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알라스카(Alaska)와 스워드(Seward)
[전대길의 CEO칼럼] 알라스카(Alaska)와 스워드(Seward)
  • 편집국
  • 승인 2019.12.1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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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람 대한'으로가 아닌 '대한사람 만방'으로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남북전쟁(1861~1865년) 종전 2년 후인 1867년 3월 23일, 미국은 워싱턴에서 제정 러시아에게 720만$를 주고 알라스카(1,717,854Km²) 땅을 매입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해서 러시아 알라스카는 미국 영토가 된 것이다. 알라스카는 남북한 국토(223,156Km²)의 7.7배에 해당하는 넓이다.  
         
알라스카에는 ‘스워드(Seward)’란 항구도시가 있다. ‘스워드 고속도로(Seward Highway)’도 있다. 이는 러시아로부터 알라스카 땅 매입을 주도한 인물인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 국무장관을 기리기 위함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교수가 말했듯이 미국 본토의 광대한 미국 서부가 제대로 개척하지 못했던 그 당시에 동토(凍土)의 땅, 알라스카를 거금(巨金)을 주고 덥석 사들이겠다니 미국 의회와 언론은 알라스카를 ‘이 세상의 지옥’ 또는 ‘스워드의 얼음상자’라며 조롱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 본 ‘스워드’ 국무장관의 강력한 리더십이 없었더라면 알라스카는 러시아의 땅으로 영구히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을 겨냥한 러시아의 수많은 핵미사일이 이 땅에 배치되었을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믿는다.

미국과 러시아간에 맺은 알라스카 매매 계약서 
미국과 러시아간에 맺은 알라스카 매매 계약서 

'스워드와 링컨’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였다. ‘스워드’는 사실상 ‘링컨’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의 정치인으로 약관의 나이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에 각각 두 번씩이나 당선되었다.  ‘스워드’는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일 만큼 흑인 인권보호에 적극적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볼 때 시골 출신의 '링컨'이 지명도에서 크게 앞선 ‘스워드’에게 감히 도전장을 낸 것이다.     
                   
그런데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스워드’가 링컨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그런데 패배한 ‘스워드’는 미국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링컨 대통령 후보의 지원유세에 강행군해서 링컨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

이런 연유로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를 미국 연방정부 국무장관에 임명했다.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러한 좋은 사례가 나왔으면 좋겠다. 

인류는 땅따먹기 전쟁을 지속해 왔다. 중요한 것은 땅의 크기가 아니라 가치이다. 이런 면에서 '땅 이야기'만 나오면 러시아가 땅을 치며 후회한다. 석유, 철, 구리, 금, 석탄(세계 총매장량의 1/10 매장) 그리고 천연가스 등이 대량 매장되어 있는 ‘알라스카(Alaska)’의 진가(眞價)를 알아보지 못하고 미국에 헐값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지정학(地政學)적으로 중차대함도 간과(看過)한 점도 러시아는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알래스카를 둘러싼 주변국들

제정 러시아가 알라스카 땅을 미국에게 팔아버린 배경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18세기 초, 러시아 피터 대제 1세의 명령을 받은 베링(Bering)은 알라스카를 탐험한 후 알라스카에서 생산되는 모피(毛皮)가 러시아 궁정 내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알라스카에 해군을 파견해서 관리했다. 

그때 알라스카 땅에 큰 관심을 보인 영국도 미국 서북부 오리건 주에 해군기지를 세웠다. 1778년에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James Cook...1728~1779)’ 선장이 앵커리지(Anchorage) 근방에까지 답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여러 정황상 어려워진 러시아는 알라스카를 영국에 빼앗길 수 있음을 염려했다. 1859년에 미국에게 알라스카를 양도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다. 

그때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년)으로 인해서 알라스카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 서부의 주(州)들이 연합해서 알라스카 매수운동을 펼치자 미국 연방정부가 알라스카 매입에 나섰다.
 
1867년, 미국 국무장관윌리엄 스워드는 러시아의 대외 부채 700만$을 떠안고 추가로 20만$을 지급하기로 러시아와 계약했다. 이때의 지가(地價)는 1에이커(Acre...약1,224평)당 미화 ‘2센트’에 해당한다. 그냥 길에서 주운 거나 다름없는 헐값이다. 
 
