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⑩컴백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장범석 칼럼] 일본의 정치인들 - ⑩컴백하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 편집국
  • 승인 2019.12.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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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창당한 하토야마이치로 전 총리 손자
2009년 민주당 집권의 주역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 꿇은 친한파 정치인
공화당 창당으로 정계복귀 꿈 꿔
하토야마 유키오(내각홍보실공표 초상사진)
하토야마 유키오(내각홍보실공표 초상사진)

하토야마는 2009년 8월 총선에서 민주당 압승을 이끌며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단독정당이 중의원의 480석 중 308석을 차지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하토야마 내각은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로 출발했다. 경기회복을 위한 구조개혁, 지구환경문제 적극대처, 주변국과 관계개선 등이 하토야마가 내건 주요정책이었다.

특히 한국을 ‘동남아시아 공동체 구축을 위한 제1파트너’로 규정하고 연대를 강조했다.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을 위한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 아시아 각국이 하토야마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불편해지고, 정치자금문제가 드러나자 취임 9개월 만인 2010년 6월 전격 사퇴한다. 그가 청치철학으로 내세운 우애(友愛)사상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었다.

하토야마는 1947년 2월 대장성 관료였던 이이치로(威一朗)의 장남으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하토야마 집안은 정치 명문가다. 증조할아버지 가즈오(和夫)는 1890년대 말 중의원의장을 지냈고, 아버지도 나중에 외무대신과 참의원 3선 의원을 지냈다. 더 유명한 인물이 할아버지 이치로(一郎)다. 1954년 민주당을 결성해 내각총리가 된 이치로는 이듬해 총선에서 과반 달성에 실패하자, 자유당과 합당해 자유민주당(자민당)을 탄생시켰다.
 
1955년 좌파가 사회당으로 단일화에 성공하자 위기감을 느낀 보수 두 당이 합친 것이다. 이를 현대정치사에서 ‘55년 체제’라 부른다. 이때부터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시작된다. 자민당은 1993년 야당연합에 잠시(10개월간)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하토야마내각이 등장할 때까지 50년 넘게 일본정치를 독점하고 있었다. 이러한 자민당의 철옹성을 손자가 무너뜨린 것이 아이러니하다.

도쿄에서 초중고를 마친 하토야마는 집안 전통에 따라 도쿄대학에 진학하게 되는데 정치와는 무관한 공학부를 택했다. 대학에서 계수공학을 전공하고 스탠포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정치인으로는 발군의 학력이다. 귀국 후 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던 중, 1986년 다나카파 공천으로 중의원 의원에 첫 당선된다. 함께 총선에 출마해 4선을 달성한 동생 구니오(邦夫)보다 10년이나 늦은 정계 데뷔였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명문가 출신에 출중한 학력, 풍부한 자금력이 뒷받침되며 초선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당시 자민당은 리쿠르트사건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하토야마는 동기당선자들과 ‘유토피아정치연구회’를 조직하고 자민당 정치자금 실태를 공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러나 기대했던 정치개혁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1993년 연구회 멤버들과 자민당을 탈당해 ‘신당 사키가케’ 결성한다. 그해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고 야당연합내각이 구성되며 하토야마는 관방부(副)장관으로 정권의 한 축을 담당한다.

1996년 나중에 총리가 되는 간 나오토, 동생 구니오 등과 함께 민주당을 결성해 공동대표에 취임한다. 그리고 10년 후 대망의 총리자리에 오른다. 총리 사임 후 민주당 최고고문에 취임하지만, 2012년 소비세증세를 당론으로 정한 집행부에 반발해 고문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다. 이후 자신이 설립한 싱크탱크인 동아시아공동체연구회를 거점으로 중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총리시절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하토야마는 일본의 정치인 중 손꼽히는 자산가다. 하토야마 일가의 자산은 부계와 모계 쪽을 합쳐 400억 엔(약 4,4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 야스코(安子)는 글로벌 기업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업주의 장녀로 생전에 브리지스톤 주식 1,200만주(약170억엔 상당)를 보유하고 있었다. 도쿄의 분쿄(文京)구에 위치한 하토야마 회관도 하토야마 명의로 된 재산이다. 회관은 1924년 아버지 이치로가 지은 서양식 건물로 일반인에게 유료로 공개되고 있다. TV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하토야마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우애(友愛)사상’을 정치활동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자신의 존엄을 존중할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는 이타(利他)심이 발동하고, 이 이타심이 상대방과 진정한 우정을 맺어준다는 사상이다. 그는 이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2008년 강습소 ‘우애숙(友愛塾)’을 세웠고, 2013년에는 이름까지 ‘由紀夫’에서 ‘友紀夫’로 개명했다. 리버럴리스트 하토야마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2015년 8월 12일, 하토야마는 일본통치 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서대문형무소를 찾아 유관순 열사의 감방에 헌화한 후,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전직 총리로서, 한 사람의 일본인 그리고 인간으로서 이곳을 방문했습니다.”로 시작되는 사죄의 담화를 남겼다.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던 하토야마가 얼마 전 공화당 창당을 위한 정치 결사체를 발족시켰다. 2019.10.25일자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30년까지 국회의원 30명 정도를 배출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념으로 내세운 공화주의에 대해 “사람들과 협력하지만, 도리에 어긋난 일은 하지 않는다(和して同ぜず)”는 논어의 자구를 인용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베정권을 끝내기 위해 야당을 어떻게 결집시킬 것인가. 이를 위해 정당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지 등에 대해 함께 토론해 나가고자 한다“며 정계에 화두를 던졌다. 노정객의 정계복귀 꿈이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란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장범석]
-칼럼니스트
-일본어통역안내사
-백만인취업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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