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⑦차별화 전략으로 총재에 도전하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⑦차별화 전략으로 총재에 도전하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 편집국
  • 승인 2019.11.0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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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재선거에서 아베와 2차 투표 끝에 패배
1986년부터 중의원 11선 연속 당선 중
대중 인지도와 인기 높으나 당내 기반 취약
GSOMIA 종료는 일본에 근본원인 있다고 주장
「이시바 시게루」의 2013년 모습 (위키피디아제팬 캡처)
「이시바 시게루」의 2013년 모습 (위키피디아제팬 캡처)

 2019년 7월 분슌(文春)온라인이 실시한 차기수상후보 조사에서 이시바가 1위에 랭크되었다. 기시다 정조회장, 고이즈미 신타로, 고노 타로, 스가 관방장관이 그 뒤를 따른다. 아베의 장기집권에 피로감을 느끼는 일본인들이 ‘아베와 가장 멀기 때문’ ‘거짓말 할 것 같지 않아서’ ‘사리사욕을 챙길 것 같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그를 선택했다. (사실은)고이즈미 신지로가 마음에 들지만 아직은 너무 젊어 이시바를 택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와 1,2위를 다툴 정도로 대중 인지도가 높다. 그러나 당내 지지도가 약하고 타 파벌과의 연대가 느슨하다. 차기 총리를 노리는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시바는 1957년 자치대신과 돗토리(鳥取)현 지사를 지낸 이시바 지로의 장남으로 야즈군(八頭郡) 야즈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돗토리현은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56만) 광역단체다. 이름에도 나타나듯 그 옛날 새(鳥)를 잡아(取) 조정에 세금 대신 바쳤을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다. 스타벅스 커피가 도쿄보다 20년 늦은 2015년에 점포를 개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돗토리현은 한국의 강원도, 야즈쵸는 강원도 횡성군과 각각 우호교류 협정을 맺고 있다.

돗토리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시바는 토쿄로 상경해 게이오고등학교와 게이오대학을 나온다. 그가 정계에 진출한 것은 다나카 전 수상에 의해서였다. 대학졸업 후 은행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뒤를 승계하라는 다나카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1983년 다나카가 회장으로 있던 목요클럽(다나카파)의 사무국을 거쳐 1986년 돗토리현에서 중의원에 첫 당선된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로 전국 최연소였다. 이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11회 연속당선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는 행정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1992년 미야자와내각의 농림수산 정무차관을 시작으로 모리내각에서 방위청부장관, 고이즈미내각 방위청장관, 2007년 후쿠다내각 방위대신을 역임한다. 3개 내각에서 국방업무를 담당한 그에게 붙은 별명은 ‘신국방족’이다. 국방에 대한 신개념을 도입한 전문가라는 뜻이다.

그는 소신이 뚜렷한 정치인이다. 때로는 당론을 거스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1994년에는 정치개혁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자민당을 탈당한다. 한 때 진보계열 정당에 참여하지만 현실정치의 한계를 느끼고 3년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한다. 선거 때마다 압도적 지지를 얻어 8선을 이룬 그는 2009년 당3역의 하나인 정조회장에 취임한다. 돗토리현 출신이 당3역 포스트를 차지한 것은 이시바가 처음이었다.

3년 후 그는 당 최고위직인 간사장에 오른다. 총재선거에서 승리한 아베가 최측근을 임명하는 관례를 깨고 정적이었던 이시바를 지명한 것이다. 간사장은 당의 모든 재정과 인사권을 쥐고 있는 요직 중 요직이다. 2012년 이시바는 파벌의 지원 없이 총재 선거에 나가 전국 당원이 참가하는 1차 투표에서 아베를 큰 표 차이로 앞질렀다. 그러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2차 의원투표에서 패배했다. 이시바의 위력을 실감한 아베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시바는 그해 12월 실시된 중의원 선거를 진두지휘해 대승을 거두고 정권을 찾아오는데 크게 기여한다. 2차 내각을 꾸린 아베는 2014년 개각 때 안전보장 법제국을 신설하고 이시바에게 맡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간사장으로 남겠다며 거절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시바는 거당체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아베내각에 합류한다. 그가 맡은 부처는 내각특명(국가전략특별구역) 및 지방활성화담당이었다. 지방활성화 부문의 업무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활기차고 풍족한 지방활성화를 위한 시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획입안 및 행정각부가 담당하는 사무조정’이 그에게 부여된 직무였다. 둘 사이 마찰을 차단하기 위한 고심의 흔적이 잘 드러나 있다. 

이시바는 의원 19명 참여한 파벌, 수월회(水月会)를 이끌고 있다. 2015년 9월, 자민당에서 가장 최근에 결성된 이 조직은 기존의 어떤 계보와도 연계성이 없고 규모가 작아 일명 벤처파벌로 불린다. 결성취지를 “앞으로 50년, 100년을 주시하며 정책체계를 구축하고 국민과 정면으로 토론해 나가는 가운데 공감과 납득을 얻을 수 있는 정책집단 운영”이라고 밝히는 한편, “나 같은 사람도 정권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그것을 목표로 삼겠다”며 총재직 도전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자민당 파벌 중 소수파 한계에 부딪쳐 정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 지난 7월 개각 때는 단 1명도 의원도 입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파벌 분위기는 밝고 낙관적이라는 것이 여러 미디어의 분석이다. 오히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정도라고 한다. 아베정권과 노선 차이를 분명히 드러냄으로 존재감을 높이려는 고도의 전략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시바는 아베가 추진하는 개헌이나 자위대 참전방침 등 주요 정책마다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이 종료를 선언한 GSOMIA에 대해서도 일본이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을 끌었다. 자민당 다른 파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역사인식이다.

이시바는 이미 총재선거 실전 모드에 돌입했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구호는 ‘정직’과 ‘공정’이다. 아베 정권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47개 도도부현(都道府県, 광역단체) 별로 당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맞춤형으로 준비돼 있다. 지역마다 특산물이 소개되고 알기 쉬운 공약이 나온다. 마치 KBS의 6시 내 고향 같은 분위기다. 국외자 입장에서 이것저곳 누비며 지역정보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자막이 딸려 있어 일본어 초심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차기 총재선거에서 당원이 참가하는 1차 투표에서 승부를 보려 할 것이다. 과반수를 넘기면 선거는 그것으로 끝난다. 2012년 아베에게 패한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일본어통역안내사
-백만인취업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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