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동 박사의 경제칼럼] 대우의 세계경영 회고
[김근동 박사의 경제칼럼] 대우의 세계경영 회고
  • 편집국
  • 승인 2019.12.1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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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김우중 회장의 서거에 즈음하여
김근동 박사
김근동 박사

12월9일 대우그룹의 창업자 김우중 회장이 서거했다고 한다. 지난 일들이 불현듯이 스쳐갔다. 

1998년 나는 해외 주재원을 끝내고 잠시 본사에 복귀했을 때 해외 경험을 기반으로 회사의 핵심 임원들 앞에서 대우의 세계경영 특징에 관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첫째 사업 리스크가 컸지만 연구개발-생산-판매 등을 셋트로 묶어 해외에 진출했다. 당시 한국기업들은 연구개발과 생산을 한국에서 하되 판매만 외국에서 하는 형태였다. 

둘째 이머징시장(떠오르는 시장)의 개척에 경영력을 집중했다.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의 시장개척에 주력했다가 사회주의 국가의 동구권이 붕괴되자 이 시장에 재차 힘을 집중하게 된다. 다른 대기업은 리스크가 작은 안정된 선진시장 개척에 주력했다.

셋째 중후장대 산업을 묶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자동차-기계-조선 등의 산업을 묶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수주 산업인 무역과 건설을 통합해 (주)대우를 만들어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 했다. 다른 대기업은 개별산업, 무역과 건설을 분리해 경영했다.

넷째 자금 조달을 위해 투자금융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 대우는 산업자본의 금융진출 제한으로 은행 진출이 힘들게 되자 대우 증권을 기반으로 자금조달에 나섰다는 것이다. 다른 대기업의 자금조달은 은행융자에 의존했다. 

다섯째 선진국에서 포기하는 사업의 인수에도 적극 나섰다. 프랑스의 유명한 전자업체인 톰슨이 경영악화로 1달러에 매각하자 대우가 인수했다. 나중에 프랑스가 국민감정을 앞세워 반대해 최종적인 인수에는 실패했지만... 다른 대기업은 선진국 기업이라도 사양사업인 전자업체 인수에 관심이 적었다. 

이런 경영전략으로 1998년 대우는 전년대비 80%가 넘는 수출실적을 기록해 한국의 IMF 사태 극복에서 맹활약했다. 

하지만 대우그룹의 약점도 많았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하다가 보니 지나치게 많은 차입금에 의존했다. 엘리트 인재주의를 표방하자 우수한 인재들이 대우에 몰렸다. 머리들만 우글 거렸다. 일할 사람, 꼼꼼하게 챙길 허리가 약한 한계를 보였다. 

당시 대우는 우수한 인재의 스카웃에 나서 학력과 경력이 좋은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현대는 일만 잘 하면 되지 학력이 무슨...이라는 입장이었다. 삼성은 상고나 야간대 출신들과 같이 삼성아니면 죽는다는 각오의 인력들을 전진 배치해 알판(경리)의 삼성과 관리의 삼성, 무노조경영 이라는 말을 만든다. 보수적인 LG그룹은 삼성의 전자산업 추격 저지에 올인한다. 삼성이라는 말만 나와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이 뿐만 아니라 오너인 김우중 회장이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의사결정의 권한이 김 회장에게로 몰렸다. 회장 부재시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었다. 

특히 대우 오너의 정치권과의 불화는 대우의 해체를 촉진하게 된다. 야당 시절의 DJ정권에 과감하게 지원해 신임을 얻게 되자 여당이 된 DJ정권 초기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까지 겸임한다. 

DJ정권은 대기업 경영자들에게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멈추고서 선택과 집중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김우중 회장은 문어발식 경영이라도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결국 대우는 과도한 차입을 개선해 부채비율 200% 이하로 경영할 것과 업종전문화를 요구하는 DJ정권에 반기를 드는 분위기를 연출해 손봐야 할 대기업에 오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성이 새로 진출했던 자동차를 포기하고서 대우 자동차에 매각하되 대우전자를 삼성전자에 매각하는 빅딜을 추진했으나 삼성의 반대로 성사되지 않아 거액의 정책자금 마련의 길이 막힌다. 

이 때 나온 유명한 말이 비교적 투명한 새댁(삼성자동차)을 산전 수전 다 겪은 부실 덩어리 과부(대우전자)와 어떻게 교환할 수 있단 말인가? 였다. 삼성은 삼성자동차를 빅딜 대신에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대우에게 밀리지 않았다. 기회를 잡지 못한 대우는 더 이상 자금 마련을 할 수 없어 재무 위기로 1999년 해체되고 만다. 

대우의 몰락과 더불어 김우중 회장은 수십조원의 부채를 앉고서 해외를 전전하다가 쓸쓸한 노후를 맞이한 것이다. 

대우의 세계경영을 연구해 전파하려는 나도 회사내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대우가 강력한 라이벌으로서 치열한 경쟁을 했어야 전문가들의 가치가 올라가 출세를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김근동 박사
-현 국제협력포럼 위원
-전 산업연구원(KIET),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도쿄 주재)

*본 칼럼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본사의 편집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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