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10] 가정주부 경영자가 되다
[이수연 사장의 별빛에 꿈을 담고10] 가정주부 경영자가 되다
  • 편집국
  • 승인 2019.10.3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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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제이앤비컨설팅 이수연 사장

일단 저지르기는 했으나 사업이란 것에 대한 개념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 무엇을 해야할 지 막막했던 건 사실이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 없진 않았으니 조금은 맘이 편했다. 바로 남편이다. 이미 용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이 있었으니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처음에 별도의 사무실을 빌리지 않고 남편의 사무실 한켠을 빌려 창업에 나선 것도 그런 기대가 많이 작용한 셈이다. 돈도 많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남편의 노하우를 듣고 싶었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평생을 함께 의지할 동반자가 내 뒤에 버티고 서있는데 설마 도움을 주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남편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일만 돌봐주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남편도 자신의 업이 있는 상태였다. 

당시 남편이 운영하던 정방 시스템은 경비, 청소 등의 파견업무를 주로 진행하고 있던 때였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파견 업무를 행하고 있던 회사였는데 당시에는 거의 모든 아웃소싱 기업들이 유사한 형태의 일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산업이 초창기여서 체계나 시스템도 미흡했고 업무 역시 미분화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많은 경쟁사들과의 전투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었고 때문에 남편 역시 자신의 일을 한다고 정신이 없던 와중이었다. 간간이 내게 조언을 해주곤 했지만 솔직히 그쪽으로 일을 진행할 마음은 없었다.

어떻든 나는 후발주자였고 그렇다면 남들이 다 하는 것을 해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무얼 해야할지조차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얼 해야할지 모르니 매번 사무실에 앉아 궁리만 하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다. 

이게 남편 눈에는 못마땅해보였던 모양이다. 막상 창업이라고 해놓고는 매번 사무실에만 앉아서 책자만 뒤적이고 있는 내 모습이 의욕없음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하루가 24시간인 게 모자란 듯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남편 입장에선 매번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것이 답답해보일 밖에. 결국 남편은 면박을 주기에 이르고 만다.

어떻게 당신은 나가서 발로 뛰지 않고 그렇게 앉아만 있는 거냐로 시작한 남편의 말은 하다 못해 청소라도 해주고 해서 청소용역이나 경비라도 뚫어라. 당신 너무 한심한 것 아니냐는 말로 끝을 맺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른다. 물론 남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생각하는 바도 달랐고 무엇보다 아직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상태였으니 어느 정도는 시간을 줘야 옳다고 생각했다.

속으로 울면서 맹세했다. 나는 청소용역이 아니라 내가 가장 잘 할 수 잇는 분야를 차별화 시켜서 당신 회사, 정방 시스템보다 더 크게 회사를 키울 거라고.

물론 지금은 안다. 당시 남편이 내게 한 말이 내가 한심해 보여서가 아니라 일종의 오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위악이란 사실을. 그러나 그때는 정말로 속이 상했다. 속이 상하니 몸도 상해지기 일쑤였다.

당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은 퉁퉁 붓기 예사였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결국 나는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매일 남편에게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정말 못 참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98년 8월, 서울 방배동 이면도로에 20평짜리 사무실을 얻고 J&B 컨설팅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남자 직원 하나, 여자 직원 하나 그리고 나까지 모두 3명이 머무르는 공간이었다. 책임져야 할 사람까지 생긴 와중이었지만 여전히 남편의 면박이 환청처럼 들리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무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감이 안 잡힌 때기도 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여자가 인맥이 있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마케팅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과 잡지를 일일이 스크랩하고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회사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아직도 그때 모았던 자료들은 내 금고 속에 소중하게 잠자고 있다. 남편 눈에는 허송세월하는 것으로 비췄겠지만 정말로 혼신의 힘을 다했던 작업인 까닭이다.

내 초심은 그 정도로 격렬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자료들이 쌓여가며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할 그때, 또 한 번의 위기가 닥쳤다. 1997년 11월 12일, 정부는 국제 통화기금 IMF의 구제 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 그 유명한 IMF 사태의 시작이다.

원래 돌아가던 회사들도 문을 닫게 만든 이 사태가 신생 회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지는 불을 보듯 뻔햇다. 문을 연지 불과 세달 만에 회사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 극도의 위기감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현)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현)
-영등포구청 중소기업 창업지원센터 위원(현)
-호서대학교 벤처전문대학원 경영학 박사
-여성가족부 가족친화우수기업 표창
-고용노동부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 표창
-제45회 상공의 날 모범 상공인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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