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주가 알아야 할 산재처리⑦] 건설공사 발주자의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 – 산업안전보건법과 영국 CDM 비교
[사업주가 알아야 할 산재처리⑦] 건설공사 발주자의 안전관리 책임과 역할 – 산업안전보건법과 영국 CDM 비교
  • 편집국
  • 승인 2020.04.20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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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사람이 전하는 산재이야기] 임영섭 상임고문
발주자 의무의 핵심은 계획단계, 설계단계 및 공사단계에서 안전보건조치
적절한 공기, 공사비 등 안전관리에 필요한 자원확보
임영섭
- 법무법인 사람 상임고문 
      -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前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장          

                                         

1. 건설공사는 주문생산 방식, 즉 선판매 후생산이다. 때문에 생산자가 자기 의도대로 상품을 생산하고 가격을 책정하여 판매하는 제조업과는 생산과정이 많이 다르다. 발주자가 시공자, 공사비, 공기 등을 정하고 생산과정에서도 여러 형태로 의사결정에 관여한다. 건설공사 안전보건관리에서 발주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영국은 이미 1994년에 발주자의 역할이 강조된 CDM(Construction and Design Management Regulation)을 제정하여 건설공사의 계획에서 유지관리까지 전 단계에 걸쳐 안전보건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였고 성과를 이루어냈다. 우리도 금년 초에 시행된 전면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발주자의 의무를 크게 강화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발주자의 의무와 이 법이 모델로 하고 있는 영국 CDM 상 발주자의 의무를 비교하여 실효성 있는 발주자의 역할을 생각해본다.

2. 산업안전보건법상 발주자의 의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신설된 발주자 의무의 핵심은 건설공사 계획단계, 설계단계 및 공사단계에서 안전보건조치이다. 법 제67조는 계획단계에서 중점적으로 관리하여야 할 유해ㆍ위험요인과 이의 감소방안을 포함한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할 것, 그리고 설계와 시공단계에서 설계자와 시공자에게 설계안전보건대장과 공사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게 하고 이와 그 이행을 확인할 것을 발주자의 의무로 신설했다.

기존에도 같은 장소에서 2개 이상의 건설공사를 도급한 발주자는 안전보건조정자를 두어야 하고(제68조), 공사기간 단축 및 공법변경 금지(제69조), 불가항력이나 발주자의 귀책사유로 인한 공기연장 의무(제70조), 산재발생 위험이나 고용노동부장관의 작업중지나 유해위험방지계획서의 변경 명령을 받은 경우 시공자의 설계변경 요청에 대한 수용 의무(제71조)가 있었다. 또한 제72조는 시공과정에서 안전보건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별도로 계상해야 하는 의무를 정하고 있다.

3. 영국 CDM 상 발주자의 의무
건설공사에서 발주자의 역할을 정한 모범사례로 꼽히는 CDM은 영국이 EU규범(Directive 92/57/EEC)을 반영하여 제정한 것으로 2007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CDM에서 정하고 있는 발주자의 주요 의무는 다음과 같다.

제4조(Regulation 4)는 사업(project) 관리를 위한 발주자의 의무를 정하고 있다.
△ 충분한 공기 및 다른 자원의 제공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arrangement)를 해야 한다.
△ 가급적 빠른 시기에 공사전 정보(pre-construction information)를 모든 설계자와 시공자 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주시공자가 공사단계계획(construction phase plan)을 작성하도록 한다.
△ 주설계자가 안전보건파일(health and safety file)을 작성하도록 한다.
△ 주설계자와 주시공자가 주어진 의무를 다하도록 합리적인 조치를 한다.

제5조는 설계자와 시공자가 다수일 때에 발주자가 주설계자와 주시공자를 지정할 것을 정하고 있고, 제6조는 발주자는 공사 착공 전에 안전보건청(HSE)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4. 양 제도의 차이
기본안전보건대장 작성 vs 정보제공
: 가장 눈여겨봐야 하는 차이점이다. 우리는 발주자가 공사계획단계에서 유해위험요인과 감소방안을 포함한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발주자가 설계도 이루어지기 전에 유해위험요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아가 위험성평가 방법 및 절차를 발주자가 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반면에, 영국은 작성의무 없이 공사전 정보를 설계자와 시공자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CDM은 부록에서 공사전 정보는 발주자가 이미 가지고 있거나 발주자 측에서 합리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정보라고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석면정보, 가공전선 등 부지 특유의 정보이다. 

