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동자는 교섭권 없다” 중노위, 원청에 또 다시 면죄부 발급
“하청노동자는 교섭권 없다” 중노위, 원청에 또 다시 면죄부 발급
  • 손영남 기자
  • 승인 2020.06.04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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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12개 비정규 사업장 제기 조정 신청, 조정대상 아니다 결정
또 다시 부인된 ‘원청 사용자성’, 대법원 불법파견 판정에도 나 몰라라
구시대적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 노조법 2조 개정만이 사태 해결할 단초
민주노총은 3일 오전 11시 민주노총 15층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중노위의 결정문을 강력히 규탄했다. 사진제공 민주노총

[아웃소싱타임스 손영남 기자]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원청을 향한 하청업체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안이 중노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들어 각급 법원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연이어 내어놓고, 정부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부르짖는 와중이지만 그럼에도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인정하는 것에는 더할 나위 없이 까다로웠다.

민주노총은 3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중앙노동위원회가 간접고용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낸 쟁의조정신청에 대해 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중노위의 결정은 결국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지난 5월 20일, 민주노총 12개 비정규 사업장(금속노조 9곳, 공공운수노조 2곳, 민주일반연맹 1곳)이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전환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공동요구로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 요청 등을 이유로 5월 20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접수했다.

하청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실질적 결정권자인 원청과의 교섭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연이은 원청과의 교섭 시도가 자신들이 사용자가 아니라는 상투적인 이유로 무산되자 이를 중노위에 맡겨 해답을 구하겠다는 시도였다.

최근 달라진 사회 기류를 의식한 중노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조심스런 기대가 무색하게 6월 1일,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하고 있는지 입증이 부족하여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노조가 제기한 노동쟁의조정 신청을 각하했다.

중노위는 조정회의 등을 통해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안임을 알고 있다”며, 이 사안이 단순 조정사건이 아니라 ‘원청 사용자성’에 대한 잣대를 규정할 정치적 사안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원청 사용자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노동자에게는 원청과의 교섭권 없음을 통보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미 대법원은 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 9개 사업장 중 현대자동차와 한국지엠 2개 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의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상태였다. 나머지 5개 사업장 또한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 받았다. 

이처럼 법원 판결 과정에서 쌓인 입증자료 등 노조측에서 제시한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는 하나같이 원청이 실질적 사용자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었다. 원청이 채용, 인력 투입, 작업 방식을 직접 결정하거나 상당 부분 관여하고 있고, 구체적인 작업지시, 근태관리 및 업무보고 지시 등 노동과정 전반을 관리‧통제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노조의 자료와 달리 사측은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하고 있지 않고, 운영이 독립되어 있다는 원론적 주장만 반복했음에도 결국 중노위의 결정은 입증이 부족하다는 판에 박힌 것이었다.

중노위는 이유서에서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의 성립여부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며 구시대적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시대를 역행하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사로잡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서. 사건 중앙2020조정23.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한국지역난방공사 등 2개사) 노동쟁의 조정신청. 자료제공 민주노총

스스로도 이 사실을 깨닫고 있었음을 토로하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다른 적절한 권리구제 절차를 통해 해결방법을 강구할 것을 권고한 대목이 그것.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도 불구하고 원청 사용자와 교섭조차 불가능한 시점에서는 사탕발림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결정이다.

이제 이 사태를 해결할 책임은 새로이 개원하는 21대 국회로 넘어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 2조를 개정하는 것으로 논란의 소지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제나 오리발만 내미는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첫 걸음은 노조법의 개정이 될 것이며 그를 위해 21대 국회의 성실성에 기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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