이 거래가 성사된 후 러시아는 알라스카를 미국에게 시원하게 잘 팔아 넘겼다고 기뻐하며 매각담당자에게 거액의 상금을 주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스워드 국무장관이 러시아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미국이 알라스카를 매입하고 30년이 지나자 알라스카와 캐나다 국경지역에서 사금(砂金)이 대량 발견되자 희비가 교차했다. 그리고 알라스카의 한 섬(島)에서 생산된 모피 판매가가 알라스카 땅값(720만$)의 7배가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었다, 

이러할지니 알라스카를 바보처럼 미국에 팔아버린 러시아는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 한마디로 미국은 미국과 미국인을 위해 대박(大舶)을 친 것이다. 

현재 알라스카의 경제적 가치와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대함은 계산하기 어려울 만큼 천문학적이다. 미국인들은 평가한다. ‘링컨’이 미국인에게 위대한 것은 두 동강난 나라를 통일했기 때문이고, ‘스워드’가 대단한 것은 혼란했던 시기에 미국의 장래를 내다보며 국토를 광활하게 넓혔기 때문이라고.  

현재 미국 제 45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Great U.S.A)”이라고 큰 소리 치는 게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구상의 ‘땅’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정치적, 경제적으로 중요하다. 알라스카처럼 불모지로만 알았던 땅의 미래 가치를 예견(豫見)해서 무한한 국부(國富)를 창출한 미국, 미국인이다. 

뿐만 아니라  후버댐(Hoover Dam)으로부터 송수관으로 끌어들인 물로 사막위에 건설한 라스베가스(Las Vegas) 도시는 미국인들의 자긍심(自矜心)을 높여주는 자랑거리다.  

그런데 최근 미국과 1단계 무역합의를 놓고 갈등관계인 중국이 ‘남미 최대 시장’ 브라질 공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브라질을 방문한 시 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히며 글로벌 해양 패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 주석은 최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리는 ‘제11회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 브라질 주요항구인 ‘상루이스(Sao Luis) 항구’에 10억$를 투자키로 했다. 10억$ 투자는 브라질이 올 해 유치한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다. 특히 중국은 직접 땅 등을 사들여 현지에서 사업장을 건설하는 ‘그린 필드(Green Field)투자 방식’이다. 

중국은 국영기업이  앞장 서서 브라질을 시작으로 해상 ‘진주목걸이 전략’과 현대판 실크로드인 육상(陸上)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을 통해 남미에서 중국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진주목걸이’는 미국의 중국 견제용 ‘아시아·태평양 전략’과 배치되는 것으로 양국 갈등 사안 중 하나다. 

미국이 알라스카를 사들이고 중국이 남미 브라질 땅을 사서 투자하듯이 우리 나라도 지구상에서 값싸게 사들일 땅을 찾아보면 어떨까? 지구상에서 동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에 우리가 찾는 땅은 분명히 있을지 싶다. 

실제로 1978년 대한민국이 영농이민을 장려하면서 아르헨티나 국유지인 야따마우까 농장(6,320만평)을 사들인 적이 있다. 지난 41년간 남미의 한국 땅을 한국정부의 관리소홀로 방치해 오다가 이 중 일부 90,000평을 불법 점유하던 현지 주민에게 공짜로 넘겨주었다는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어찌 이럴 수가?  

1970년대 초반, 이 동찬 코오롱그룹 회장을 수행한 김 주성 비서실장이 인도네시아를 시찰할 때의 이야기다. 예전에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해군이 쏜 대포 몇 방을 맞고 혼비백산해서 항복하고 네덜란드 식민지가 되었다. 

여의도보다 더 넓은 자카르타 시내의 공원으로 변한 옛 네덜란드 총독관저를 둘러보면서 “우리 조상들도 나라 안에서 당파싸움만 일삼지 말고 아시아로 눈을 돌려 최 무선이 개발한 화포(火砲) 몇 방이라도 쏘았더라면 동남아시아 땅을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단다. 

“한국이 인도네시아 같은 섬나라를 사들여 우리 영토를 넓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김 주성 코오롱그룹 전.부회장’의 이야기가 큰 울림을 준다. 그의 얼굴이 ‘윌리엄 스워드(William Seward)’ 미국 국무장관’ 얼굴과 자꾸만 겹쳐 보이기까지 한다. 

끝으로 “대한사람 대한”으로가 아닌 “대한사람 만방으로” 우리들 생각이 바뀌는 그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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