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수 박사의 직업이야기34] 일과 여가의 조화(2)
[신의수 박사의 직업이야기34] 일과 여가의 조화(2)
  • 편집국
  • 승인 2020.01.2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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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는 자기실현의 기회이며 궁극적 가치는 행복
직업학박사 신의수
직업학박사 신의수

여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시대 변화에 따라 발전해 왔다. 그리스 시대에는 노예제도에 기반을 둔 귀족주의 사회에서 신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구분으로 여가를 제도적, 개념적으로 구분한 시기였다. 

고대 그리스 물리학·생물학·동물학·심리학·정치학·논리학·형이상학 등 모든분야에 탁월했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여가를 자기실현(self-actualization)의 기회로 보았다. 

또한 여가는 좋은 것이며 활동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며 덕과 선을 함축한 인간의 자기 개발과 관련된 활동이라고 하였다. 

반면에 일의 의미로 노동은 단지 생존의 기회를 얻기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결국 자기실현을 위해 노동은 피해야 할 것이며 노예들의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의 존재가치는 신에게로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happiness)을 추구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등 철학자인 플라톤(Platon)은 놀이와 교육은 궁극적으로 목표가 동일하고, 교육과정에서 놀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길은 바로 놀이를 통해서 가능한 것이며 신을 깨달을 수 있는 자기실현이란 진지한 자세를 요구하는 물질추구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인생을 유머와 낙관주의로 채워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이며 이상적인 삶이란 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그 핵심에 놀이의 경험이 있다고 하였다.

로마시대(~A.D. 4C)에도 여가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추구 여가관을 전승하여 지배계급에 의해 여가활동 자체가 향락적으로 변질되었고 이러한 여가 문화는 로마제국이 멸망에 이르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중세의 여가(5C~3C)는 ‘신에게 기도하는 시간 혹은 신을 위한 찬미의 시간’이었으며 자유 의지나 쾌락으로서 여가의 의미가 철저히 배격되는 시기였다. 르네상스 시대(14C~5C)는 종교적 교의로부터 인간 해방이며 자유의 다른 표현인 인간성의 표현 기회인 인문, 예술 등 여가 활동을 창조의 기회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시대(16C~7C)에는 여가에 대한 부정적 사고가 팽배했다. 종교 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 개혁교회 신학자이며 종교개혁가인 칼빈(Calvin)은 “자신의 일에서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여가는 게으른 것이며 악마의 일이다”라고 하였으며 여가가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때는 “노동력을 위한 재충전의 기회일 때 뿐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천직(天職) 개념으로 성실하게 돈을 버는 행위는 바람직한 가치가 되었고, 근면, 성실은 최대의 덕목이 된 반면, 여가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근세(18C~20C 초)에는 공장의 발달로 인하여 일터와 놀이터(가정)가 시간적, 공간적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생활구조로 바뀌었고 산업중심의 시대는 근면 성실이 신의 은총을 위해서만이 아닌 개인의 소득과 공장의 생산성을 위한 미덕이며 여가는 단지 노동의 수반활동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여가와 일의 개념이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가정과 일터가 나누어지고 청교도주의의 천직개념은 더욱 강화되어 여가는 단지 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간주되었다. 

세계대전 이후(20C 중~1970년대)는 휴가 개념의 제도화, 다양한 가전기구 발달로 인한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으로 인하여 산업사회의 여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양적으로도 여가시간이 증대하였다, 

그러나 여가는 여전히 소비적인 것이며 단지 노동을 위한 재충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누구나 비슷한 형태의 여가 활동, 비슷한 시기의 휴가, 단체 여행 등 여가소비문화가 표준화되는 시기였다.

