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혁 박사] 기분전환15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강종혁 박사] 기분전환15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낄 때
  • 편집국
  • 승인 2020.04.17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잘못된 삶의 태도를 교정하는 방법
첫째, 합리화를 부여하는 자신을 모습을 경계하자!
둘째, 폐쇄적으로 사고하는 자신의 모습을 경계하자!
셋째, 잘못된 정의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경계하자!

▣에피소드15: 원죄를 치유한 어느 왕자의 이야기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 당신! 언제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태도 때문에 억지(抑止)스럽기만 한 당신의 삶! 숙명적인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원죄를 치유하려는 왕자의 삶이다.

부끄러운 삶

사람은 누구나 숙명적으로 원죄를 가지게 된다. 이는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소유하려는 욕망을 가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 사람들 중 자신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원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름 발버둥을 쳐본다. 여기서 문제는 원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작 원죄에 대해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뒤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 중 누군가는 망각을 통해서 자신의 원죄에 대해 잊으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망각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삶을 합리화 하려고만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특히 이러한 사람들 중에는 신 또는 종교라는 절대적 진리를 이용하여 자신을 합리화 하거나 망각에 의존하는 것을 반복하며 자신의 숙명적인 원죄를 덮으려고 한다. 여기서 절대적 진리를 통해 자신의 원죄를 진정성 있게 용서를 구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사람들과 그들은 분명히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다. 원죄를 덮기에 급급한 그들은 정작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절대적 진리를 방패삼아 비겁한 삶의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들의 삶은 결코 원죄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원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단지 그것을 회피한 사람들이 이루어 낸 삶은 마치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이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매우 불안정한 삶을 사는 것이다.

한편 삶에서 우리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비록 삶에 어떠한 잘못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의 선택 여하에 따라 삶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자신의 삶이 잘못되고 있음에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사는 사람보다 진보된 삶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숙명적인 원죄로부터 자유롭고 안정된 삶의 견고한 탑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자신의 원죄를 도외시 하고 습관적으로 자기 방어적인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잘못된 삶의 태도를 교정하는 변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잘못된 삶의 태도를 교정하는 방법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의 잘못된 삶의 태도를 교정하고자 한다면 당신의 삶에서 존재하는 합리화를 위한 생산적 사유와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 그리고 정의를 가장한 타인의 삶을 평가하려는 삶의 태도를 경계하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보자.

첫째, 합리화를 부여하는 자신을 모습을 경계하자!
누구나 삶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반면에 삶에서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부여하기 위해 생산적 사유에 빠져들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은 너무나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삶의 유혹이다. 이는 삶이 누구에게나 주관적인 관점을 가진다는 것에 기인한다. 주관적인 삶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나 삶의 태도 그리고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 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 할 수 있는 삶의 과정에서 만약 자신만이 아는 삶의 부끄러움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숙명적인 원죄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삶의 숙명적인 원죄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부여하기 위해 생산적 사유에 빠지는 것 보다 자신의 원죄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숙명적인 원죄로부터 자유롭고 안정된 삶의 견고한 탑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잘못된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의 첫 번째는 자신의 잘못된 삶을 합리화 시키려고 습관적인 행태로 생산적 사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둘째, 폐쇄적으로 사고하는 자신의 모습을 경계하자!
당신은 인간의 원죄가 인간의 선함 뒤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절대 수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는 사람들마다 삶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에 기인한다. 즉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다양한 사고체계가 존재하겠지만 특히 이 가운데 양시론(兩是論), 양비론(兩非論)적 사고체계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과 이분법(二分法)적인 사고체계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서 자신의 원죄가 자신의 선함 뒤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수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이분법적 사고체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스스로 선(善)이라 생각한 자신의 모습 뒤에는 동시에 악(惡)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한다. 그러나 세상을 이분적인 사고체계로 정의 할 때 과연 선과 악 중 무엇을 선이라 하고 무엇을 악이라 할 것인가? 세상의 모든 것을 오(o) 아니면 엑스(x) 로 볼 때 과연 이들 중 무엇을 오(o)라 할 것이고 무엇을 엑스(x)라 할 것인가? 즉 세상은 결코 선과 악, 오(o)와 엑스(x)등 의 이분법적으로만 구분하며 정의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예외적인 상황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양시론(兩是論), 양비론(兩非論)적 사고체계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세상의 모든 것은 그 하나를 놓고도 때론 그럴 수도 있고 때론 아닐 수도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그런데 숙명적인 원죄를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원죄는 자신의 선함 뒤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수용해야만 가능하다. 이 점을 고려 할 때 결국 우리가 자신의 잘못된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사고체계로서 양시론(兩是論), 양비론(兩非論)적 관점을 견지할 때 비로소 가능해 지는 것임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숙명적인 원죄로부터 자유롭고 안정된 삶의 견고한 탑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잘못된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의 두 번째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 갇히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셋째, 잘못된 정의에 빠지는 자신의 모습을 경계하자!
자신의 원죄에 대한 성찰과 그러한 원죄를 극복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을 거치면서 당신은 이미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며 비로소 정의를 논하고 이를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삶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바로 정의를 외치며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세상의 정의는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타인의 삶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당신이 정의를 외치며 타인의 삶을 평가한다면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의 기준과 정의에 따라 누군가를 평가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되어 또 다시 자신의 원죄 속으로 빠져 들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당신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삶을 보며 평가하는 삶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삶만을 바라보며 정의를 실천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그러한 헌신적 행위로 인해 종국적으로는 사람들이 짊어진 삶의 원죄들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참된 정의가 완성되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명적인 원죄로부터 자유롭고 안정된 삶의 견고한 누각을 쌓아가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잘못된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노력의 마지막은 정의를 외치며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당신은 세상의 어떠한 불의(不義) 앞에서도 가장 떳떳한 의인(義人) 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원죄를 치유한 어느 왕자의 이야기

