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혁 박사] 기분전환17 - 선택적 삶 앞에서 혼란함을 느낄 때
[강종혁 박사] 기분전환17 - 선택적 삶 앞에서 혼란함을 느낄 때
  • 편집국
  • 승인 2020.05.0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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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로운 삶의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
첫째,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을 정하자!
둘째, 자신의 삶에서 대치나 모순을 제거하자!
셋째,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가치를 확립하자!

▣에피소드: 정의로운 원칙을 따르는 대법관의 이야기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강종혁 청담인성교육원장

선택적 삶 앞에서 혼란함을 느끼며 사는 당신! 언제나 잘 살아야 한다는 삶의 태도 때문에 고단(孤單)하기만 한 당신의 삶! 세상의 시험이 두렵기만 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정의로운 원칙을 따르는 대법관의 삶이다.

삶의 선택적 상황

당신은 세상으로부터 어떠한 존재인가? 만약 이 순간 당신의 마음에 세상이 나를 인정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서 당신의 선택이 언제나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음을 전제한다. 반대로 이 순간 당신의 마음에 세상이 나를 시험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현재 당신이 세상의 시험 앞에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갈등적 상황에 직면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만약 후자의 경우처럼 세상의 시험 앞에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갈등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당신에게 삶의 선택적 상황에서 지켜야 할 선택적 원칙이나 어떠한 기준이 없다면 아마도 당신은 삶을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선택적 상황에서 언제나 매우 혼란한 상황에 빠져 들게 될 것이다.

세상과 함께 진정으로 잘사는 삶을 살기 위한 삶의 선택적 기준이 되는 원칙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정의로운 삶의 원칙이어야만 한다. 세상과 함께 진정으로 잘 사는 삶이란 정의로운 관점을 통해 언제나 삶의 가치와 공동체의 가치를 조화롭게 실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선택적 상황 앞에서 느끼는 혼란함에서 벗어나 세상과 함께 잘사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삶의 원칙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변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정의로운 삶의 원칙을 실천하는 방법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정의로운 삶의 원칙을 실천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삶의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을 정하고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삶과 연결을 위해 노력하는 변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보자.

첫째,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을 정하자!
당신은 세상을 살면서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이 세워져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언제나 다른 선택의 기준을 따르며 결국 혼란에 빠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시종일관한 삶의 선택적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삶의 선택적 기준으로는 정의와 불의의 관점 그리고 이익과 불이익의 관점이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어떠한 삶의 선택적 상황 앞에서 혼란함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한편으로 당신의 선택적 기준은 이익과 불이익의 관점을 바탕으로 삶의 성공과 좌절을 염두(念頭)해 두고 있으며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 당신은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복합적인 당신의 선택적 관점이 삶의 선택적 순간 앞에서 스스로를 갈등과 혼란으로 빠져들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을 정함에 있어서 그 누구도 당신에게 기준이 무엇이어야만 한다고 강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이미 정의로운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면 이 순간 삶의 선택적 상황 때문에 힘들어 할 이유는 애초부터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포기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은 이미 불의와 타협하여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 움직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 할 때 이 단계에서 당신은 무엇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가? 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만 한다. 이는 잘 사는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림으로서 삶에 대한 스스로의 본질을 이해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의 선택적 상황에서의 시종일관한 선택적 기준을 비로소 명확하게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삶에서 대치나 모순을 제거하자!
이 순간 당신의 삶이 순조롭게 운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면 당신이 추구하는 삶의 내적 요소와 외적 환경과의 구조화가 어긋나 삶의 대치나 모순적 상황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만약 이 순간 당신의 삶에서 대치나 모순적 상황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에 대한 것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 하나는 잘 살기 위한 자신의 선택적 삶이 진정으로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타탕성 여부를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방법은 먼저 당신이 현재 추구하는 것들이 명확히 무엇인지 나열해보자.

 그리고 이들을 앞서 잘 사는 것에 대한 정의를 통해 삶에서 당신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것들과 이에 따른 시종일관한 삶의 선택적 기준에 부합하는지를 비교하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앞서 첫 번째 단계의 비교에서 나타난 현재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 대치나 모순을 발견하고 이들을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삶의 선택적 기준으로서 이익과 불이익의 관점에서는 세상과의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선택적 기준으로서 정의와 불의의 관점에서는 세상과의 타협이란 없다. 따라서 정의로운 삶의 기준으로 자신의 삶에서 대치나 모순을 발견 했을 때에는 이러한 점들을 반드시 유의해야 할 것이다.

셋째,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운 가치를 확립하자!
마지막으로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을 설정하고 현재 삶의 선택에 대한 자신의 모순을 제거한 후 앞으로 당신이 선택해야 할 것들이 진정으로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공동체에 바람직한 것인지 분석해 보자!