우리나라 여가에 대한 의미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농경사회에서는 여가는 단지 귀족의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서민의 여가는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노동생산성을 위한 수단이거나 농한기 노름과 같은 자기파괴적인 활동이 서민의 여가로 여겨졌다. 서민들은 투전, 길쌈놀이, 강강수월래, 차전놀이, 연등제 등을 즐겼으며 명산대천 유람과 같은 풍류도로 합리화된 귀족의 여가생활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소개된 화투는 도박문화를 통한 일종의 우민화(愚民化)정책으로 정착되었으며 생산적이거나 자기개발을 위한 여가 문화의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는 전통적인 산업사회 진입기로 노동생산성을 강조하는 시기였다. 그리하여 여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하였고 여가는 단지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예를 들어 해외여행은 해외여행 금지로 극히 일부 특권층만의 여가활동이 되었고, 88올림픽이후 1989년에서야 “해외여행자유화”조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독재정권에서는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였고 여가는 단순히 재충전 기회로 밖에 여겨지지 못했다. 

노동은 국가차원의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생각했으며 3S(Sport, Sex, Screen)를 활용하여 여가문화 왜곡 정책을 전개해 독재정권의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 여가는 정부, 기업, 전체 사회의 것이 아닌 개인의 권리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여가는 수단이 아닌 목적 그 자체로, 일은 여가의 수단이라는 의식이 대두하였다. 

일 조차도 어떻게 여가적 속성을 가미할 수 있는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며 ‘여가문화’자체가 일종의 산업이 되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여가를 객관적이고 제도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시간을 전제한 다음에 남는 시간을 고려하여  여가 개념을 정의하게 되었다

여가는 행동양식으로서 노동, 가정생활 및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 형태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관련학자들에 의해서 시간적, 활동적, 상태적, 제도적 그리고 이들 중 두 개 혹은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등 다양한 관점으로 정의되고 있다. 

파커(stanley R. Parker)는 여가를 “일과 생존을 위한 기초적 욕구가 충족되고 남은 잔여시간(residual time)“으로 달리 브라이트빌(Charles K. Brightbill)은 ”개개인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갖게 되는 자유재량적 시간(discretionary time)“으로 머피(James Murphy)는 ”개인이 자기결정적 상황(self-deterministic condition)하에서 재량껏 이용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보았다. 

사회학사전(Dictionary of Sociology)에는 여가는 1일 24시간 중에서 노동, 수면, 기타 필수적인 것에 바쳐진 시간을 제외한 잉여시간(surplus time)으로 규정하고 있듯이 시간적 개념으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버거(B. Berger)는 여가를 활동의 형태로 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필요하고, 보상을 주는 일과는 대조되는 것이며, 자유시간에 수행되는 자발적 활동”으로 정의하고 프랑스의 여가사회학자인 듀마즈디에르(J. Dumazedier)는 “여가는 남는 시간에 수행하는 자유활동”이라는 활동적 측면을 강조했다. 

뉴우링거(Neuliger)는 여가는 ‘어떤 기준의 마음의 상태인가가 중요’하다고 했으며 그것으로 인하여 기쁨과 만족감을 부여받게 되며 개인의 존재의 깊은 내면세계와 관련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하여 여가란 경험 및 마음의 상태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여가의 본질을 노동, 결혼, 교육, 정치, 경제 등 사회제도의 상태나 가치패턴과의 관련성을 검토하여 그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것으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노동으로부터 생기는 피로, 권태감, 압박감에서 해방됨으로써 에너지를 보충하여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여가의 본질을 정의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여가는 일면 생활의 목적이 되고 있지만 노동은 여가생활을 가능케 하는 수단적 역할로 변질되어 가는 상황에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 하에서 여가는 노동과 대립개념이 되지만 이 두 가지 요소는 제도적인 차원에서 상호보완적 관계로 유지한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적 의미로 여가의 궁극적 가치는 행복(Happiness)에 있으며 행복은 도덕적 행위 이상의 것에 의해 결정되고 주관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의 상태이다. 

이러한 행복은 문화활동, 사회활동, 봉사활동 그리고 취미활동 등 여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도는 달라진다. 청소년들이 학교생활을 더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중장년들이 직장생활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능동적인 여가활동에 참여했느냐? 여가활동에 만족하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신의수(jbcom0501@hanmail.net)
- (주)제이비컴 대표이사 (현) 
- 경기대학교 직업학과 박사 
- 직업상담 NCS개발위원, 학습모듈 검토위원
- 직업상담사2급 과정평가형 자격증 개발위원
- NCS컨설턴트
- (사)직업상담협회 이사 및 공동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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