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삼겹살과 세겹살
[전대길의 CEO칼럼] 삼겹살과 세겹살
  • 편집국
  • 승인 2020.06.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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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마케팅 회사나 유통 업체에서는 날짜나 각종 기념일을 이용, 고객의 수요를 창출하려고 ‘Day-Marketing 전략’을 활용한다. 

‘Market+ing’의 합성어인 ‘Marketing’은 ‘시장을 움직이다’란 뜻이다. ‘Account+ing(회계관리)’, ‘Financing(재무관리)’처럼 영어 단어(名詞)의 끝에 ‘~ing’가 붙으면 ‘~을 움직이다’라는 의미를 담는다. 

3월3일은 3자가 두 번 겹친다고 해서 ‘돼지 삼겹살 Day’이다. 2월14일은 ‘밸런타인 데이’, 2월22일 ‘Couple Day’(둘이란 2자가 3번 겹치는 날)이다. 3월14일은 ‘White Day’와 ‘파이(π) Day’, 5월2일은 ‘오리(Duck) Day’ 또는 ‘오이(Cucumber) Day’이다, 

6월4일은 ‘육포(肉包) Day’, 7월11일은 ‘Seven-Eleven Day’, 8월8일은 ‘꽈배기(Twistered Bread Stick) Day’이다. 

9월9일은 통닭, 삼계탕을 즐겨먹는 ‘구구(99) Day’란다, 10월 24일은 둘(2)이 서로 사(4)과하고 사과를 함께 배어먹으며 화해하는 날이라는 ‘사과(Apple) Day’이다. 

한자(漢字)로 <소 우(牛)>자는 1이 세 개가 나오며 1은 최고를 의미해서 11월1일은 ‘한우(韓牛) Day’란다. 11월 11일은 ‘가래떡 Day’또는 ‘빼빼로(과자) Day’이다. 

또한 11월11일(十一月 十一日)은 아래로 쓰면 ‘흙 토(土)월 흙 토(土)일’이기 때문에 ‘농업인 Day’란다. <흙(土)>은 농업인(農者)의 기본 터전이기 때문이다. 

돼지 부위별 이름
돼지 부위별 고기이름

한국인의 국민식품인 삼겹살(돼지의 뱃살 부분)의 유래를 알아본다.  
향신료가 비싸고 냉장고가 없어서 신선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조선시대에는 고기를 삶거나 찌게나 국으로 끓이거나 만두처럼 다른 음식에 첨가해서 즐겨 먹었다. 

원래 일본은 막부의 육식금지령 때문에 닭고기를 제외한 육식문화가 없었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 이후 돈가스 등 돼지고기 요리가 개발되면서 일본은 돼지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환경문제 등으로 돼지 사육처를 못 찾던 일본은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 군산과 같은 항구도시 인근에 양돈사육장을 많이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돈가스용으로 사용되는 안심이나 등심은 일본으로 반출해 가고 돼지비계만큼은 생산지인 한국에서 소비처를 찾아야만 했었다. 

우리말에 ‘한겹, 두겹, 세겹..’은 있어도 ‘1겹, 2겹, 3겹..’이란 없다. 따라서 삼겹살은 어법(語法)에 맞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삼겹살이란 “돼지의 갈비에 붙어있는 살로 비계와 살이 세겹으로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라고 정의한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표기대로 ‘삼겹살’이 아니라 ‘세겹살’이라고 해야지 어법에 맞는다. 1945년 광복 이전에는 실제로 세겹살이라고 불렀다. 

‘세겹살’이란 말이 일제 강점기였던 1931년에 방 신영 교수가 쓴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이란 요리책에 처음 등장한다. ‘돼지 배(뱃 바지)에 있는 고기로 돼지고기 중 제일 맛있는 고기’라고 설명한다. 

1934년, 동아일보에 세겹살이란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뱃 바지 고기’, 혹은 ‘삼층저육(三層猪肉)’이라고 불렀다. 

1959년에 들어 비로소 삼겹살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세겹살이 삼겹살로 바뀐 이유를 두고 여러 설이 있는데, 이중 가장 흥미로운 설은 개성상인들에 의해 삼겹살로 변했다는 '개성 유래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원래 외래종이 아닌 조선에서 키우던 돼지는 사람이 먹던 밥을 주거나 섬유질이 많은 식물을 줘서 육질이 질겼다. 개성인근에서는 맛을 위해 독특한 사료를 먹여서 비계와 살이 층층이 쌓인 세겹살이 생산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개성 사람들이 돼지에게도 삼(蔘)을 먹였다 해서 ‘삼(三)겹살’이 아닌 '삼(蔘)겹살'이라고 불렸다는 주장도 있다. 

삼겹살의 개성 유래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는 해방 전까지 삼겹살 소비가 그리 크지 않았고, 전국적인 인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삼겹살이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60~70년대 강원도 지역 탄광촌에서 돼지비계가 목에 낀 먼지를 씻어내는데 특효라고 해서 광부들이 즐겨 먹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 후 한국인의   서민음식으로 정착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돼지고기 수입개방이 본격화되면서 부터이다. 돼지고기 가격이 내려가고, 삼겹살 전문점이 전국적으로 생기기 시작한 시점부터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은 주로 돼지갈비를 선호했다. 그런데 1960년대~19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삼겹살이 유행했다. 연탄불 중심에서 가스(Gas)불 중심으로 바뀌고 가스렌인지의 확산과 아울러 양돈 장려정책과 맞물려 삼겹살은 한국인의 국민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 날에는 가정집 주방에서 전기를 이용한 인덕션으로 조리하기 때문에 집안에서는 삼겹살을 잘 굽지 않고 식당에서 삼겹살을 즐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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