어느 작은 나라에 쌍둥이 왕자가 태어났다. 국왕과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은 그들의 탄생을 너무나 기뻐했다. 쌍둥이로 태어난 두 왕자는 자라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달랐다. 특히 잘못을 저지르거나 잘못이 드러났을 때 전혀 다른 모습의 행태를 보였다. 먼저 쌍둥이 중 형인 혁은 언제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진정으로 반성했다. 때로는 그의 잘못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에 부왕으로부터 꾸짖음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꾸짖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늘 자신의 불리한 상황이나 위기적 상황을 쉽게 모면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정직한 품성은 부왕의 입장에서는 항상 말썽만 일으키는 왕자로 보였기에 후왕으로 책봉되는 점에서는 오히려 불리한 입장이었다.

반면 쌍둥이 동생인 왕자 비는 언제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거짓된 언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그래서 늘 그의 잘못은 거짓으로 가려졌기 때문에 형인 혁보다는 부왕으로부터 꾸짖음을 받는 일이 매우 드물었다. 이에 그는 비록 자신의 거짓된 모습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늘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나 위기적 상황을 쉽게 모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부정직한 품성은 부왕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나 모범적인 왕자의 모습이었기에 후왕 책봉에 있어서는 매우 유리한 입장이었다. 시간이 흘러 부왕은 쌍둥이 왕자들의 진정한 모습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언제나 모범적이라 생각한 왕자 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왕이 된 동생 비는 자신의 거짓된 모습으로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생각 때문에 한 나라의 왕으로서 통치를 잘 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하는 통치는 자신의 의욕만큼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비가 백성들을 위해 내세웠던 정책들은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로부터 불만과 원성의 대상이었다. 이에 비는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백성들의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늘 거짓된 답변을 해야만 했다. 왕이 되면 매일 매일 행복할 것만 같았던 비는 이렇게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오히려 매일 같이 백성을 달래기 위해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삶에 매몰되어 가며 늘 괴로워했다.

한편 형으로서 왕위 서열에서 앞서 있었음에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던 혁은 궁에서 떠난 후 그 나라에서 살기 가장 고달픈 북경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혁은 왕위를 물려받지 못한 것에 억울해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탓하고 왕자로서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가장 낮은 곳에서 진심으로 백성들과 함께 동화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혁은 백성들의 괴로움을 왕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백성들의 고된 삶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늘 노력했다.

그래서 혁은 백성들을 도우며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에 백성들은 그런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였고 심지어 그를 부모처럼 따르며 의지하였다. 혁이 이렇게 백성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계기는 과거 그가 곤경에 처하게 된 한 사건의 발단 때문이었다. 혁은 왕위계승에서 내쳐지고 나서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그 나라의 방방곡곡을 누비며 유랑을 하였었다. 그런데 당시 유랑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준비했던 노잣돈은 떨어지게 되었고 변방에서 돈을 쉽게 융통할 수 없었던 혁은 어쩔 수 없이 허기를 참으며 유랑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계속된 허기에 잠시 이성을 잃은 혁이 실수를 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다. 어느 산골을 지나던 혁은 산등성이 한 언저리에서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고 있는데 주변에 많은 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별다른 인가가 없는 지역이었지만 산언저리에 심어져 있는 그 무들은 분명 누군가 열심히 산밭을 일구어 재배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무밭을 보게 된 혁은 배고픔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결국 주인의 허락 없이 무를 캐내어 먹게 되었던 것이다. 혁이 한참 맛있게 무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그 산 밭의 주인이 나타났다. 무밭의 주인은 허락도 없이 자신의 무를 캐내어 먹고 있는 혁에 화가 많이 났고 이에 그를 도둑으로 잡아 관아로 끌고 갔다.