그런데 이 단계에서 당신은 분석에 따라 매우 어려운 결정을 해야만 한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당신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일지라도 만약 그것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심지어 공동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의미 없는 선택이라면 이를 과감하게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닌 공동체에 속한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의 잘사는 삶에 대한 정의와 이를 통해 정해진 시종일관한 기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접점이 되어 다시 수정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당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 중 남게 되는 것이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정의로운 원칙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정의로운 원칙들은 삶의 선택적 상황에서 언제나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며 더불어 이는 당신의 삶에 진정한 이익의 기준이 되어 줄 것이다.

당신은 세상의 어떠한 혼란에도 자신을 지키는 현자(賢者)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정의로운 원칙을 따르는 대법관의 이야기

다른 누구보다도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며 자신의 삶을 잘살고 싶어 하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자신이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늘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TV에서 특집으로 어느 대법관이 걸어 온 삶의 발자취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청년은 그러한 내용의 뉴스를 접하면서 왠지 그분의 삶이 참으로 부럽게 만 느껴졌다. 모든 뉴스 채널에서는 대법관이 지나 온 삶에 대해 경외심으로 가득 찬 내용들을 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청년은 자신도 대법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청년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잘살기 위해 자신이 어떠한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 후 청년은 법관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몇 년 후 청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법관이 될 수 있었다. 그가 판사로 임명되고 난 후 초기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나름 보람을 느끼며 행복한 법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그는 조직에서 인정을 받고 소위 잘 나가는 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행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불행함을 느끼는 원인은 분명했다. 어느 순간부터 무엇인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의 혼란과 갈등이 그의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이었다. 그는 무엇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혼란과 갈등을 언제나 쿨 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판사로서 살아가는 삶에서 모든 것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혼란과 갈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 때부터 그의 삶은 늘 자신이 정말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살면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선택적 상황들에서 나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명제들로 무겁게 짓눌려지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주재하는 재판에서 자신의 판결에 대해 매우 부담을 갖게 되면서 판사로서의 삶이 점점 더 힘들게 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법관이 된 자신의 삶이 결코 잘사는 삶이 아니 라는 생각을 하며 휴직을 신청하였다. 청년은 자신의 삶에 대한 문제점을 명쾌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고 만약 자신의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 되지 않으면 법관의 삶을 포기할 결심까지도 하였다.

판사직을 휴직한 그는 곧바로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다. 일에서 한 발 물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무엇인가 삶의 혼란함을 정리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대로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 삶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무더운 여름 날, 그는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는 지극히 평범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슈퍼가 있었다. 그리고 슈퍼 앞에는 그늘진 곳에 평상이 놓여 있었다. 이에 그는 그 평상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평상에 앉은 그는 긴 시간동안 여행을 하고 있었음에도 법관으로서 잘사는 해답에 대해서는 접근조차하지 못하였다는 것에 대해 매우 낙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슈퍼 주인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다가와서 간단한 먹거리를 가져와 그에게 인심을 베풀어 주었다. 사실 노부부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초라한 평상에서 괴로워하는 얼굴로 쉬고 있는 모습에 안쓰럽게 생각하며 작은 위로라도 될까 싶어 다가온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노부부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쉽게 가까워졌다. 마치 부모와 같은 노부부에게 그는 어느새 편하게 자신의 처지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노부는 조용하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자신이 몇 가지 조언을 해도 괜찮은지 양해를 구하면서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노부의 질문은 “첫째, 자네는 무엇이 행복한 삶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해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가? 둘째, 삶의 선택적 순간 시종일관한 기준이 있는가? 셋째, 법관으로 모순된 삶은 없었는지 살펴보았는가?”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노인은 매우 확신에 찬 모습으로 “만약 자네가 자신의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다면 살면서 다양하게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순간 자신만의 시종일관한 기준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네! 그리고 시종일관 기준이 없는 삶에서 자네는 언제나 모순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노인은 마지막으로 더욱 강조하듯 힘을 주며 “설사 자네가 행복한 삶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와 이를 바탕으로 시종일관한 기준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만약 자신의 삶이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었다고 한다면 자네는 스스로는 잘 살았다고 할지라도 세상이 인정하는 정의롭게 잘 사는 삶을 살았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네!

따라서 앞서 몇 가지 물음에 답한 그 모든 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비롯한 공동체 모두를 위한 그 어떠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 반드시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네” 라고 하면서 자신의 말을 마무리 하였다.

