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선(善)과 악(惡) 그리고 행복(幸福)
[전대길의 CEO칼럼] 선(善)과 악(惡) 그리고 행복(幸福)
  • 편집국
  • 승인 2020.02.05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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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지구 대홍수 때 동물들이 노아의 방주(Noah's Ark)로 몰려들었다. 이때 선(善/Good)도 헐레벌떡 방주로 달려왔다. 그런데 노아는 “나는 커플<Couple, 쌍(雙)>이 아니면 방주(方舟)에 태워줄 수 없다”며 선(善)을 태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선은 악(惡/Devil)을 찾아 헤매다가 악(惡)을 간신히 만나서 노아의 방주에 같이 올랐다. 그 이후 선(善)이 있는 곳에는 늘 악(惡)이 함께 있게 마련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태교(猶太敎) 율법교사, 사제(司祭)인 랍비(Rabbi)들이 사람들을 뼈 속까지 파먹는 잔인한 악당들과 마주쳤다. “이와 같은 나쁜 악당들을 물에 빠뜨려 모두 죽여 버렸으면 좋겠다”고 한 랍비가 말했다. 

이에 대해서 원로 랍비는 “유태인으로서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오. 아무리 나쁜 악인(惡人)이라도 죽여 버리겠다고 기도해선 아니 되오. 악인들이 회개할 것을 원해야 할 것이오, 악인을 벌하는 일은 우리 쪽에 아무런 득(得)이 되지 않으니 그들을 후회하게 하고 우리 쪽에 속하게 하지 않으면 해(害)가 될 뿐이요”라고 말했다.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선(善)에 관한 말씀이다.  
“여러분 중에는 악을 악으로 갚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고 언제나 서로 남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라.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라. 항상 기뻐하라. 늘 기도하라.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 <新約聖書 데살로니가전서 5 : 15~17>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하라. 꾸준히 계속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이다” <新約聖書 갈라디아서 6 : 9>

그리스 작가, 이솝(Aesop..B.C 620~560) 우화의 ‘선과 악에 관한 이야기다. 
악(惡)보다 힘이 약해서 하늘로 쫓겨 올라 간 선(善)들이 물었다. “하느님! 어떻게 하면 우리 선들이 사람들하고 같이 살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그러자 하느님은 “한데 몰려다니면 악의 눈에 잘 띄니까 하나씩 따로 떨어져서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악(惡)은 언제나 사람들 주변에 우글거리지만 선(善)은 하늘에서 아무도 모르게 땅으로 하나씩 내려오니까 만나기가 어렵다. 따라서 사람들 주변에서 나쁜 일들은 자주 일어나지만 좋은 일은 그렇지가 못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이란 뜻의 ‘인생(人生)’의 ‘살 생(生)’자는 ‘소 우(牛)+한 일(一)’자로 되어 있다. ‘소가 네 발로 외나무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너가듯이 살아가라’는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말이나 행동에 마음을 쓰라는 ‘조심(操心)’이란 말을 들여다본다. ‘잡을 조(操)’자는 ‘손 수(手)+나무 목(木)+입 구(口)’자로 되어있다. ‘나무 위의 세 마리 참새를 손으로 한 번에 잡으려고 하듯이 몰입(沒入)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행복(Happiness)’이란 말의 어원은 ‘어떤 일이 일어나다’란 의미의 ‘Happen’에서 유래했다. 행복(幸福)의 ‘다행 행(幸)’자는 ‘매울 신(辛)+ 한 일(一)’자이다. ‘어떤 일이 잘되어 다행(多幸)’한 것은 그 과정에 맵고 어려움이 동반한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행복이라는 말에서 중요한 말은 다행할 행(幸)자이며 행(行)스러워야 한다. 노력하지 않으면, 어려움과 고초(苦楚)가 따른다. ‘다행할 행(幸)자’는 ‘노력할 행(行)’자와 그 뜻을 같이한다. 

사람의 행복은 ‘튼튼할 건(健)+편안할 강(康)’자의 ‘건강(健康)’이 바탕이다. ‘건강(健康)’이란 ‘육체적인 건(健)’과 ‘정신적인 강(康)’을 말한다. 육체의 튼튼함만이 건강이 아니다. 정신적인 건강이 늘 함께 해야 한다.   

한준상 교수의 '행복'

‘행복(幸福)’이란 두 글자를 주제로 <행복>이란 책(Page 917)을 펴낸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한 준상 교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뫔(=몸+맘)’이란 글자로 표현한다. ‘건강’은 ‘뫔’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幸福)’보다는 ‘복행(福幸)’이라고 쓰는 게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게 좋을 것 같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조금 걸을 척(彳)+ 자촉거릴 촉(亍)‘자의 움직일 행(行)자는 ‘다듬어 세운다’란 뜻을 지닌다. 행(行)자는, 우리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음직한 모습이다. 왼쪽 다리는 질뚝거리면서 절며 오른쪽 발은 깡충거리면서 앞으로 힘들게 걸어 나가는 모습은 어려움을 이기려고 노력해야함을 나타낸다. 다행하려면 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생을 살려면 잘 살아가려고 힘써야 한다. 나름대로의 살아냄의 고통이 따른다. 살아내려는 노력이 없이는 살아냄은 불가능하다. 행복하기 위해서 복(福), 재수(財數), 운(運)을 바라지 말자.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선(善)은 보이지 않고 악(惡)이 판을 치는 요즘 세상은 ‘진실 보다는 거짓’이 활개 친다. ‘정직, 겸손, 열정, 경청, 나눔, 봉사, 배려’란 착하고 아름다운 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구절이 소학(小學)에 나온다. ‘적선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복(慶福)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착한 일을 계속하면 자기 자신과 자손(子孫)에게 복(福)이 온다. 최고의 선(善)은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계속하는 일이다.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하얀 양(羊)이나 늘 푸른 나무처럼 말이다. ‘적선(積善)’의 반대말인 ‘적폐(積弊)’가 쌓이는 집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손(子孫)에게도 반드시 불행(不幸)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이를 ‘적페지가 필유불행(積弊之家 必有不幸)’이라고 적는다. 

“행복과 불행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 마찬가지로 선과 악도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다, 행복과 선을 찾다가 자칫하면 불행과 악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어느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해지기는 아주 쉽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하고자 하는 일에만 신경 쓰고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가 있다.                 

안 병욱 철학교수(1920~2013)
안 병욱 철학교수(1920~2013)

‘흥사단 서울 고등학생 아카데미(3기)’에서 행복론(幸福論)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열강 하시던 안 병욱 지도교수가 생각난다. “전(全) 군이 결혼할 때 내가 주례를 서 줄게”란 안 병욱 교수님 말씀도 잊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안 병욱 교수는 ‘선(善)’은 성질이 온순하고 인간에게 모든 것을 내주는 착한 동물인 ‘양 양(羊)’자에서 왔음을 강조했다. ‘양 양(羊)’자에서 유래한 ‘착할 선(善), 아름다울 미(美), 옳을 의(義), 희생할 희(犧)’자가 선(善)과  행복(幸福)의 원천(源泉)이라고 말이다. 

착하고 아름답게, 정직하고 올바르게 그리고 이타정신(利他精神)으로 남을 위해 희생(犧牲)하는 것이야말로 행복 찾기의 시발점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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