관아에서 밭의 주인은 현감에게 자신이 연로하신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정성껏 농사를 지었는데 도둑이 자신의 무밭에서 무를 훔쳐 먹었다고 호소하며 혁을 처벌해 달라고 청원하였다. 관아에서 혁을 취조하던 중 그의 주머니에서 왕자를 상징하는 표식이 나와 그가 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혁은 자신이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왕자라고 신분을 밝히며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혁의 신분이 밝혀지자 그 마을의 현감은 왕자에게 무례했다며 오히려 무밭의 주인을 처벌할 것을 명령하였다. 혁은 현감에게 왕자로서 그 명령을 거두라고 부탁한 뒤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밭의 주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며 자신이 먹은 무값 대신 한 달 동안 자신이 직접 그의 농사일을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며 용서를 구했다.

이러한 왕자의 제안에 무밭 주인은 한편으로 황송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왕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 후 혁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밭 주인의 농사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어느 덧 약속한 한 달이 돌아왔다. 이에 혁은 자신이 말한 약속을 모두 지키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백성들이 마을을 떠나려던 혁에게 몰려와 자신들의 마을에서 함께 살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백성들이 떠나려던 혁에게 이렇게 자신의 마을에서 함께 살아 달라고 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혁은 백성들과 함께 살면서 때로는 그들의 고난과 아픔을 위로해 주기도 하였고 때로는 무지한 백성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쉽고 친절하게 해결해 주기도 하였다. 한 달 동안 혁과 백성들은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정신적으로 그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했던 혁은 그때부터 그 마을에 정착하여 백성들과 함께 살게 된 것이었다.
비록 왕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그를 위한 별도의 궁이 있어서 정치에 관여하지만 않는다면 평생을 호화롭고 편안한 삶을 살 수가 있었지만 혁이 이러한 백성들의 청을 받아들인 이유는 백성들이 겪고 있는 삶의 고난과 힘듦은 모두 자신의 원죄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왕족으로서 힘든 백성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왕자로서 옳은 삶이라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후 마을 백성들은 모두가 합심하여 혁이 기거할 집을 지어 주었다. 그날부터 혁은 자신과 백성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며 왕자가 아닌 백성의 삶을 살았다. 혁은 잘못된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모습으로 매 순간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생산적 사유의 틀에 갇혀 지내는 것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오직 자신과 함께하는 백성들의 삶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서 매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놀라운 일은 이러한 왕자와 함께 생활하는 백성들도 혁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잘못된 것을 살피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된 것들이 발견되면 그것을 정당화하려던 모습을 버리고 왕자가 그렇게 했듯이 자신들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인정한 잘못들을 진정성 있게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변화 중 더욱 놀라운 일은 그들이 혁의 삶을 보면서 자기 자신보다는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 서로서로 챙겨주는 태도였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는 세상 법이 없어도 될 것 같은 행복한 미소가 있었고 그들의 눈빛에서는 무엇인가 꿈꾸는 듯 희망이 있어 보였다. 실제 혁과 함께 사는 마을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행복지수는 이전의 삶에서 찾을 수 없을 만큼 훨씬 높아졌다. 이러한 소문 때문에 많은 백성들이 이 마을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척박했던 마을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며 풍요로운 마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혁과 번성해 가는 마을 이야기는 쌍둥이 동생이며 왕인 비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비는 무엇인가 결심하고 곧바로 혁이 있는 마을로 직접 찾아갔다.

비는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형인 혁에게 자신의 왕위를 양위한다고 선포하며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는 백성들과 모든 것을 함께 하며 때로는 백성들의 문제를 풀어주고 스스로 선행하는 모습으로 백성들의 행태를 바꾸고 이로서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혁이 나라의 왕이 될 진정한 적격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쌍둥이 형인 혁은 동생인 비의 뜻을 받아들여 그가 양위한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 후 쌍둥이 형제는 궁에서 함께 살면서 오직 백성들이 행복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것에만 집중하며 자신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강종혁 박사 프로필]

행정학 박사
 청담인성교육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초빙교수
 국립공주대학교 외래교수(전)
부천대학교 겸임교수(전)
설레임힐링연구소장(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