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길의 CEO칼럼] 초승달, 크루아상(Croissant)빵
[전대길의 CEO칼럼] 초승달, 크루아상(Croissant)빵
  • 편집국
  • 승인 2020.06.17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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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세상에는 빵 한 조각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작은 사랑도 받지 못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마더 테레사’ 수녀가 말했다. 

‘크루아상(Croissant)’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이란 뜻이다. ‘승리를 기념하는 초승달 모양의 프랑스 빵 이름’이기도 하다. 초승달은 이슬람교의 상징으로 터키, 말레이시아, 파키스탄 등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 국기(國旗)에는 대부분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다. 

이슬람교에서 초승달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마호메트’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었기 때문이다. 신의 말씀이 인간에게 전해질 때 초승달이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들은 ‘인샬라(Inshallah, 神의 뜻)’, ‘부크라(Bukra, 내일)’, ‘말레이시(Maleisi, 미안)’ 등 약칭 IBM이란 아랍어를 많이 쓴다.  

세상에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양한 종류의 빵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밀가루와 버터로 반죽을 빚어 켜켜이 층을 낸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 빵의 유래를 살펴보았다. ‘빵(pão)’은 원래 포르투갈語이다. 

                <초승달과 샛별 모양의 터키 국기>                   <초승달 모양의 크루아상 빵>

1683년, 오스트리아와 오스만트루크 제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오스만트루크 제국(Osman Turk Empire)은 오스만 투르크 족이 세운 이슬람 제국(1299~1922)이다. 오스만트루크 군대가 오스트리아 비엔나 중심부를 기습 침공하려고 성 외곽으로 부터 도심(都心)까지 관통하는 비밀 지하 땅굴 파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비엔나의 제과기술자가 땅 밑에서 땅을 파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이를 오스트리아 군대에 신고했다. 이에 오스트리아 군대는 수색과 탐사 끝에 적군(敵軍)이 파는 지하 땅굴을 찾아내서 오스만투르크 군대를 싸우지 않고 물리칠 수 있었다. 

종전(終戰) 후 오스트리아 황제가 제과기술자를 불러 그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제과기술자는 “우리의 적군인 오스만트루크제국 군대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적군의 깃발에 그려진 초승달 문양을 본 따 새로운 빵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에 황제는 초승달 문양의 빵을 독점적으로 제조·판매할 수 있도록 특권을 베풀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크루아상이란 프랑스 빵이 탄생했다.

그런데 크루아상이 프랑스빵으로 알려진 데에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1755~1793)’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루이 16세의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제국을 다스렸던 합스부르크가 왕의 딸이다. 프랑스 루이 왕가로 시집 온 앙투아네트는 고향인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Vienne)에서 즐겨 먹었던 크루아상 빵을 참으로 먹고 싶어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원래 ‘파이저’란 독일식 오스트리아 빵이 앙투아네트의 요청으로 프랑스에 들어오면서 ‘크루아상’이라는 빵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제빵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스트리아 빵인 파이저에 마가린, 버터, 효모를 첨가해서 지금과 같은 프랑스의 전통 빵, 크루아상이 탄생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체 브랜드 빵도 있다. 겨울철 별식, ‘삼립 호빵’으로 유명한 삼립식품에서 출발한 ‘SPC(Samlip Ppang Company)’의 ‘파리 바케트(Paris Baguette)’ 빵과 매장은 우리나라 자체 브랜드이다. SPC는 프랑스 파리 현지는 물론 미국 , 캐나다, 중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 400여개 파리 바케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관해서 알아본다. 유목민인 오스만 투르크 족은 몽골에 쫓겨 중앙아시아로 부터 소아시아로 옮겨와 1300년경 오스만 투르크 왕조를 창건했다. 그 뒤에 국력을 키워서 1402년경에는 아나톨리아 전역을 정복했다. 

1346년경에는 유럽에 발판을 마련했으며 1389년 발칸 동맹군을 무찔렀다. 1402년 앙카라에서 티무르 군에게 패배했지만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새 수도를 이스탄불이라 명명했다. 

이집트를 제압하고 1517년에 성도(聖都) 메카의 보호권을 획득하여 칼리프의 지위를 수중에 넣고 술탄 칼리프 제도가 성립되었다. 쉴레이만 1세 때가 전성기로 영토가 가장 넓었다. 

17세기 후반부터 러시아 · 오스트리아의 억압을 받았다. 1908년에 청년 투르크 당 혁명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술탄 정치의 무능과 부패가 무너졌다. 

1923년 10월에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Kemal Pasha...1881~1938)에 의해 ‘Turk’가 어원인 ‘터키(Turkey)공화국’이 수립되었다. 타타르語로 ‘Turk’란 ‘용감하다(Brave)’란 뜻이며 수도인 ‘앙카라(Ankara)’는 ‘닻(Anchor)’이란 켈트족語이다.  

전   대   길
(주)동양EMS 대표이사, 수필가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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