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 재탕하기
[취재수첩]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 재탕하기
  • 손영남 기자
  • 승인 2019.10.10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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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종, 날짜, 이름만 바꾸면 그 기사가 그 기사
반복되는 위험의 외주화,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부쳐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조선업 사망사고 84% 하청노동자’란 헤드라인을 보는 순간 느껴지는 데자뷰. 여기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이를 데자뷰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데자뷰, 즉 기시감이란 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일 경우를 의미하지만 적어도 이 일만큼은 느낌이 아닐 확률이 큰 탓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이게 단순한 기시감이 아니란 증거. 이 헤드라인을 인터넷 검색창에 넣어 비슷한 내용이 검색된다면 이건 데자뷰가 아니라 팩트일 테니까. 

2016년 9월 8일자의 기사다. ‘조선업 대형3사 사망사고 78%가 하청노동자’

더 이상의 검색은 무의미하다. 보나마나 비슷한 제목을 지닌 비슷한 기사들이 주르륵 떠오를 게 분명한 때문이다.

그럼 이 문장은 어떤가. 헤드라인 바로 다음에 붙어 나오는 문장이다. ‘전체 사고사망자 중 하청노동자가 84.4%를 차지해, 조선업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라는 문장 말이다.

이 문장 역시 3년 전 기사에 갖다 붙여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게 뻔하다. 숫자만 바꿔주면 그걸로 끝이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떨었던 요란법석은 무엇이었을까. 죽음의 외주화를 막는다며 법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고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는 신기루에 불과했던 것일까. 

결론만 놓고 말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이 땅의 하청 노동자들은 험하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고 그러다 그 과정에서 소중한 생명을 박탈당하는 과정을 되풀이해간다. 

여느 때라면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식으로 매듭지어졌을 거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보다 더 강력한 법제도적 장치마련과 위반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따위의 글들. 

그게 지금까지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써오며 해왔던 루틴이었다. 따지고 보면 직종을 바꾸고 사망자비율도 고치고, 날짜를 수정한 후 사망자 이름만 대체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를 별 고민도 없이 돌려쓰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돌려쓰기가 한두 명의 기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란 점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죽음과 위험의 외주화를 뿌리 뽑지 못하는 한 이 땅의 수많은 기자들은 내일이면 또 다시 비슷한 패턴, 유사한 내용을 담은 글들을 토해낼 수밖에 없다. 정말 쓰고 싶지 않은 글이지만 동시에 침묵해서는 안 되는 글이기도 한 탓이다.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 재탕된다. 슬프지만 그게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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