안전보건조정자 vs 주시공자
: 산업안전보건법은 2개 이상 건설공사가 한 현장에서 이루어지면 안전보건조정자를 선임할 것을 정하고 있는 반면에, CDM은 시공자가 둘 이상이면 그 중 하나를 주시공자로 지명할 것을 정하고 있다. 양자 간에 다소 차이는 있지만 시공자 혼재로 인한 공사의 안전보건 협력 및 조정이 주 임무이다. 안전보건조정자는 공사감독자나 책임감리자가 선임되어 있는 현장은 그 사람을, 그렇지 않은 경우 산업안전지도사 등을 별도로 선임해야 한다. 

적절한 공기, 공사비 등 안전관리에 필요한 자원확보
: CDM은 적절한 공기 및 다른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발주자의 포괄적 의무로 부여하고 있는 반면, 우리 법은 설계서에 반영된 공사기간이나 공법의 변경금지, 불가항력적인 경우나 발주자의 책임으로 인한 경우 공기연장의무 등을 정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발주자가 별도로 계상토록 하고 있는데 이는 최저낙찰제로 저가입찰이 성행하는 우리의 실정을 감안한 유례없는 제도로 안전비용의 확보에 상당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CDM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없는 발주자의 안전보건청에 공사착공 신고의무를 두고 있다. 건설공사 특히 소규모 건설공사 현황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을 감안할 때 실제로 필요한 조치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 상 발주자의 의무가 CDM을 모델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발 더 나간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영국은 대부분의 발주자가 건설에 전문지식이 없음을 전제로, 역량 있는 계약자를 선정하고 그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원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발주자가 기본안전보건대장 작성 등 직접 행위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발주자 안전보건관리를 위한 매뉴얼”에서도 권장하고 있듯이 전문성이 없는 발주자는 전문가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영국은 대부분의 규정에서 “합리적으로 실행 가능한 수준(as low as reasonably practicable; ALARP)”을 전제로 하고 있다.

5. ALARP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은 법령의 근간을 이루는 개념인 ALARP을 “위험과 그것을 더 감소시키기 위한 비용을 비교하는 것(weighing the risk against the sacrifice needed to further reduce it)”으로 보면서도, 단순히 조치에 대한 비용편익 비교가 아니라 비용이 심하게 불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이행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항소법원(Court of Appeal)도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하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는 것보다는 좁은 개념으로 … 위험과 감소 비용 간에 심한 불균형이 있어 비용에 비해 위험이 미미할 때 피고가 의무를 벗게 되는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이처럼 의무부담자가 안전조치를 하는 것을 전제로 그 비용과 이익을 비교하는 것으로 보고 법령이 정한 안전보건조치를 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법령의 집행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실행가능한지’ 여부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6. 건설공사 안전보건관리에서 최고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발주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는 영국이 CDM을 통해 건설공사 전반에 걸친 발주자의 역할을 강화하여 사고를 큰 폭으로 감소시킨 것으로도 입증이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발주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하도록 하는 제도설계이다. 선진사례는 배우고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자칫하면 그 근간을 놓쳐 실효성이 떨어지는 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의무부담자는 이행을 포기하거나 ‘전문가’에게 맡기고 손을 놓고 말 것이다.

영국은 한 해에 35명 내외, 우리나라는 500명 내외가 건설현장에서 사망한다. 0을 하나 잘 못 붙인 것이 절대 아니다. 쫓아가기에 숨이 벅차다. 그렇다 할지라도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임영섭
- 법무법인 사람 상임고문 
-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前 호서대학교 안전보건학과 교수
- 前 한국산업안전공단 기획이사
- 前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상임위원
- 前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장, 근로자보호과장
- 「현장이 묻고 전문가가 답하다! 안전보건 101」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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