그는 지금껏 자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물음에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노부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궁금한 점을 물었다.“어르신 만약 제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이에 노인은 “만약 자네가 이러한 모든 것에 대한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혼란과 괴로움 속에서 삶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법관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자네나 사회를 위해 좋을 것 같네”라고 매우 단호하게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노부가 자신의 삶을 꿰뚫어보듯 자신이 가야할 삶의 방향과 기준을 한순간에 정리해 준 것에 대해 놀람과 동시에 재판의 과정에서 조직에서의 선-후배의 관계, 승진과 좌천, 경제적 이득과 불이익 등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이익과 불이익, 그리고 자신의 신념적 차원에서 정의와 불의라는 것 등 그간 판사로서 지나 온 자신의 삶을 주마등처럼 스치듯 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삶에 혼란을 느끼게 된 원인이 잘사는 삶의 일부로서 판사라는 직업의 본질에 관한 것에 대해 개념이 세워져 있지도 않았고 선택의 매 순간 시종일관한 선택의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법관으로서 활동하면서 때로는 자신의 승진을 위해 전관예우 등 선배 후배의 압력과 청탁에 따라 타협했던 것들에 대해 정의로운 법관으로서 삶의 신념에 대한 모순적인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삶이 보여 지는 모습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일지라도 또 한편으로 전체 공동체의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서 볼 때 자신의 삶은 그저 초라한 개인의 삶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그는 법을 집행하는 판사로서 정의와 불의라는 시종일관한 기준에 따라 모든 이익과 불이익을 뛰어 넘어 오직 자신과 공동체의 삶에 진정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정의로운 원칙을 세우고 이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우연히 자신의 삶에 복잡하게 얽혀져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잘 사는 삶의 선택인지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더 이상 혼란함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그는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 해 준 노부에게 두 번 세 번 절을 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그리고 그 길로 상경하여 곧바로 판사직에 복직하였다. 판사직에 복직한 그는 15년이 지나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존경받는 대법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가 대법관에 임명되어 임명장을 수여 받는 날 행사장에는 한 귀빈이 초청되었다. 그 귀빈은 국민들에게 최고로 존경받았던 전직 대법관으로서 과거 청년이 tv의 특집 프로그램에서 봤던 바로 그 대법관이었다.

신임 대법관이 된 그는 아직껏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분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음에 매우 기뻐하며 그 날을 기다렸다. 그 대법관은 퇴임 이후에 국민들에게 더 큰 존경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관행처럼 여겨졌던 전관예우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음에도 그 길을 마다하고 자신의 부인과 함께 시골로 낙향하여 살았기 때문이었다. 대법관은 자신의 이익보다는 전관예우의 고리를 끊어 사회적 이익을 위해 솔선수범의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이끌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미 오래전에 퇴임했음에도 언제나 대법관 임명식이 있을 때면 대법관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대법관을 임명하는 행사장에 초청되어 신임 대법관들에게 명예로운 대법관의 길을 축복해 주고 있었다. 드디어 대법관 임명장을 받은 그는 전 대법관으로 부터 꽃다발을 받으며 악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전 대법관이 어떤 말로 자신을 격려를 해주실까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전 대법관은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 친근하게 다가와 “이제 편안한 얼굴로 막걸리 한 잔 하지 않겠나”라고 하며 자신을 대견해 하며 웃고 있었다. 순간 그는 전 대법관의 웃고 있는 얼굴에서 갑자기 15년 전 어느 시골마을 평상에서 자신이 괴로워할 때 막걸리를 건네며 자신이 인생을 바꿀 수 있도록 조언을 해준 노부의 얼굴을 보았다.

그랬다. 시골 마을의 슈퍼 주인이었던 그 노부가 바로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을 받으며 퇴임한 전 대법관이었던 것이다. 전 대법관은 퇴직 후 전관예우의 잘못된 관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 변호사 개업을 마다하고 시골에서 평범한 노부로 부인과 함께 슈퍼를 경영하며 검소하게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신임 대법관이 된 그는 퍼즐처럼 맞혀진 자신의 삶에 그려진 그림에 너무나 놀라워했다. 자신이 법관을 직업으로 선택하는데 결정적 계기가 되어준 롤 모델과 자신이 좌절하고 있을 때 법관으로서 자신의 삶을 바꿔준 시골 마을에서 슈퍼를 경영하던 노부 그리고 현재 자신이 대법관이 되어 축하해주기 위해 온 원로 귀빈 등 이 모든 사람이 오직 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임 대법관이 된 그는 자신이 삶의 큰 그림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며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에 단지 감사한 마음의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강종혁 박사 프로필]

행정학 박사
청담인성교육원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초빙교수
국립공주대학교 외래교수(전)
부천대학교 겸임교수(전)
설레임힐링연구소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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