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8] 주부와 학생 전혀 다른 두 생활의 양립
[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8] 주부와 학생 전혀 다른 두 생활의 양립
  • 편집국
  • 승인 2019.10.17 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남편에게 처음 방송통신대학을 가겠노라 선언했을 때 남편은 생각 외로 선선히 이를 수락해주었다. 솔직히 약간은 반대할 줄 알았던 나로서는 너무도 쉬운 승낙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의 지지를 받으니 힘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아마도 그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건사만으로 벅찬 와중에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으리라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얼마 안 가 백기를 들 지도 모른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도 있었던 모양이다. 마흔을 코 앞에 둔 여자가, 그것도 15년 동안 가사일만 해온 아줌마가 공부를 한다고 마음먹은 게 놀라웠을 지도. 이유가 뭐가 됐든 남편의 허락을 받은 나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당장 입학을 신청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근 20년만의 공부는 남편의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면 교육이 아닌 방송으로만 접하는 학과 과정이 문제였다.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가면서 하는 방식이 아니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이미 머리가 굳어져버린 걸까. 

어린 시절에는 곧잘 하던 공부였지만 이젠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탓도 있었다. 예전과는 달라진 환경 속에서 하는 공부다 보니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비참 그 자체였다. 결국 첫 학기는 1과목만 빼고 모든 과목에서 F를 받고야 말았다. 총 과목이 5개였으니 4개 과목에서 F학점을 받은 것이다.

처음 그 결과를 받았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공부를 오래 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공부 머리가 있다고 자부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남들 같으면 좌절하고 포기할 법 하지만 내겐 포기란 사전에 없는 단어다.
의기소침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이른 상황. 

그래도 분석은 필요했다. 일단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를 되물어보았다. 핑계 같지만 집안일을 하고 나서 자투리 시간에 공부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은 자명했다. 절대적인 공부 시간의 부족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공부 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러 궁리 끝에 도달한 방법은 녹음을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방송 시간에만 찾아듣는 기존의 방법에서 탈피해, 필요한 부분은 내 목소리로 직접 녹음을 해두고 그것을 일과 중에 반복해서 듣는 것이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방법은 이랬다. 일단 다섯 과목을 정독하고 중요한 점을 밑줄 긋고 요약해서 내 목소리로 2시간으로 요약하여 녹음하는 것. 이렇게 만든 녹음본을 집안일을 할 때나 이동할 때도 줄곧 들었다. 책을 다섯 번 정도 읽어 전체적인 흐름과 개념을 알고 요약된 것을 들었기 때문에 이해가 쉬웠다. 특히 내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듣는다는 것이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잘 입력이 된다는 게 큰 성과였다. 

이렇게까지 해보고도 안 된다면 그건 내 역량의 부족이 야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만약 이번에도 똑같은 결과를 얻는다면 공부를 때려치고 대신 미용이나 디자인 같은 기술 배우기에 나서겠다고 스스로를 채근했다. 그렇게 시작된 새 학습법은 시행 초기의 혼란스러움을 깨쳐가면서 점점 효율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겨울 기말 시험을 치르는 날이 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순전히 내 실수였다. 시험을 치르는 장소는 인하대학교. 인천에 있는 인하대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이 걸려 일찍부터 서둘러야만 했다. 

당시 과천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와 같이 사당동에서 2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 내렸다. 신도림역에서 인천으로 가는 전철로 갈아타야 하니까. 한참을 기다리며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전철이 오길래 무작정 탔다. 전철 안에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서서 가야만 했는데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분이 방송대 교재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마 그 사람도 나처럼 방통대 기말시험을 보러가는 사람이지 싶었다. 한참 친구와 수다를 떨며 얼마간 시간이 흘러 그 분이 내리길래 따라 내렸더니 이게 웬걸. 출석 수업을 다니며 내렸던 제물포역이 아닌 엉뚱한 역이었다. 그 사람이 나와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해 무작정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그때 시간이 8시 40분. 9시까지는 시험장에 가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그런 생각은 나중 일이었다. 일단은 시험장을 가는 것이 중요했다.친구와 난 택시를 잡고는 기사에게 하소연을 했다. 시험을 보러 가야 하는데 늦었다. 9시까지는 인하대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한다. 대충 이런 하소연이었다. 재미있던 것은 당시가 입시철이었다는 점이다.

기사 아저씨는 우리를 입시생쯤 되는 줄 착각했던 모양이다. 외관상으로는 연식이 있어보였지만 늦게 공부하는 사람도 많으니 으레 그러려니 했던 것. 이야기를 듣기가 무섭게 비상들을 켜고는 미친 듯이 달리는 게 아닌가. 얼마나 빨랐던지 친구와 난 사색이 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도 요약 노트를 들고 공부하는 나를 보며 친구가 혀를 찼다는 건 비밀이다.

기사 아저씨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는 9시 20분이 돼서야 시험장에 도착했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지만 나의 무대포 정신은 좌절을 모르는 모양이다. 읍소를 한 끝에 시험실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경황에도 시험을 끝까지 치뤘다. 결과는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방통대는 평균 학점이 3.3 이상이면 등록금이 면제되는데 내가 바로 그걸 해낸 것. 집으로 날아온 장학증서를 보고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른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가 없다가도 절로 웃음이 난다.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현)
-영등포구청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 위원(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여성가족부 가족친화우수기업 표창
-고용노동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표창
-제45회 상공의 날 모범 상공인 표창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