사무차관(최고위직 관료)보다 높은 위치다. 당연히 해당분야의 식견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마이 같은 참의원 초선급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자리다. 이마이는 1990년대 중후반 SPEED라는 4인조 소녀그룹의 멤버였다. 의원이 되기 전까지 그녀가 한 일은 연예활동 빼고 특별히 내놓을게 없다. 게다가 2017년에는 불륜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러한 인물에게 내각은 막중한 방재대책과 위기관리 업무를 명했다.

태풍 피해지역에 다녀온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맹탕 답변을 했다. 105일자 시사주간 FRIDAY 디지털은 아소파에 손타쿠? 이마이는 전문지식 제로라는 노골적 제목을 달고 자질을 문제 삼았다. 손타쿠(忖度)는 윗사람 심기를 헤아려 행동한다는 뜻이다. 아소의 황당한 인사에 대한 비아냥이었다.

아소의 집안은 화려하다. 1946~1954년 사이 총리를 5회 역임하며 전후 일본경제를 회생시킨 요시다(吉田)가 외조부이고, 1980~1982년 총리를 지낸 스즈키(鈴木)는 아소의 장인이다. 좀 더 거슬러 1860년대, 메이지개혁을 이끈 세 영웅 중 한 명이 외가 쪽 5대조가 되는 오쿠보(大久保). 그 아래로 가고시마현지사와 귀족원의원을 지낸 외증조부, 중의원과 귀족원의원을 지낸 증조부가 있다.

그의 아버지도 중의원 3선에 일본석탄협회회장을 지내는 등 정계와 재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여동생 노부코(信子)는 다이쇼(大正)천황 손자의 비()로 현 나루히토 천황의 당숙모가 된다. 이 쯤 되면 1년짜리 총리를 지낸 아소의 경력은 빛을 잃고 만다.

아소는 1940년 후쿠오카현 이이즈카(飯塚)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이 설립한 지역소학교에 다니다 황족과 귀족이 입학하는 가쿠슈인(学習院) 초등과 3학년에 편입한다. 그곳에서 대학까지 마친 후 미국 스탠포드로 유학을 떠난다. 그 때 학교로 찾아온 외할아버지(전 수상)가 아소의 캘리포니아 사투리를 못마땅하게 여겨 유학 장소를 당장 영국 LSE로 바꾸라 지시한다. 아소는 얼떨결에 영국 노동자계급 사투리(cockney)를 배워 1966년 귀국한다. 그리고 집안이 경영하는 아소산업에 입사해 브라질, 시에라리온 등에 주재하며 세상 견문을 넓힌다.

아소가 정치에 입문하는 것은 1979년 후쿠오카에서 중의원에 당선되면서다. 이후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13선을 기록한다. 1996년 경제기획청장관으로 첫 입각에 성공하고, 2008년 총리가 될 때까지 행정과 당 요직을 두루 걸친다. 2009년 민주당에 정권을 넘기며 입지가 위축되지만, 20129월 총재선거에서 아베 당선에 기여하며 부활한다. 그해 12월 치러진 총선에서 당이 대승을 거두자 부총리 겸 재무대신으로 입각한다. 총리를 지낸 거물이 각료로 재입각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30년이 넘는 내각제 역사를 통해 아소가 3번째다.

아소는 꾸밈없는 언변으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는 정치인이다. 종종 자신이 한 발언 때문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천성이 밝고 소탈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 2003년 자신이 의장으로 있던 한 위원회를 통해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정책제언을 했고, 수상으로 재직할 때 셔틀외교를 정착화 했다.

2005년에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1년에 2회씩 한국을 40~50회 방문했다고 밝히기도 한다. 아무리 한일의원연맹 회원이라 해도 한국을 어지간히 좋아하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종군위안부를 바라보는 애매한 태도다. 총리시절 고노담화를 이어 받겠다고 공언했지만, 미 하원이 일본을 비판하는 결의문을 채택할 때는 강한 유감을 표시한다. 담화문에 나온 일본군에 의한 강제적 성노예라는 문구가 사실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고노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와 아소의 관계는 특별하다. 200612월 아소가 새로운 파벌을 결성할 때 자신 파벌에 속한 멤버 전원을 보내주었다. 아소파의 뿌리가 되어준 것이다. 당시 요헤이는 중의원 의장으로 있어 적합한 양수인을 찾던 중이었다 한다. 요헤이의 아들 타로는 현재 아소파의 강력한 총리 후보다. 중의원과 참의원을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의 총재는 곧 총리다.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에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후보가 없는 점을 고려하면, 고노 타로의 총리 가능성은 충분하다.

차기 총재선거에서 아소는 고노 타로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치 동반자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9월 아소가 은밀하게 총재 출마를 준비하고 있을 때, 순진한 고노 타로가 출마의사를 밝혔다. 주변이 나서서 그의 출마를 만류하고 아소진영에 합류시켰다. 고노 타로가 아소의 지원을 받아 총리가 된다면, 한국과의 관계가 많이 부드러워 질 것이다. 아소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일본어통역안내사
-백만인취업센터 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